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커니 잣거니』(미간)

한 톨의 쌀

洪 海 里 2020. 9. 16. 16:52

한 톨의 쌀

 

洪 海 里

 

 

쌀 한 톨이 내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을 빌렸을까

밥 한 그릇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네

쌀[米]이란 말 속에 들어 있는

여든여덟이란 숫자

그게 어찌 별것 아니겠는가

아버지 할아버지의 눈물과 땀

논두렁에서 막걸리 한잔에 날리던

한숨은 바람으로 날아가고

모 심을 때 들리던 뻐꾸기 소리 맞춰

못줄을 넘기곤 했지

벼 벨 때면 메뚜기도 다 자랐었지.

 

한평생 씹어삼킨 쌀알이 몇이랴

몇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그리고 또 얼마일 것인가

새벽녘 해장국집에서

한낮 백반집에서

파장머리 국밥집에서 먹은 밥 밥 밥

이제 땅은 눈보라 북풍 한설 속에

긴 잠을 자고 다시 농사를 시작하리라

밥심은 벼꽃이 이룬 쌀의 힘이다.

 

- 월간 《우리詩》(2020.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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