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천 편의 시 / 홍해리 / 최길호 (목사)

洪 海 里 2020. 6. 5. 06:56

 

내가 좋아하는 시와 글들

 

천 편의 시/홍해리

 

 

1.

오늘 지인들과 점심을 했다.

즐거운 대화 후에 사무실에

들어오니 소포가 와 있었다.

낯익고 반가운 필체가 보였다.

내가 늘 높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홍해리 시인의 필체다.

2020년 6월 1일에 초판 인쇄된

시집이 담겨 있다.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2.

 

홍해리 시인에게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가 있다.

그 아내를 대하며 하루하루

보내는 시인의 삶이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까?

아내를 보살피며 혼자

대화하고, 혼자 사랑하며

혼자 자책하는 시인의

생각이 절절하다.

그 힘든 독백의 시간을 시를

통하여 풀어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세월을 견뎠을까?

 

3.

 

그런 시인의 시를 곁에서

타박하고 비아냥거린 사람도

있었던가 보다.

"마누라 아픈 게 뭐 자랑이라고

벽돌 박듯 시를 찍어내냐?"

참 무정하고 잔혹한 심성이다.

쓸쓸한 바람이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맘에 큰 격려가 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글이

홍 시인에게 도달했다.

시인은 이 따뜻한 글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 한 편에 담아

영원히 가슴에 간직했다.

그 시가 "천 편의 시"이다.

김석규(시인)란 분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분이다.

 

4.

 

천편의 시/홍해리

* 편지

시집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감사히 받았습니다.

뜨겁게 축하합니다.

기왕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했으니

천 편의 시를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신Muse詩神도

감동하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환자의 병을 말끔히 낫게

해 줄 것입니다.

축원합니다!

- 김석규 드림.

* 답장

그래 천 편의 시를 쓰자

아니, 천 편 아니라 만 편인들

쓰지 못하랴

병든 마누라 팔아 시를 쓴다고

누가 얄밉게 비아냥대든 말든

그게 뭐 대수겠나

그래서 아내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천 편, 만 편의 시를 쓰고

또 쓰리다!

- 홍해리 드림.

 

5.

 

시인은 "치매행" 이란 이름으로

아내를 사모하는 시집 3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번이 4번째

시집이다. 치매행 331로 시작해

421로 마친다. 아내를 위한

시를 이렇게 많이 쓴 시인이

또 있을까?

아직 천 편에 이르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아니 만 편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아내 사랑이나 그의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6.

 

그의 시는 단순한 시가 아니다.

구도의 탄원이고 기도문이요

영혼의 절규요 깊은 어둠에서

길어 올린 가슴 저미는 노래이다.

그의 고통이 빚어낸 찬란한

무지개이다.

그 사랑의 노래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저녁이다.

 

7.

치매-치매행 391/홍해리

이별은 연습을 해도 여전히 아프다

장애물 경주를 하듯 아내는 치매

계단을

껑충껑충 건너뛰었다

"네가 치매를 알아?"

"네 아내가, 네 남편이,

네 어머니가, 네 아버지가

너를 몰라본다면!"

의지가지없는 낙엽처럼

조붓한 방에 홀로

누워만 있는 아내

문을 박차고 막무가내

나가려들 때는

얼마나 막막했던가

울어서 될 일 하나 없는데

왜 날마다 속울음을 울어야 하나

연습을 하는 이별도

여전히 아프다.


[출처] 천 편의 시/홍해리 시인|작성자 최길호 은혜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