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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앓는 여자, 강성연

洪 海 里 2020. 3. 10. 11:00


                                      강성연씨가 녹음에 앞서 시집을 읽고 있다. 1주일에 시집 2권을 읽는다는

                                    그는 “책 사면 종이 냄새부터 맡는다. 모서리 구겨지지 않게 페이지도 조심조심

                                    넘긴다”고 했다. /허영한 기자

詩를 앓는 여자, 강성연

조선일보


[2년째 EBS '시 콘서트' DJ]

어렸을 땐 말 없고 내성적… 자연스럽게 문학소녀 됐죠
청취자 사연도 한 편의 詩… 시인들이 靈感 얻어가기도

"산책은 산 책(冊)이다… 살아 있는 책이다." DJ가 천천히 홍해리 시인의 시구(詩句)를 읊조린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우면동 EBS방송센터 제1스튜디오에서 '강성연의 시(詩) 콘서트(매주 월~토요일 오전 11시)' 진행자, 배우 강성연(37)은 설레는 듯 말했다. "가을을 심하게 앓아요. 자면서도 감성에 젖어 있거든요. 매 순간 사색에 빠지다 보니 학창 시절엔 엄마가 걱정이 많으셨죠." 고교 시절까지도 그는 말수가 적고 사람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자연히 책과 친해졌다. "말을 못하니 속에 있는 걸 종이 위에라도 꺼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어요. 연기도 문장을 상상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니까, 제가 배우가 된 것도 어쩜 그때의 속앓이 덕분인 것 같아요."

                  
  그녀의 끄적임은 몇 편의 시가 되기도 했다. '흙에게 나는 그랬다. 왜 이리 곱지 않냐고… 흙은 묵묵히 자신의 속내를 보여줬다.' 지난해 5월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쓴 시를 그녀는 방송에서 읽었다. "시인들에게 물어보니 속말을 시로 풀어쓰는 게 자기와의 좋은 소통 방법이라 하더라고요." 고교 시절 그는 음대에 가기 위해 성악을 배운 적이 있다. 그때 키운 성량으로,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수백 편의 시를 소리 내 읽었다. "낭독은 문장을 살게 하는 거예요. 연기나 노래와 같죠." 그는 지난 7월 첫 뮤지컬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에서도 한 달간 시인으로 살았다. "제가 연기한 김연수 수녀가 원래 시인이었대요. 제가 시랑 연이 있긴 있나 봐요."

  고은·김경주·문정희·진은영 등 지금까지 68명의 쟁쟁한 시인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김이강 시인은 미모에 놀랐고, 신용목 시인은 제가 시를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다 받아주셔서 좋았어요. 이해인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인생에 대해 감사하게 되죠." 시인들과 친해지자 시심(詩心)도 깊어졌다. 시와 시인 공부에 도움을 줘 이 방송 '고문(顧問)'으로 불리는 손택수 시인과 친분으로 강씨는 10월 19일 열리는 노작문학상 시상식 사회도 맡기로 했다. 그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시인은 폐쇄적일 거라는 편견을 많이 깼다"고 말했다. 8월 27일부터는 SNS 시인으로 유명한 하상욱씨가 수요일 고정 게스트로 합류했다. 강씨는 "어렵고 난해한 지적 허영이 아닌, 시와 대중 간 거리 좁히기가 방송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방송의 또 다른 중추는 바로 청취자다. "지난 16일 방송 주제가 '물들다'였어요. 김치를 썰 때 도마에 배는 엷은 김치 국물에 인생을 비유한 주부도 있었고, 아이의 볼에서 해맑게 번져가는 홍조를 통해 행복을 노래한 분도 있었죠. 사연 하나하나가 한
편의 시예요. 오죽하면 시인들도 여기서 오히려 영감을 얻어간다고 하겠어요." 이런 수많은 시상(詩想)에 힘입어 이 프로는 지난 3월, 제25회 '한국 PD대상' 라디오 시사·교양·드라마 부문 수상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1월 동갑내기 재즈피아니스트 김가온씨와 결혼한 그는 "낭독은 나이 들어서도 하고 싶어요. 시와 인생은 같이 가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30/2013093004652.html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시집『독종』(2012, 북인) 


* 할 수 있으면 가볍게 발을 떼려고 한다. 둔한 몸이지만 마음을 가뿐히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산책이 산 책이 되려면 무엇을 찾고자 하는 의무감을 먼저 벗어야 한다.

