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시인이여 詩人이여 - 시환詩丸

洪 海 里 2019. 10. 3. 06:41

 

* 을지로3가역.

 

 

시인이여 詩人이여- 詩丸
 
洪 海 里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 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난초밭 일궈 놓고』(1994)

 

 

  * 이 시는 홍해리 시인이 1994년 펴낸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가운데「시인이여 詩人이여 -詩丸」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침몰되어가고 사회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피폐한 현대인들의 정신과 심성을 정화하면서 치유할 수 있는 '비타민 詩'로 정리해 본 시가 아닌가 추측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낭송해 주기에 아주 적절한 시로 생각된다.

  이 시는 작가 자신이 살고 있는 詩의 나라 우이도원 골짜기 옥매원玉梅園 세란정사洗蘭精舍를 배경으로 무소유의 삶을 소유하며 시업에 정진하고 있는 작가의 일상으로 줄창 울리는 귀북소리를  쓴 시로 생각된다.

7.7조 율격으로 지어진 이 시는 운율과 리듬이 가곡으로 만들어지면 참 고아롭고 정서적인 노래가될 것으로 생각되기도한다.이 시에서, "말 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볼 일" 이라는 시말은 월간『우리詩』2008년 3월호 58쪽, '시야! 한잔하자!' 라는 홍해리 시인의 글 속에서"나는  아직 시인詩人이 못 되었음을 오늘의 시인時人으로서 시인是認하는 일이 너무나 시인猜認하지만 어쩔수 없다. 詩답지 않은 

글로 시답지 않은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시인矢人이 될 자질이나 능력도 없다. 시인이 무엇인가, 말의 화살이나 만들어 날리며 말장난이나 하는 사람인가?"라는 표현으로 자기를 낮추어 스스로 겸손해 하는 겸허한 그 자신의 선비다운 성품으로 지은 미덕의 시말일 뿐, 사실은 詩人으로서 시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의지의 패러독스로 풀이할 수 밖에 없다.

   - 손소운(시인)

 

*************************************

 

<감상>

 

말없이 살라는 데 시는 써 무엇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시인이여 詩人이여라는 제목부터 이색적이다. 시란 자연과 인생

에 대한 감흥, 사상들을 운율韻律에 맞춰 표현한 글이다. 사람들을 감

동시키고 삶을 성찰하게 하는 데는 성서나 불경 같은 경전, 두꺼운 철

학책보다 때로는 짧은 시 한 수가 효과적일 수가 있다. 그래서

시인은 속세에서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식이 셋 있어도 모두 기업가로 만들려고 하는 세태에, 시인은 세

속에 물들지 않고 남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고귀한 사람

이다. 성직자는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덧

없음을 이야기하고 우주의 복음福音을 전한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세

상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이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제

시하기도 한다.

 

시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김소월, 조지훈, 박인환이

. 멋진 분들이다. 모두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주옥 같은 시작詩作

을 통하여 어느 성직자, 철학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

향을 준 시인들이다.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걑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아시아 국가 중에 한 · · 일 세 나라는 모두 시를 사랑하는 문화 국

가들이다. 세 나라 국민들은 모두 시를 사랑한다.

신년을 맞이한 감흥을 단시短詩인 하이쿠[俳句]로 짓는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난다. 또한,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는 한시가 매우 생활화되어 자기의 심경을 시작詩作을 통해 상대방에

전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멋지게 보인다.

우리나라도 많은 문화유산을 통해 시문학詩文學이 당시의 지식인들

에게 생활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경치를 산수화로만 남긴 것

이 아니고 시로써도 남겼으며 벼슬을 하거나 낙향을 하는 등 인생에

큰 고비를 맞을 때도 그 심경을 시로 지어 남겼다. 그러나 현대에 이

르러서 우리 사회는 옛멋은 잊어버리고 너무 효율성만 중요시하고 있

지 않은가 한다.

 

20~30년 전만 하여도 축시祝詩라는 것이 잇어 어떤 기념 행사에서

축하의 뜻을 담아 시를 낭독하는 순서가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사라

지고 말았다. , 신년을 맞이하거나 가족의 특별한 기념일에 자작시

自作詩를 지어 낭독하거나 기념 팸플릿 등에 게재하기도 하였는데 요

즈음은 보기가 어려운 일이 된 것 같다.

그만큼 시가 우리 일상생활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시인이 산속에 숨어 살고, 옥 같은 시를 가슴속에 새겨 두기만 하고,

시 쓰는 일이 부질없어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메말라지겠는가.

