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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정일남(시인)

洪 海 里 2020. 6. 9. 03:43

洪海里 시집『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정일남(시인)

 

   홍해리 시인이 치매致梅란 이름의 시집, '사부곡思婦曲'을 새로 냈다. 「치매행 · 331」에서 「치매행 · 421」까지다. 같은 주제로 사부곡을 이처럼 방대하게 쓴 사례는 모르기는 하지만 지구상에서 처음이 아닌가(임보 시인의 말) 여겨진다. 일찍이 홍해리 시인은 "癡呆는 致梅라 해야 한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명문을 남겼다. 치매환자를 간병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가는 것. 매화꽃처럼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질환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차라리 육체의 어느 부위가 병들어 수술을 하고 그 부위가 차차 완치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간병인은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다. '당신이 완치되면 우리 제주도 성산포에서 며칠 놀다 오자' 이런 약속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치매환자는 여행 자체를 모른다. 그리고 어디 아프다는 말이 없다. 차라리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하면 간병인은 답답함을 덜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니 같이 살아도 지구 반대쪽에 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매화꽃은 철들기를 거부하고 아픈 것은 간병인뿐이다.

 

   여기 치매행 336의「아내의 생일」을 보면 아내가 칠순을 맞았다. 남들 같으면 칠순 잔치를 할 것이다. 옛적엔 칠십을 사는 것은 드물다고 했다. 그래서 일가친척이 다 모여 축하의 잔치를 했던 것이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차려 올리고 자식들과 친척들이 축하의 술잔을 올렸다. 축하 케이크도 자르고 축시도 낭송하고 축하의 노래도 부르며 즐겼을 날이다. 그런데  "고희 인생이 이리 허망한 탑일 줄을!// 이쪽 세상은 환한데/ 저쪽은 어둡고 적막하기 그지없습니다."라고 읊는다. 이 적막한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인생이 가는 길이 이렇게 막막하다.

 

  「꽃은 아프다 하지 않는다」 (치매행 · 343). 병자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아프다는 말이 없다. 이것은 육체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 있는 내가,/ 내가 아프다/ 아내는 꽃인가,/ 아닌가?"  아프다고 하는 환자에게는 진통제 주사를 놓으면 해결된다. 아픈 것을 모를 뿐 아니라 무얼 먹고 싶다. 물을 마시고 싶다. 사과를 먹고 싶다. 이런 식욕이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아프단 말 하지 마라/ 그 말 들으면/ 나도 아파 눈물이 진다" 했는데. "무슨 인연인지 우연인지 그 해부터/ 아내는 아파 누워 있다." 누워 있는 이 매화꽃이 언젠가 기억이 돌아와 철이 들기를 우린 바랄 뿐이다.

 

  「살아 있음에 대하여」(치매행 · 345).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다. 숨을 쉬고 있다고 살아 있다고 보겠는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언가 활동해야 살아 있는 것이다.  "사는 게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사는 것인가". 입이 있어도 말이 없고 손발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런 적막 속에서 환자를 바라보며 시인이 위로받는 것이 있다면 시를 쓰는 일뿐일 것이다. 이 연작시의 기록이 자식과 먼 후손과 가문을 빛내는 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리라 확신한다. 인간이 벌레처럼 살다 갈 수는 없다. 환자가 시인에게 주는 선물. 연작시를 이끌고 가는 것을 고맙게 여겼으면 한다.

 

   「슬픔의 뼈」(치매행 · 348). 이 시를 읽어보면 인생이란 한 편의 꿈이란 느낌을 받는다. 어쩌다 환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가에 웃음기가 어리기도 한다. 그게 창백하고 쓸쓸한 꽃이 된다. 참으로 천진한 매화가 피는 웃음. "삶이란/ 만나고 헤어지면서/ 상처도 받고 꽃도 피워가는..."  태풍과 홍수와 지진과 산불을 거친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내일이 지나면 다가올 저승이 있지만 어쩌면 이미 이승과 저승을 다 겪어본 듯한 삶이 아닌가. 인간을 지탱해 주는 척추 뼈가 직립인간을 살게 하는 동안 살도 아프지만 뼈는 더 슬프다.

