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양귀비와 클로드 모네, 그리고 洪海里

洪 海 里 2019. 6. 7. 04:20

 

양귀비와 클로드 모네

 

이은화 미술평론가입력 2019-06-06 03:00수정 2019-06-06 03:00

 

 
* 클로드모네 ‘양귀비들판’, 1873년.

 

  우리나라에서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 시대의 절세미인을 연상시키지만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잠이나 평화,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 꽃이 되었다. 그런데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에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했던 꽃이자 미술사에 획을 그은 명작의 모델이었다.

  1874년 역사적인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모네는 풍경화 두 점을 출품했다. 그중 하나가 인상주의라는 말의 어원이 된 ‘인상, 해돋이’고, 다른 하나가 초여름 양귀비 들판을 그린 바로 이 그림이다. 그림 속 배경은 파리에서 12km 떨어진 외곽 마을 아르장퇴유다. 보불전쟁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떠났던 모네는 1871년 아르장퇴유에 정착해 1878년까지 살았다. 이곳에서 그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여러 문제작을 완성했다.
 
  가로로 분할된 화면의 위는 하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아래는 붉은 양귀비꽃 들판이 차지하고 있다. 전경에 그려진 양산 쓴 여자와 어린아이는 화가의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이다. 이들은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도 등장한다. 지평선의 경계는 희미하고 인물의 세부 묘사는 과감히 생략했다. 양귀비꽃들도 빠른 붓질로 점을 찍어 표현했을 뿐이다. 당시 사람들에겐 미완성 그림이나 습작으로 보였을 것이다. 모네는 온갖 모욕을 견뎌야 했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추상미술의 전조를 보여주는 혁신적인 그림이다.

  아르장퇴유 시절은 모네에게 가족과 함께한 가장 행복한 시간이자 예술적 성취의 시기였다. 화상 폴 뒤랑뤼엘의 지원 속에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큰아들이 있었고, 1876년에는 둘째 아들 미셸도 얻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너무 큰 것을 잃어야 했다. 둘째 출산 후 건강이 악화된 아내는 결국 1879년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32세였다. 그림 속 아내는 양귀비꽃의 상징대로 혹은 중국의 양귀비처럼 너무도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 이은화 미술평론가 (동아일보 2019. 6. 6.)

 

 * 양귀비 꽃말
흰색 - 잠, 망각
붉은색 - 위로, 위안, 몽상
자주색 - 허영, 사치, 환상
꽃양귀비 - 약한 사랑, 덧없는 사랑

 

 

꽃양귀

洪 海 里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기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넋을 놓는가.


귀 따갑게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널 끌어안고

만신창이 만신창이 불타고 싶어라.

                                         - 시집『淸別』(1989)

 

나의 시감상

 

- 김세형(시인)

 

전 꽃도 달려와 피어 있는 줄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전 꽃이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와 불타고 있는 심장인 줄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진작 그걸 알았더라면 만신창이로 끌어 안고 함께 불타버렸을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저 새빨갛게 불타는 심장,

타오르는 불길을 꺼주려 내 몸을 만신창이 태풍으로 흔들어 대다간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난 죄인입니다. 꽃의 법정에 세워져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난 사랑에 무심했던 무심죄로 두 다리가 잘린 채 종신형을 선고 받고

질주하지 못 하도록 한자리에 뿌리박고 종신토록 서 있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귀 따갑게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같은 천만 송이 꽃빛들의 비난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자리에 고개 떨구고 속죄하며 서 있어야만 하는 죄인입니다.

사랑에 무심했던 죄는 천도를 어긴 자의 죄에 버금가는 죄로서

난 천형에 처해져야 마땅한 죄인 입니다.

꽃의 법정 판사님이시여!

저를 차라리 화형에 처해 주십시요.

저 불타는 양귀비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이 귀 따가운 태양빛 아래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만신창이로 불타게 해 주십시요.

중독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는 사랑에 불타지 않는 죄

만신창이로 만신창이로 불타 버리지 않은 죄

그 죄값을 달게 받을 수 있도록 날 화형에 처해 주십시요.

저 뜨거운 넋을 끌어안고 활활 타오르다 하얗게 재로 남게 해 주십시요.

타오르는 고통의 기쁨으로 죽을 수 있게 절 용서치 마시고

만신창이 花刑에 처해 주십시요.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