자리를 떠나고 새로운 경치가 눈에 드는 것도 좋은데, 한 발 한 발 짐 하나 덜어내는 홀가분한 걸음이 더 좋다.

  그리하여 내 산책은 주로 저녁 걸음이다.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아침 발걸음이 설레기도 하겠지만, 종일 묻은 때 씻어내는 방법으로 으뜸이다.

이처럼 묵은 생각을 느릿느릿 놓고 가는 마음이 산책의 원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뜻밖에 살아있는 경을 만나 읽는 날이 있다.

          - 금 강.



* 산책은 살아 있는 교과서다.
이 또한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시인의 마음은 자연과 교감한다.
자연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다. 
그 무엇이 되겠다고 치고 박는 아비규환 같은 일상을 벗어나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저들을 안쓰럽게 내려다보는 신선의 마음을 엿보는 것은 나만의 상상일까.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시를 굳이 길게 써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길게 쓰지 않으면서도 행간에 뜻을 숨겨두어서 그것을 들춰보게 하는 고도의 전략은 시 공부를 하는

모든 이들의 교과서가 아닐까.
          - 김성찬(시인)


   * 시인들 곁에서 시를 읽으며 늙는 것은 천복의 향연이리. 청정한 시담을 즐기며 벗님과 탁주 한잔 나누면 억만장자의 금력이나, 통치자의 권력에 묻어 다니는 욕심의 가격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호화 별장에 들락거리고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청정한 거부巨富, 청백리 별장에서 서책을 즐기며 살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꿈속에서도 경험한 사실이 없지 않는가.

그러나 실망 할 일은 아니다. 자연을 벗 삼아 고고한 자존의 길을 가는 선비 시인을 바라보며 그의 시상을 흠모하고 시심을 공유하면 호사豪奢보다 그윽한 삶의 맛이 거기에 있다. 그 길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길인지는 경험해야 아는 하일夏日 염천炎天에 녹음의 경지다. 시를 구상하며 산책散策을 즐기는 시인의 생활 속에는 무진, 무진 퍼져나가는 생동하는 생각이 서책인가 보다. 산책은 산[生] 책을 읽는 것이란다. 시심을 생활 속으로 가져와서 시정詩情을 섬기고 자연과 동행하여 사는 재미를 무엇에 비교하리요. 

  건강을 생각하며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아졌다. 산책길이 관광명소가 되기도 하여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만들고 선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명소를 찾지 않아도 좋다. 자아를 다독여 사색을 즐기는 산책이면 어디인들 어떠랴. 홍해리 시인님의「산책」이란 시는 참된 사색을 즐기는 길을 열어주는 명시다. 허욕을 버리고 정결하게 사는 선비의 길이며, 노경을 다독이며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며, 서민 대중을 교화하는 자정의 도력道力이다. 살아있는 책 자연경自然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하며 시인의 혜안에 감탄하고, 시혼에 동화 되어 이끌린다. 

  시「산책」을 암송하며 산길을 따라가면 그리움의 정담이 가슴에서 들린다. 귀에 익은 새들과 곤충들의 지저귐이 한 가락의 시심 가득한 노래가 되기도 하고, 고향 소리로도 들리며, 보고 싶은 사람의 환상이 떠오르게도 한다. 해거름 산길에서는 석양의 미소 속에서 인생의 그림책을 눈으로 듣고 귀로 보며 발로 읽는다. 석양 속에 내가 있고, 내가 석양인데 서론보다 긴 결론을 왜 찾고 있는지. 허술하게 흘려보낸 세월에서 남은 시간을 재는 것이리.

  숲이 우거진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또 다른 세상인데, 해가 기우는 서쪽 하늘엔 구름의 채색이 한 폭의 명화다. 시가지 원경과 산으로 이어지는 산해의 경관은 결국 산으로 한계를 긋는 듯 멍울진 시야가 흐려진다. 내가 늙은 탓이리. 내 시계視界엔 산도, 하늘도 붉은 노을인데, 그 한계의 끝은 산에서 산이요 하늘이다. 한계가 없는 자연의 무한한 경전이리라.

