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 번역시

가을 들녘에 서서 / 번역 및 해설 : 강성위

洪 海 里 2020. 11. 20. 03:33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가을 들녘에 서서, 홍해리

출처 한국일보 : https://www.hankyung.com/thepen/article/113869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태헌의 한역]

 

立於秋野(입어추야)

 

眼盲無物不佳麗(안맹무물불가려)

耳聾無聲不恍恍(이롱무성불황황)

棄心一切皆盈滿(기심일체개영만)

盡授於人立虛壙(진수어인립허광)

欲淚心地亦(욕루심지역)

自然增輝光(자연증휘광)


[주석]

* 立(입) : 서다. / 於(어) : ~에. 처소를 나타내는 개사(介詞). / 秋野(추야) : 가을 들녘.

眼盲(안맹) : 눈이 멀다. / 無物不佳麗(무물불가려) : 아름답지 않은 물건[것]이 없다. ‘佳麗’는 아름답다는 뜻이다.

耳聾(이롱) : 귀가 먹다. / 無聲不恍恍(무성불황황) : 황홀하지 않은 소리가 없다. ‘恍恍’은 황홀하다는 뜻이다.

棄心(기심) : 마음을 버리다. / 一切(일체) : 모든 것, 온갖 것. / 皆(개) : 모두, 다. / 盈滿(영만) : 가득 차다, 가득하다.

盡授(진수) : 모두 주다, 다 주다. / 於人(어인) : 남에게, 다른 사람에게. / 虛壙(허광) : 빈 들.

欲淚(욕루) : 눈물이 떨어지려고 하다, 눈물겹다. / 心地(심지) : 마음, 마음의 본바탕. 여기서는 마음자리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 亦(역) : 또한, 역시.

自然(자연) : 여기서는 ‘저절로’, ‘스스로’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 增(증) : ~을 더하다. / 輝光(휘광) : 빛, 찬란한 빛.


[한역의 직역]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없네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남에게 다 주고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을 더하네


[한역 노트]

위와 같은 유형의 시를 한문학(漢文學)에서는 보통 철리시(哲理詩)로 부른다. 철리시란 말뜻 그대로 철학적인 이치가 담겨 있는 시라는 뜻이다. 시가 꼭 어떤 이치를 담는 그릇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치가 담긴 시를 우리가 불편해 할 필요는 더더욱 없을 듯하다. 어느 시인이든 자신의 우주나 마찬가지인 시에 인생관을 담고 혼을 불어넣기 때문에, 객관적인 경물을 노래한 시에서 조차 시인이 들려주고자 하는 어떤 이치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그런 이치에 대한 탐색이 바로 시를 감상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홍해리 시인의 이 시는, 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음을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해진다”는 이치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핵심이 되는 이 2행의 시구를 기준으로 살필 때 시작 부분과 마무리 부분이 사이좋게 각기 4행이 되는데, 역자가 보기에 우리가 자칫 간과하기 쉬운 대목은 아무래도 시작 부분 4행인 듯하다.

시작 부분 4행은, 눈이 멀면 볼 수 없기 때문에 볼 수 있다면야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고, 귀가 먹으면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들을 수 있다면야 세상 모든 소리를 아름답다고 여기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눈이 멀거나 귀가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각도에서 이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제로 눈멀고 귀먹은 상태를 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눈이 멀어 못 보는 듯이 하고, 귀가 먹어 못 듣는 듯이 한다면 보고 듣는 그 무엇인들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눈이 멀고 귀가 먹은 것은 확실히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비워진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와 유사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달리 보는 것과 듣는 것에 있어서의 하고자 함, 곧 욕망(欲望)을 비운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욕망을 비웠다는 것은 바로 마음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해진다”는 것은 보는 것과 듣는 것에서도 예외일 수가 없다. 보는 것과 듣는 것에 있어서의 ‘가득 참’이란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아름다움’과 ‘황홀함’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마무리 부분 4행을 살펴보기로 하자. 내게 있는 그 무엇을 누군가에게 모두 주어버리고,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다 주고서 이제는 비어있는 들녘에 선다면, 나는 들녘과 마침내 같아져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늦은 가을에 텅 비어 을씨년스러운 들녘에 서면 누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을 터인데도, 빈 들녘에 나 또한 들의 일부가 되어 섰음에, 이제 내 마음자리조차 평온을 얻어 눈물은 사라지고 스스로 빛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빛난다는 것은 빛으로 가득 차는 것이므로 이 마음자리 역시 버리면 가득 차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가을은 비움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걸 몰라서가 아님에도 우리는 한 종지 분량의 마음조차 쉽사리 비우지를 못한다. 용케 비웠다 싶어도 샘물처럼 이내 차오르는 것이 우리네 마음이고 보면, 애써 비우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순리에 역행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비워진 가을에는 금세 채워지기 마련인 술잔을 비우는 일이 더 잘 어울리는 지도 모르겠다.

역자는 연 구분 없이 10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칠언 4구와 오언 2구의 고시(古詩)로 한역(漢譯)하였다. 전에도 얘기한 바지만 굳이 칠언구로 통일하지 않은 까닭은, 원시에 없는 내용을 부득이 덧보태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恍(황)’·‘壙(광)’·‘光(광)’이다.

2020. 11. 17.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 들녘 : 큰들 홍철희 선생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