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상> 洪海里 : 임보 : 나병춘의 「자벌레」/ 나병춘, 김석환(시인)

洪 海 里 2019. 12. 14. 09:41

<자벌레 시 3편 감상>

 

자벌레

 

洪 海 里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다시 쌓았다

 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감상>

자벌레를 본다.

저 자그마한 몸뚱어리로 푸른 산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고 벌판을 만든다.

몸 자체가 길이고 강이고 시간이다.

구부리면 산이 되고 쫙 펴면 길게 뻗쳐 지평선이 된다.

작은 몸속에 도사린 우주를 발견한 시인의 눈,

끊임없이 쌓았다 무너뜨리는 자신의 시의 산을

'자벌레'로 은유했으리라.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저 꾸물꾸물한 움직임은

그 얼마나 순정하고 맑고 눈물겨운가?

無等의 산속 오솔길은 또 얼마나 그윽하고 향기로운 것인가?

그 어딘가 숨어있는 옹달샘은 또 얼마나 새콤달콤할 것인가?

아무도 몰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의 일에 몰두하여 푸른 잎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쬐끄만 자벌레들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으리라.

구불텅구불텅한 갈지자로 혹은 상쾌하고 신나는 둥근 산의 모습으로

가벼운 날갯짓으로 비상할 날 꿈꾸면서...

-나병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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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벌레

 

임 보

 

 

순례의 길을 가는

라마의 선승처럼

 

어느 성지를 향해

그리 바삐 가시는지

 

가사도 걸치지 않은

저 푸른 맨몸

 

일보궁배一步弓拜

일보궁배一步弓拜

 

* 일보궁배一步弓拜 : 매 걸음마다 활처럼 온몸을 굽혀 하는 절.

 

<감상>

 

우주에 대한 연민이 시심詩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가장 거룩한 것에서부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미물에 이르기까지

먼지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늘 경배의 마음으로 대한다.

그래서 모든 자연물이 교과서이며 경전이다.

시인의 마음은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물로부터

보이지않는 먼 별에 이르기까지 그리움의 대상이며 사랑의 대상이다.

숲길을 바삐 가다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들이며 문득 앞을 본다.

푸른 잎사귀에 꼼지락거리는 사물이 있다.

자세히 보니 자벌레다.

 

袈裟도 걸치지 않은 //

저 푸른 맨몸 /

一步弓拜 一步弓拜 //

 

알몸으로 꼼지락 꼼지락 길을 가는 한 마리 '자벌레'를 라마의 선승으로 바라본다.

오체투지로 온몸을 던져 기도하는 모습...

암자로 바삐 올라가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

一步弓拜 一步弓拜...

구부리는 모습이 활처럼 휘어졌다.

둥그렇게 휜 모습이 산을 닮았다.

파도를 닮았다.

푸른 알몸에 아무 것 걸치지 않았다.

맨몸으로 왔다 빈 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꼭 닮았다.

일회성의 삶에서 누구는 도를 닦다 가고

또 누구는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다가고

또 누구는 장사를 하여 돈을 벌고

또 누구는 권력과 명예에 팔려 진흙탕을 뒹군다.

아무 죄 없이 푸른 잎새 뒤에 숨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자벌레의 삶...

'일보궁배'란 말은 처음 들었다.

보폭이 활이니 그 누구를 향해 쏘는 화살인가?

짧은 시에 아득한 우주의 호흡이 실려있다.

꾸물럭꾸물럭거리는 우주 파동이 온몸에 전율처럼 다가오지 아니한가?

- 나병춘(시인)

 

자벌레
나병춘
 
자벌레 하나 느릿느릿 기어간다
둥그런 하늘 모습으로 지붕을 만들고
또 평평한 허리로 지평선 만들어가는
저 단순한 굴신운동
구부려야 곧게 펴지는
곧게 펴야 또 구부러지는
길들지 않은 용수철
그 작은 벌레의 몸속에
구부릴 수 없는 하늘이 숨쉬고 있었다니
<감상>
사람 눈으로 볼 때 자벌레의 그 굴신운동은 느릿느릿 기어가는
하찮은 몸짓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자벌레에게는 온몸이 자가 되어 그리운 하늘과 지평선까지
그 아득한 거리를 재며, 만들며 찾아가는
처절한 구도의 몸부림일지도 모르지요.
구부렸다가 펴고 폈다가 구부리고,
길들지 않는, 쉼 없는 그 용수철은 끝내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달고 먼 하늘로 승천하기 위한
오체투지, 영원을 살기 위해 스스로 택하고 감당하는
외롭고 행복한 고통일지도 모르지요
이익이 눈에 보이면 납작 구부리고
없다 싶으면 등을 보이고, 또 돌아서서 좁은 이마 주름 펴고 빛내는
그 교언영색에 능숙한 사람들의 몸짓, 얄팍한 풍속을 나무라는 것일까요
자벌레는 단순히 온몸에 하늘을 품고, 천성에 충실하여
끝내 우화등선 하겠지요.
(자벌레는 정부가 없으되 하늘이 정부요 그 권력에 충실한 국민)
미물의 몸속에 숨은 하늘, 스스로 거기 있으면서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그 자연의 섭리를 발견하는 나병춘시인,
시 쓰기란 어쩌면 그 단순한, 그래서 고통스럽고 행복한
외로운 노동인지요
- 김석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