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산책

洪 海 里 2019. 4. 18. 10:59

                           * 산책 · 2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시집『독종』(2012, 북인) 

 

*

할 수 있으면 가볍게 발을 떼려고 한다

. 둔한 몸이지만 마음을 가뿐히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산책이 산 책이 되려면 무엇을 찾고자 하는 의무감을 먼저 벗어야 한다.

자리를 떠나고 새로운 경치가 눈에 드는 것도 좋은데, 한 발 한 발 짐 하나 덜어내는 홀가분한 걸음이 더 좋다.

  그리하여 내 산책은 주로 저녁 걸음이다.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아침 발걸음이 설레기도 하겠지만, 종일 묻은 때 씻어내는 방법으로 으뜸이다.

이처럼 묵은 생각을 느릿느릿 놓고 가는 마음이 산책의 원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뜻밖에 살아있는 경을 만나 읽는 날이 있다.

          - 금 강.

 

 

* 산책은 살아 있는 교과서다.
이 또한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시인의 마음은 자연과 교감한다.
자연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다. 
그 무엇이 되겠다고 치고 박는 아비규환 같은 일상을 벗어나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저들을 안쓰럽게 내려다보는 신선의 마음을 엿보는 것은 나만의 상상일까.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시를 굳이 길게 써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길게 쓰지 않으면서도 행간에 뜻을 숨겨두어서 그것을 들춰보게 하는 고도의 전략은 시 공부를 하는

모든 이들의 교과서가 아닐까.
          - 김성찬(시인)

 

* 스크린도어 앞에서 이 시를 접할 때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시는 시가 갖춰야 할 쾌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을 모두 갖췄다. '산책'이라는 말에서 '돈을 주고 산 책',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산 책'을 떠올리며 교묘한 언어유희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쾌락적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아울러 산책을 '자연경'이라는 경전을 읽는 행위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며 '산책'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철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각성을 깨우쳐 준다. 이보다 확실한 교훈적 기능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시가 갖춰야 할 창의성과 적절한 비유와 상징, 그리고 언어유희를 통한 시적 향유의 묘미를 깨닫게 한다. 이런 시 정말 좋다.

그렇다고 모두 이런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한 편의 시를 통해 쾌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시를 창작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의 기본을 착실히 익혀야 한다. 축구선수가 축구규칙을 익히듯이 시인으로서 시의 규칙을 확실하게 익혀나가야 한다.

- 이인환. '17.07.19 (yakyeo) Omynews

 

   * 시인들 곁에서 시를 읽으며 늙는 것은 천복의 향연이리. 청정한 시담을 즐기며 벗님과 탁주 한잔 나누면 억만장자의 금력이나, 통치자의 권력에 묻어 다니는 욕심의 가격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호화 별장에 들락거리고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청정한 거부巨富, 청백리 별장에서 서책을 즐기며 살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꿈속에서도 경험한 사실이 없지 않는가.

그러나 실망 할 일은 아니다. 자연을 벗 삼아 고고한 자존의 길을 가는 선비 시인을 바라보며 그의 시상을 흠모하고 시심을 공유하면 호사豪奢보다 그윽한 삶의 맛이 거기에 있다. 그 길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길인지는 경험해야 아는 하일夏日 염천炎天에 녹음의 경지다. 시를 구상하며 산책散策을 즐기는 시인의 생활 속에는 무진, 무진 퍼져나가는 생동하는 생각이 서책인가 보다. 산책은 산[生] 책을 읽는 것이란다. 시심을 생활 속으로 가져와서 시정詩情을 섬기고 자연과 동행하여 사는 재미를 무엇에 비교하리요. 

  건강을 생각하며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아졌다. 산책길이 관광명소가 되기도 하여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만들고 선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명소를 찾지 않아도 좋다. 자아를 다독여 사색을 즐기는 산책이면 어디인들 어떠랴. 홍해리 시인님의「산책」이란 시는 참된 사색을 즐기는 길을 열어주는 명시다. 허욕을 버리고 정결하게 사는 선비의 길이며, 노경을 다독이며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며, 서민 대중을 교화하는 자정의 도력道力이다. 살아있는 책 자연경自然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하며 시인의 혜안에 감탄하고, 시혼에 동화 되어 이끌린다. 

