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서處暑 지나면
洪 海 里
처서 지나면
물빛도 물빛이지만
다가서는 산빛이나 햇빛은 또 어떤가
강가 고추밭은 독이 오를 대로 오르고
무논의 벼도 바람으로 꼿꼿이 섰다
이제는 고갤 숙이기 위하여
맨 정신으로 울기 위하여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반짝반짝 재재재재
몸을 재끼면서
그리움도 한 움큼 안고
쓸쓸함도 한 움큼 안고
‘사랑이란 늘 허기가 져!’ 하며
물결마다 어깨동무를 한다
다리 밑 소용돌이에 물새 몇 마리
물속에 흔들리는 구름장 몇 점
가자! 가자! 부추기는 바람소리에
흘러가는 물결이여, 세월이여
처서 지나면
모든 생이 무겁고 가벼운
이 마음의 끝
한탄강에 와 한탄이나 하고 있는가.
-시집『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 처서處暑
洪 海 里
풀벌레마다,
쓸쓸
쓸쓸쓸
쓸쓸쓸쓸
쓸쓸
쓸쓸쓸
쓸쓸쓸쓸
쓸쓸타, 운다.
-시집 『독종』(2012, 북인)
♧ 처서處暑
洪 海 里
풀벌레 소리 투명하여
귀그물[耳網]에 걸리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귀 기울여 들어보니,
‘무소유無所有란 소유한 것이 없음이 아니라
“무無”라는 가장 큰 것을 소유함이니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인 것처럼
유有와 무無는 하나니라’ 하고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속도 절도 없는 내 귀에 들릴 리 있겠는가
속절없는 일이다!
투명한 것은 바로 칠흑이라서
그냥 귀에 가득 차는 것이니
들어도 들리지 않는 허공일 뿐
소리 없는 노래였다.
그것이 바로 무소유였다.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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