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새
洪 海 里
바람에 일렁이는 은백의 머리칼
아름답게 늙은 사람 고운 사람아
저건 꽃이 아니라 차라리 울음이리
낮은 곳으로 펼치는 생명의 비단이여
구름으로 바람으로 굽이치는 만릿길
끊일 듯 들려오는 향기로운 단소 소리
가다가 돌아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면
수천수만 새 떼의 비상이네
물보라 피우는 능선의 파도이다가
풀밭에 달려가는 양 떼이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쓸쓸한 그리움이네
산기운 모아 뽑는 허이연 기침소리
저건 꽃이 아니라 차라리 울음이네.
* <으악새>에서도 양 감각의 이미지는 자유자재로 구사되어 있다. 억새풀
같은 흔한 소재에서 참신한 상을 끌어내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생명의
비단에서 굽이치는 구름길이나 바람길, 새 떼의 비상, 물보라 이는 파도,
양 떼로 이어지는 시각적 표상과 단소소리와 기침소리, 울음으로 연결되는
청각 이미지만으로도 비극적 상념을 조성한다. 추호의 사변적 진술은 물론
묘사를 통한 수식적 언술도 배제되어 있다. 이미지가 감각적이면서도 지적
요소를 모두 구비한다고 할 때 객관적 상관물의 선택은 지적 요소에 해당
하는 시인의 기지에 크게 좌우된다고 본다.
- 유시욱(문학평론가)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러기 하늘에 달이 오르고 (0) | 2019.04.27 |
---|---|
묘비명 (0) | 2019.04.27 |
춘란春蘭 (0) | 2019.04.25 |
봄기운 일어나니 (0) | 2019.04.23 |
시인이여 詩人이여 (0) | 2018.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