  시「산책」을 암송하며 산길을 따라가면 그리움의 정담이 가슴에서 들린다. 귀에 익은 새들과 곤충들의 지저귐이 한 가락의 시심 가득한 노래가 되기도 하고, 고향 소리로도 들리며, 보고 싶은 사람의 환상이 떠오르게도 한다. 해거름 산길에서는 석양의 미소 속에서 인생의 그림책을 눈으로 듣고 귀로 보며 발로 읽는다. 석양 속에 내가 있고, 내가 석양인데 서론보다 긴 결론을 왜 찾고 있는지. 허술하게 흘려보낸 세월에서 남은 시간을 재는 것이리.

  숲이 우거진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또 다른 세상인데, 해가 기우는 서쪽 하늘엔 구름의 채색이 한 폭의 명화다. 시가지 원경과 산으로 이어지는 산해의 경관은 결국 산으로 한계를 긋는 듯 멍울진 시야가 흐려진다. 내가 늙은 탓이리. 내 시계視界엔 산도, 하늘도 붉은 노을인데, 그 한계의 끝은 산에서 산이요 하늘이다. 한계가 없는 자연의 무한한 경전이리라.

  존경하는 시인은 저런 정경을 보고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을 읽는 것”이라 고 했을 것이다. 그 시를 중얼거리면 시선詩仙의 길을 가는 듯, 살아 있는 책을 읽는 듯, 현실과 시상의 세계를 오가느라 혼자 즐김이 오히려 옹골차다. 무관심 했던 길이었는데 시인의 깨우침에서 자연경自然經을 읽는 혜안을 얻는다.

  ‘생각의 문을 열고 오감을 동원하라!’는 명령이 없어도 고즈넉한 산책길에선 생각의 누각을 오르고, 내리게 된다. 사색의 길이 회상의 길도 되어 마음 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던 추억의 길도 거닐게 되니까. 지나간 세월 속에 정성을 다하지 못함에 후회의 성을 쌓기도 하지만, 흘러간 젊음은 들꽃에 서 더 아름답다. 자연경의 서문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 자연이 예술이요, 예술이 자연인 삶이 인생의 경전임을 안내했으리라. 서산을 넘는 석양의 행렬이 너무나 화려해서 발을 멈추고 얼없이 바라만 본다.

  ‘저 아름다운 천계天界 정경情景은 누구의 마음일까’ 노을이 만드는 화면의 자막을 읽기엔 내 시력이 모자란다. 석양은 무슨 언어로 저 긴 설명문을 쓰는지. 지상의 애환을 다 보고도 못 본 듯 지나치더니 참았던 감정을 색깔로 풀어내는가. 서쪽하늘에 내려놓는 화첩에 필치도, 색채도 미지의 경지다. 어느 화공이 저 자연이 그리는 대형화면을 흉내내리요. 태양도 하루를 마감하는 기록엔 일필휘지의 채색 사인을 남기나 보다. 일몰의 낙관이다. 그 흔적이 내 서러움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멍-해진다.

  저 신비의 운해의 모양을 무엇에 비교하리오. 하늘가람伽藍의 큰 스님이 법승을 모아놓고 중생을 구제하자는 서원誓願을 약속하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 우주의 오늘과 내일을 이어놓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열반식이면 어떠리. 내 가슴으로 연결된 인연의 끈을 당기는 듯, 놓아주는 듯 정감을 부풀리는데 그의 사랑의 언어를 해석할 능력이 없다. 소원의 끈을 풀고, 행복을 따라가려고 경배의 손을 가슴에 모으며, 고개를 숙여 그늘진 소망을 석양에 싣는다. 병고를 참으며 고생하는 누님과 아내의 활기를 찾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의 자연경을 읽고 있음이리. 

  홍해리 시인님의 시「산책」은 소리 내어 읽기보다는 산책을 즐기며 가슴으로 읽고, 발로 감상해야 시심의 공명이 더 아름답다. 깊은 맛이 울어난다. 그 맛은 시 밭을 일구는 사색의 땀 맛이요, 경전經典과 그 해설인 경전經傳의 의미를 전함이리라. 시인이 말하는 산[生] 책에서의 자연은 서양인이 사람과 자연을 편 가르는 기계론적 자연관은 아니리. 나를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인 노자의 도덕경 속의 자연경이 아닐는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며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드는 일, 즉 선의 경지에서 접하는 자연의 서책이리라. 

  시「산책」을 읽으며 언어유희의 신비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시인을 언어의 마술사라하면 결례일까. 산책길에서 살아 있는 책을 읽으며, 홍해리 시인의 시상詩想에 빠져 시선詩仙의 경지에서 번역한 자연경自然經으로 마음을 채운다.