 

  「삼류 드라마>」(치매행 · 350).  스스로를 삼류라고 말하는 사람은 삼류가 아니다. 겸허한 마음이 앞서서 그런 것이다. 드라마에서 주연이 아니고 조연인 경우가 더 빛나는 때가 있다. 이 시의 공간에는 두 사람의 조연이 있다. 한 사람은 간병인이고 한 사람은 방에 누워 있는 천진난만한 꽃이다.  "둘이서 가는 거리/ 얼마나 떨어져 거리를 잴 수 있는지/ 뭘 더 바라랴/ 이미 분에 넘치는 복이지..."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먼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바람은 두 사람의 조연을 위해 해줄 것이 없다. 봄이 와도 눈이 녹지 않는 동토凍土가 이어진다. 스스로를 '나는 일류다.'라고 하는 자들은 실은 일류가 못 되는 자들이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낙엽 한 장」(치매행 · 362). 인간이 고독할 때 낙엽 한 장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거기서 생의 허무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어떤 영감을 얻어 시구詩句를 창조할 때도 있다고 본다. 어떤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처지를 견뎌내기 힘들 때 술에 마취되고 싶어 한다. 반 고흐도 귀를 자르기 전에 견디기 힘들면 압생트를 마셨다고 한다. 그 귀를 신문지에 싸서 창녀에게 주었다고 한다. 창녀가 기겁을 했다고 한다. "유혹하지 마라/ 불타는 독주여//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았다/ 노을이 불처럼 피고 있다..."  이 비가悲歌는 독자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낮은 자리에서 보는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낙엽 한 장은 바람이 이끌고 세상 끝으로 간다.

 

  「민들레 씨앗」 (치매행 · 363). 이 시의 주인공의 심정을 백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70세 매화꽃을 지키다 지치게 되면 떠오르는 생각이 민들레 씨앗이다. 바람에 낙하산을 타고 멀리 하늘로 날아서 어느 무인도에라도 가서 민들레 영토를 만들어 살고 싶었던 것이다.  "저렇게 가벼워져 떠나가리라/ 저 푸른 하늘로..."  이런 심정은 병자를 간병해 보지 않은 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늘이 맺어준 사랑이 아니었다면 배낭 하나 메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김삿갓처럼 방랑길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떠날 수 없는 것은 살을 섞어가며 살아온 인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의 사랑을 배우게 된다.

 

  「행복론」 (치매행 · 368). 이 시의 제목이 주는 무게가 어깨를 누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기로는 인간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고 알고 있다. 행복의 조건이 복잡해서 어찌 여기서 다 말할 수 있으랴.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듣고 먹으면 시원하고 배가 부른 것. 행복을 일상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재물이 많고 풍요로운 삶을 살며 별장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궁핍하게 살아도 사랑이 꽃피고 건강이 유지되어야 행복이라 보는 것이다.  "안 갈 재간 없고 가면 못 오는 지금 여기."  시인이 사는 지금의 누옥陋屋이 행복의 본거지가 아니겠는가. 건강을 잃으면 행복은 숨어버린다.

 

  「우이동솔밭공원」(치매행 · 369). 북한산국립공원이 있다. 국립4·19민주묘지도 있는 곳이다. 서울의 많은 등산객의 등산길이 우이동을 통과한다. 서울에 북한산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덕성여대 맞은편에 위치한 솔밭공원은 100년 생 소나무 천여 그루가 있다. 산이 아니라 평지인 마을에 있다. 육당 최남선이 말년을 보낸 소원素園도 이곳 근처에 있다 한다.  "천 마리 용이 승천하고/ 만 마리 학이 날아오르는 광경을,/ 백운 인수 만경이 옴죽 않고/ 숨죽여 바라보고만 있으니/ 장관, 장관이 따로 없다..."  이 신비로운 전설의 솔밭공원은 아내가 직장에 다닐 때 퇴근하게 되면 날마다 두 시간씩이나 산책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가 산책하던 솔밭공원에 그의 그림자도 없다.

