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 북한산일기 · 31
임 채 우
북한산 해 뜨는 자락에 한 시인 부부가 살았답니다.
시인의 그 곱고 사랑스러운 부인은 시 쓰는 남편을
하늘로 알고 알토란 같은 자식들 품으며 평생 해로할
듯하더니, 이순을 갓 넘겨 그만 이른 치매에 걸렸답니다.
십년을 자리보전하는 부인을 시인은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손발이 되었답니다. 주위 사람들과 자식들이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옮기자고 하였으나 시인은 부인께서
병마에 사로잡힌 것이 순전히 자기 탓이라고 한사코
짐을 덜지 않았답니다. 시인은 지아비의 못다 한 사랑을
시집 네 권에 묶어 세상에 내놓으며 자책하였답니다.
어떤 이는 이런 절창을 쏟기 위하여 부인께서 치매에
걸려야 했었다고, 또 어떤 이는 부인은 밖으로만 나돌던
지아비를 곁에 붙들고 온전한 사랑을 독차지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고 말했답니다. 어느 날 부인은
사랑하는 지아비의 품에서 한 떨기 매화처럼 까무룩
잠들었답니다. 홀로 남은 시인은 부인께서 가는 길을
내내 지켰답니다.
- 임채우 시집 『설문雪門』(2021, 우리詩 도서출판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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