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洪海里 자술 연보

洪 海 里 2019. 4. 3. 04:48

   洪海里 자술 연보

* 1942818일 충북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472번지에서 아버지 남양 性元과 어머니 경주 洪粉 사이에 44녀 중 맏이로 태어남. , 실제로는 양력 1941108일생임. 남양 씨 익산군파 36세손으로 본명은 峯義. 필명인 海里는 바다가 없는 내륙에서 태어나 넓은 바닷가의 정겨운 마을을 동경하는 마음에서 1960년부터 사용해 오고 있음.

 아버지는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다 197857세로 별세, 어머니는 200182세에 돌아가심. 8남매는 현재 서울, 인천과 수원 및 청주에서 살고 있음.

*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후 청주시 모충동 405번지로 옮겨 중고교를 다님.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김소월의 시집진달래꽃을 만남 .

* 1960년대 고려대학교 영문과에서  김종길 시인에게서 영시를 배우고 국문과 조지훈 시인의 시론과 현대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 1960년 영문과 동기로 만난 이무원 시인과 평생을 함께 지내오다 李茂原 시인은 2015417일 타계함.

* 1964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인천에서 1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그리워하던 바다와 섬을 가까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함. 그해 여름 인천신문에 게재된갯벌이란 짧은 시가 활자화된 나의 첫 작품임.

* 1965년 고향 청주로 돌아가 세광중고등학교에서 7년간 근무하다 충북 유일의 야구부 해체를 주동하고 1972년 청주상고로 옮겼다 교감과의 불화로 사표를 내고 1974 서울 성신여중고로 자리를 옮김.

* 1969년 첫시집투망도投網圖를 선명문화사에서 자비로 펴냄.

* 1970년 충주 明順과 결혼하고 그해 장남 錫珉 태어남.(석민은 1997년 정현정과 결혼하여 아들 형택과 딸 서현을 낳음).

* 1972년 충북 최초의 동인지내륙문학을 박재륜, 양채영 시인 등과 발기하여 4집까지 주재하다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모두 넘겨줌.

  차남 韓錫 태어남. (2002년 정소현과 결혼하여 딸 예린과 아들 윤태를 낳음).
* 1975년 두 번째 시집화사기花史記를 시문학사에서 자비로 펴냄.

  이때부터 선인들의 시서화에 나타나 있는 난초에 관심을 가지고 난의 정체를 밝혀 보고자 문헌을 찾아 읽으면서 자생지를 답사하기 시작함.

  난에 관한 글을 쓰면서 Walter Richter의 저서ORCHIDS CARE를 번역하여서양란 가꾸기라는 제목으로 격월간분재수석지에 1982 56호부터 198469호까지 연재함. (분재수석198362호부터 제호를자연미생활로 개제함).

80년대 들면서 난바람이 전국적으로 몰아쳐 난 자생지가 황폐화되는 현장을 보고 참을 수 없어 90년대 중반 온실에서 함께 살던 1,000여 분의 난을 친구의 난농장에 넘겨주고 난에서 손을 뗌.
* 1976년 시집무교동武橋洞이 무교동의 재개발을 시작하던 날 태광문화사에서 나옴.
* 1977년 백우암의 소설과 함께 엮은 2인 작품집우리들의 말이 삼보문화사에서 나옴.

   같은 해 양채영, 이무원, 윤강원, 박운식, 최병학과 함께 6인시집내륙집內陸集을 간행함.

* 1978년 봄에 몇 년 동안의 돈암동 전세살이를 끝내고 우이동 124-17번지에 터를 잡고 살면서 이생진, 임보, 채희문 시인 등을 만나게 .

   주변머리가 없어 이사 한 번 하지 않고 뒷산의 인수, 백운, 만경과 놀며 북한산 양지바른 곳에 복숭아나무를 심어 꾸며 놓은 우이도원牛耳桃源, 우이동솔밭공원, 방학동 은행나무국립4·19민주묘지의 청악매를 즐기면서 살고 있음.

* 1979년 김석규, 이영걸 시인과 3인 시집산상영음山上詠吟을 내고 이듬해에바다에 뜨는 해, 그리고 1981년에원단기행元旦記行을 냄.
* 1980년 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가 민성사에서 나옴.