 

  「아내의 섣달그믐」 (치매행 · 379).  환자를 돌보고 간병하는 일을 하는 동안에 섣달그믐 밤을 꼬박 새우고 정월초하루 새벽을 맞는다. 사위가 조용하다. 한 해를 보냈으니 또 한 해를 맞는다. 이런 일의 되풀이가 짜증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미 받아들인 운명이니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허물어지면 모든 게 끝장이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쓰러지고 미끄러지고/ 엎어지면서 가야할 길..."  "아프면 아파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인간의 그리움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 누리는 몫이다. 그립다는 자체를 모르는 저 누워 있는 매화꽃. 아침에 새벽안개가 내린다. 집집마다 새해의 기쁨을 맞는데 그렇지 못한 집 한 채에 천진난만한 매화꽃 하나 누워 있다.

 

   「가을이 오면」 (치매행 · 383).  가을이 오면 농부는 소득을 자루에 담는다. 땀을 많이 흘리면 소득이 많고 땀을 적게 흘리면 자루에 담는 소득이 적을 수밖에 없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농부의 소득은 인간의 육체를 살 지우고 시인이 쓰는 시는 인간의 영혼을 살 지우게 한다. 이런 위로가 없었다면 가을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줄 없는 지연처럼/ 세월은 흘러가는데/ 그리움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쓸쓸함은 는개처럼 젖어 내리고/ 제 무게에 겨운 사랑/ 스스로 어쩌지 못해/ 뚜욱 뚝 지고..." 그래도 같은 동반자와 가야 하는 길이다. 낙타 한 마리와 거친 사막의 지평선을 건너가야 한다.

 

   「환자는 애기」 (치매행 · 397).  다시 강조하지만 홍해리 시인은 오래전에  "치매癡呆는 치매致梅라 해야 한다. 매화로 가는 길이다."라고 설파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이 병의 특성으로 본 것이다. 철들기를 거부하고 장난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돌아가는 병으로 보면 된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선생님!/ 나이 들면 아기가 된다잖아요?"/ 옷을 벗기고 씻기고/ 갈아입히는 여자 간병인/ 그래도 부끄러워/ 자꾸 자꾸 망설이는/ 나이 팔십..."  위의 인용문은 2005년 고대병원 입원실 옆의 환자에 대한 풍경이라고 홍해리 시인은 말했다. 간병인이 그렇게 말했으리라. 치매 환자를 매화꽃으로 보게 된 영감을 여기서 얻은 것 같다.

 

   이상으로 홍해리 시인의 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의 아픈 산책을 끝맺는다. 치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질환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여러 원인에 의한 뇌손상에 의해 기억력과 인지 기능의 장애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치매환자에 대한 희망적인 사실은 여러 가지 다른 꽃들은 대개 열흘을 살고 죽지만 이 천진난만한 매화꽃은 장기간 꽃이 피어 있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각 나라가 치매 치료제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각 제약사들이 줄기세포, 천연물, 펩타이드 등 다양한 신기술을 통한 치매치료제에 도전장을 냈다는 게 사실이다. 그중 패치제 형태의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한다. 철들기를 거부한 매화꽃이 오래 견디어 주기만 한다면 머지않아 완치제의 제품이 시판될 날이 반드시 오리란 희망을 가져본다. 치매환자를 간병하는 간병인은 절망하지 말고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끝)

 

* 정일남 : 197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80년 《현대문학》 추천완료.

시집으로 『훈장』 『봄들에서』 『감옥의 시간』 『금지구역 침입자』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