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인의 길

洪 海 里 2019. 5. 24. 11:20

 

가을 들녘에 서서 / 洪海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사람들은 말을 안 해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보고 듣는 것에서 모든 욕망이 꿈틀대고

갈등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을...

하여 모든 성인들은 이 보고 듣는 마음의 형상을

없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육신을 걸치고 이 땅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전전긍긍,

고통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끊임없이 죽비로 내려치는 스승이 있어

그나마 어리석음에서 깨우치는 사람이 있으니

이를 일러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깨우친 사람이고 깨우친 사람은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시인이 모두 부처는 아니지만 부처님은 당연히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출처: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 강신주 지음

 

홍해리 시인!

그분은 천생 시인입니다. 당연히 부처님을 지향하는 수도자 같습니다.

백운대가 바라보이는 세란헌 서재에서 매일 새벽 3시에 깨어나는 노시인!  

달빛이 비치는 새벽에 홀로 흰 백지 위에 써 놓는 한 편의 시!

그것은 수도자의 선시입니다.

 

“가을 들녘에 서서”, 이 시 또한 수많은 시간 동안 마음과 눈을 갈고 닦아

얻은 귀한 오도송이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깨달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에서 해탈하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를...

시인은 내게 알려줍니다.

그 길은 눈 감고, 귀 닫고, 마음 버리면 얻을 수 있나니,

그때에야 머무르는 어느 곳에서든지 진실한 사람이 되어 스스로 빛이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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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시인님!

보내주신 메일을 잘 읽었습니다.

시인이 모든이에게 감동을 주는 시 한 편을 남기려는 것이 어찌 욕심이겠습니까?

당연한 바람이고 참시인이라면 세상에 감동을 주는 시를 남기고 가셔야지요.

하여 남은 시간에도 갈고 닦아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시를 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욕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좋은 시 한 편을 남기겠다”는

순박한 뜻조차 버릴 때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가 죽은 노스님, 육신을 불태우고 모두 사라졌을 때

시자들이 불 속에서 찾아 낸 영롱한 사리, 그것이 바로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선생님의 대표시를 찾는다면 “가을 들녘에 서서”도 참 좋지만 나는

“꽃”詩도 참 좋은 시라고 봅니다.

 

 

 

이승의 꽃봉오린 하느님의 시한폭탄

때가 되면 절로 터져 세상 밝히고

눈뜬 이들의 먼눈을 다시 띄워서

저승까지 길 비추는 이승의 등불.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꽃”시야 말로

감동을 주지 않을까요?

꽃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의 길입니다!

! 저승 길 비추는 등불이라니....

놀라운 싯귀입니다.

아울러 그동안 써 오신 여러 시편들과 “치매행” 시편 속에

선생님의 대표작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한참 지난 후에야

사람들이 선생님의 분신인 “사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선생님!

건필하시고 늘 평안하시기 빕니다.

2019. 5. 24.

道隱 정진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