  존경하는 시인은 저런 정경을 보고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을 읽는 것”이라 고 했을 것이다. 그 시를 중얼거리면 시선詩仙의 길을 가는 듯, 살아 있는 책을 읽는 듯, 현실과 시상의 세계를 오가느라 혼자 즐김이 오히려 옹골차다. 무관심 했던 길이었는데 시인의 깨우침에서 자연경自然經을 읽는 혜안을 얻는다.

  ‘생각의 문을 열고 오감을 동원하라!’는 명령이 없어도 고즈넉한 산책길에선 생각의 누각을 오르고, 내리게 된다. 사색의 길이 회상의 길도 되어 마음 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던 추억의 길도 거닐게 되니까. 지나간 세월 속에 정성을 다하지 못함에 후회의 성을 쌓기도 하지만, 흘러간 젊음은 들꽃에 서 더 아름답다. 자연경의 서문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 자연이 예술이요, 예술이 자연인 삶이 인생의 경전임을 안내했으리라. 서산을 넘는 석양의 행렬이 너무나 화려해서 발을 멈추고 얼없이 바라만 본다.

  ‘저 아름다운 천계天界 정경情景은 누구의 마음일까’ 노을이 만드는 화면의 자막을 읽기엔 내 시력이 모자란다. 석양은 무슨 언어로 저 긴 설명문을 쓰는지. 지상의 애환을 다 보고도 못 본 듯 지나치더니 참았던 감정을 색깔로 풀어내는가. 서쪽하늘에 내려놓는 화첩에 필치도, 색채도 미지의 경지다. 어느 화공이 저 자연이 그리는 대형화면을 흉내내리요. 태양도 하루를 마감하는 기록엔 일필휘지의 채색 사인을 남기나 보다. 일몰의 낙관이다. 그 흔적이 내 서러움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멍-해진다.

  저 신비의 운해의 모양을 무엇에 비교하리오. 하늘가람伽藍의 큰 스님이 법승을 모아놓고 중생을 구제하자는 서원誓願을 약속하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 우주의 오늘과 내일을 이어놓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열반식이면 어떠리. 내 가슴으로 연결된 인연의 끈을 당기는 듯, 놓아주는 듯 정감을 부풀리는데 그의 사랑의 언어를 해석할 능력이 없다. 소원의 끈을 풀고, 행복을 따라가려고 경배의 손을 가슴에 모으며, 고개를 숙여 그늘진 소망을 석양에 싣는다. 병고를 참으며 고생하는 누님과 아내의 활기를 찾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의 자연경을 읽고 있음이리. 

  홍해리 시인님의 시「산책」은 소리 내어 읽기보다는 산책을 즐기며 가슴으로 읽고, 발로 감상해야 시심의 공명이 더 아름답다. 깊은 맛이 울어난다. 그 맛은 시 밭을 일구는 사색의 땀 맛이요, 경전經典과 그 해설인 경전經傳의 의미를 전함이리라. 시인이 말하는 산[生] 책에서의 자연은 서양인이 사람과 자연을 편 가르는 기계론적 자연관은 아니리. 나를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인 노자의 도덕경 속의 자연경이 아닐는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며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드는 일, 즉 선의 경지에서 접하는 자연의 서책이리라. 

  시「산책」을 읽으며 언어유희의 신비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시인을 언어의 마술사라하면 결례일까. 산책길에서 살아 있는 책을 읽으며, 홍해리 시인의 시상詩想에 빠져 시선詩仙의 경지에서 번역한 자연경自然經으로 마음을 채운다.

   - 이재부(시인)


  * 시를 읽으니 몸은 도시에 있지만
머리는 산 속에서 새소리, 나무 바람 소리가 들리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9. 1. 28.
- 동아일보 송은석 기자.


 * 재치 있고,

슬기가 있는 시.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이어서,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을 펼치는 일.


"한 발 한 발"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 일, 산책은.

  - 오형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