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인이 시 쓰는 일이 부질없다고

절필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그렇지, 아무리 세상살이가 시 쓰기에 마땅치 않아도 시인은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도 주는 멘토 역할을 계속해 줄 것이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사는 맛이 없을 것이고, 화가가 그림

을 그리지 못한다면 어떤 형벌보다 힘든 일일 것이다. 시인은 더할 것

이다.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한다면 스스로 얼마나 절망하겠는가. 그래

서 시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고귀한 업을 가진 사람이다.

 

- 명시 산책 / 이방주 지음시와 함께 걷는 세상(2015, 북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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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옛 시인들은 괴로운 일이나슬픈 일을 시()로 쓰고, 그 시를 쓴 종이를 찢어 환약(丸藥)처럼 똘똘 말아 환()을 만들었다. 이 종이환을 시환(詩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시환을 냇가나 강가에 앉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고 괴로운 일을 잊곤 했다.

 

말이 잊는다 하지만 어찌 시환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낸다고 잊어지겠는가.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잊고 싶은 일이 있거나 증오원한시샘불화를 씻고 싶을 때 그 사연을 적은 종이로 시환처럼 만들어 물에 떠내려 보냈다. 냇가에 사는 사람은 시냇물에. 강가에 사는 사람은 강물에.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 무당들이 불행이나 병환을 낫게 할 목적으로 그 액살을 적어놓은 부적을 작은 배에 실어 냇가나 강가, 바닷가에서 떠내려 보내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였다. 감옥소에서 나온 자식을 냇가나 강가에 데려다가 발을 씻게 하는 행위라든가, 죽을 때도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죽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 흐르는 물은 감정적인 것, 정신적인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씻어 없애고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정화작용을 했다. 세월을 흐르는 물이란 뜻으로 유수(流水)와 같다고 했다. 그 무엇이건 흐르는 물에 버리면 흘러 사라지고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전통적 사상이었다.

- http://garosu.nayana.co.kr/cgi 에서 옮김.

 

 

 

 

         * 카를 슈피츠베크 ‘가난한 시인’, 1839년.

시인이여 시인이여

  - 詩丸

 

홍 해 리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 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

                        

시인에게, 또는 그대에게

시끄러운 세상에서 시인이 할 일이 무엇인가

시나 쓰고 있어야 할 것인가

자연과 우주가 모두 시이다

자연과 우주가 모두 시를 쓴다

시를 읊는다

때가 되면 산천초목이 모두 시를 쓴다

자연의 시는 금과 은이나 옥 같은

아름다운 시다

시인은 이제 붓을 꺾고

자연의 시를 가슴속에 새겨라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바람과 물, 하늘과 계곡이

모두 시를 읊고 있다

저 바람과 물이

시를 읊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늘과 계곡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는가

시인아, 이제 말없이 티없이

구를처럼 살아라

바람처럼 살아라

물처럼 살아라

 詩丸

그렇다면 '詩丸(시환)'이란 무엇인가?

"우리 옛 시인들은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을

시(詩)로 쓰고 그 시를 쓴 종이를 찢어

환약(丸藥)처럼 똘똘 말아 환(丸)을 만들었다.

이 종이환을 시환(詩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시환을 냇가나 강가에 앉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고 괴로운 일을 잊곤 했다.

잊는다 하지만 어찌 시환을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낸다고 잊어지겠는가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잊고 싶은 일이 있거나

증오ㆍ원한ㆍ시샘ㆍ불화를 씻고 싶을 때

그 사연을 적은 종이로 시환처럼 만들어 물에 떠내려 보냈다.

냇가에 사는 사람은 시냇물에

강가에 사는 사람은 강물에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

무당들이 불행이나 병환을 낫게 할 목적으로

그 액살을 적어놓은 부적을 작은 배에 실어

냇가나 강가, 바닷가에서 떠내려 보내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였다.

감옥소에서 나온 자식을 냇가나 강가에 데려다가

발을 씻게 하는 행위라든가

죽을 때도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죽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 ‘흐르는 물’은

감정적인 것, 정신적인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씻어 없애고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정화작용을 했다.

세월을 ‘흐르는 물’이란 뜻으로

유수(流水)와 같다고 했다.

그 무엇이건 ‘흐르는 물’에 버리면

흘러 사라지고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전통적 사상이었다."

- 참조 : 시집 '은자의 북', 작가정신, 1992.

시환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

한번쯤은 도전해 봄 직도 하겠다.

 

* https://m.blog.naver.com(2022.10.14.)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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