   - 이재부(시인)

 

  * 시를 읽으니 몸은 도시에 있지만
머리는 산 속에서 새소리, 나무 바람 소리가 들리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9. 1. 28.
- 동아일보 송은석 기자.

 

 * 재치 있고,

슬기가 있는 시.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이어서,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을 펼치는 일.

 

"한 발 한 발"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 일, 산책은.

  - 오형근(시인).

 

 

가을이 저 만치 가네.

전국에 미세먼지를 씻어주는 촉촉한 가을비가 내린 8일 우산을 쓴 시민들이 서울 강북구

우이천 산책로를 걷고 있다.

9일 중부지방은 아침까지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 미세먼지 농도는 전 권역에서 ‘보통’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동아일보 2018. 11. 9.)

 

 

 

산책 · 2

 

洪 海 里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발로 읽는 책 가슴속에 비단길 펼치고

눈으로 듣는 책 마음속에 꽃길을 여니

줄 줄만 아는 산 책에 줄을 대고

한없이 풀어 주는 고요를 돌아보라

줄글도 좋고 귀글이면 또 어떤가

싸목싸목 내리는 안개, 그리고 는개

온몸이 촉촉이 젖어 천천히 걸어가면

산 책 속에 나 묻히리니,


입으로 듣고 귀로 말하라

인생은 짧고 산책은 길다.

 


  * 몇 번을 되새겨 읽어봐도.... '산책'을 읽고 있노라면 자연경을 읊는 듯합니다
두 번째 산책은 첫 번째 산책을 따라 몇 걸음 더 나아갔을때 느껴지는
마음의 행복과 깊은 고요속에서
잔잔히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과 그곳에서 펼쳐졌을 법한 풍경들과 어우러져
그것들이 스스로의 마음속에 와 닿아 육체와 영혼에 카타르시즘을 일으키는 듯한
깊은 울림을 적어 놓은 시입니다.
자연경의 울림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
촉촉히 가슴에 스며들게 만드는 시어들...!
이런 시를 읽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그리고 영혼이 따스해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 2019. 1. 19.

   공은화(재불 화가)

[포토 에세이]

  雪國 / 동아일보 이은택 기자 (2019-01-24)    

 
 
 

 

국경의 긴 터널 끝에 있다는 순백의 설국을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가 보았을까. 
2017년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지. 
긴 눈길을 아이젠에 의지해 터벅터벅 걸어갔을 때 숲이 있었어.
하늘, 땅, 나무 모두 눈부시도록 하얗게 뒤집어쓴 채

찬란한 빛인지 아니면 아득한 기억인지 모를 

그 숲이 거기에 있었어.
― 강원 인제 자작나무 숲에서
- 사진=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글=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로 이렇게 멋진 시가 탄생한다. 산책散策은 천천히 걸으며 휴식을 취하는 일인데 그 일이 곧 살아 있는 책冊이 되어 무언가를 배우는 학습장이 된다. 자연自然은 우리들의 배움터다. 그 배움터에 살아 있는 책冊(산 책)으로 본 것이다. 사유의 깊이가 바탕이 된 시를 읽으며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간다.

우리들이 흔히 잡초라고 보는 황새냉이, 털별꽃아재비, 그령, 방동사니와 같은 풀들에게서 그들의 질긴 생명럭을 배운다. 방동사니는 뿌리에 향이 있으며 한약재로 재배되어 향부자香附子로 쓰이는 유익한 풀이다. 풀들이 사는 방식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은 어떤 경우의 수에서도 근성을 발휘한다. 그들은 짓밟히면 밟힐수록 숙여 주는 척, 원 걸~더 번성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려 그들은 타인의 눈에 잘 보이려는 자존심을 버리고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자존감을 선택한다. 굽히는 듯 다시 일어서고 쓰러진 듯 또 일어난다. 칠전팔기七顚八起? 아니 팔전구기八顚九起다. 그들의 끈기를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

그들뿐일까. 새들의 지저귐 소리, 흘러가는 구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며 나무들의 인간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말없는 배려 속에 우리들이 안겨 있음을 늘 기억할 일이다. 고마움을 잊지 말 일이다. 산책은 그래서 산~책인 것을 … 시인의 “자연경自然經”을 다시 생각해 보는 아침, 산책을 읽으며 나도 서서히 산책을 서두른다

- 박모니카(수필가) <2021.10.09. 경상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