* 1981년 딸 裕彬 태어남. (2015년 전종원과 결혼함).

* 1983년 직장을 동덕여고로 옮겨 18년 동안 근무하다 2000년 퇴직함.

  洪海里 詩選이 탐구당에서 기획 출판하고 있는 '탐구신서' 275번으로 출간됨.

   이 시선집에는 첫시집投網圖로부터 1980년에 나온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에 들어 있는 작품 가운데 108편을 선별하여 묶음.

* 1985'진단시' 동인으로 테마詩 운동에 동참하다 1995년 그만두고 '우이동시인들'의 활동에 전념함.

* 1986년 우이동에 살고 있던 이생진, 임 보, 채희문, 신갑선 시인과 '우이동시인들'이란 동인을 결성함.

* 1987 봄에 동인지 제1우이동을 내고 자축하기 위해 그해 5월 덕성여대 입구에 있는 카페 파인웨이에서 시낭송회를 개최한 것이 우이시낭송회의 효시가 됨.

  우이시낭송회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3시부터 도봉도서관 시청각실에서 개최하여 20194월 현재 370회에 이름.

   우이동시인들의 동인지는 신갑선 시인이 6집까지 참여하다 떠난 후 7집부터는 4명이서  해마다 봄가을로  간행하여 199925집에 이르게 됨.(‘우이동 사인방이란 별명을 얻게 됨).

   월간우리를 간행하는 한편 북한산 우이도원에 올라가 봄에는 삼각산시화제를, 가을에는 삼각산단풍시제를 개최해 오고 있음.

* 1987년 시집대추꽃 초록빛을 동천사에서 펴냄.
* 1989년 시집『청별淸別을 동천사에서 펴냄.
* 1992년 시집은자의 북을 작가정신에서 펴냄.
* 1994년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를 동천사에서 펴냄.
* 1996년 시집투명한 슬픔을 작가정신에서 펴냄.
* 1998년 난을 주제로 한 시집애란愛蘭'우이동시인들'이 만든 출판사 '우이동사람들'에서 펴냄.

* 1999년 우이시낭송회에 참여하는 시인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인지 간행을 잠정적으로 쉬고 월간牛耳詩를 발행하기 시작함.

* 2003년 문학단체로는 처음으로 우이시회가 제13회 편운문학상을 수상함.

* 20047월 중국 칭다오대학의 초청으로 '한중현대시교류 세미나 및 시낭 송회'를 칭다오대학에서 개최함.

* 2006년 봄에 오랜 공백을 깨고 시집, 벼락치다가 도서출판 우리글에서 나옴.
* 같은 해 가을에 시집푸른 느낌표!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옴.

* 2007년 우이시낭송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들면서 명칭을 ()우리진흥회로 바꾸고 월간시지牛耳詩의 명칭도우리로 변경함.

   초대 및 2대 이사장을 역임하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4, 5, 6대 이사장직을 다시 맡음.(2023년 제9대 이사장을 맡음).
* 2008년 봄에 시집황금감옥이 우리글에서 나옴.

*  같은 해 가을에 시선집 비타민 가 도서출판 우리글에서 나옴. 이 시선집에는 21세기 들어서 낸 세 권의 시집, 벼락치다』『푸른 느낌표!』『황금감옥에서 108편의 작품을 골라 실어 놓음.

* 2010년 시집비밀이 우리글에서 나옴.

* 2012년 첫 시집부터 15번째 시집에서 가려 뽑은 작품으로 엮은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가 우리글에서 나옴.

* 2012년 제16시집독종毒種 이 도서출판 '북인'에서 나옴.

* 2013년 꽃시집금강초롱이 도서출판 <>에서 나옴.

* 2015년 시집치매행致梅行이 도서출판 황금마루에서 나옴.

* 2016년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가 도서출판 움에서 나옴.

* 2017년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이 도서출판 움에서 나옴.

* 2018년 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가 도서출판 움에서 나옴.

* 2019년 첫 시집投網圖(1969)를 낸 이후 50년을 결산하는 시선집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를 도서출판 움에서 냄.

* 2020년 시집『정곡론』이 도서출판 움에서 나옴.

* 2020년 시선집『마음이 지워지다』가 도서출판 놀북에서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