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化된 洪海里

전설 - 북한산일기 · 31 / 임채우(시인)

洪 海 里 2021. 9. 16. 03:58

전설

― 북한산일기 · 31

 

임 채 우

 

 

 

북한산 해 뜨는 자락에 한 시인 부부가 살았답니다.

시인의 그 곱고 사랑스러운 부인은 시 쓰는 남편을

늘로 알고 알토란 같은 자식들 품으며 평생 해로할

하더니, 이순을 갓 넘겨 그만 이른 치매에 걸렸답니다.

십년을 자리보전하는 부인을 시인은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손발이 되었답니다. 주위 사람들과 자식들이 가까

요양병원으로 옮기자고 하였으나 시인은 부인께서

병마에 사로잡힌 것이 순전히 자기 탓이라고 한사코

을 덜지 않았답니다. 시인은 지아비의 못다 한 사랑을

시집 네 권에 묶어 세상에 내놓으며 자책하였답니다.

어떤 이는 이런 절창을 쏟기 위하여 부인께서 치매에

걸려야 했었다고, 또 어떤 이는 부인은 밖으로만 나돌던

지아비를 곁에 붙들고 온전한 사랑을 독차지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고 말했답니다. 어느 날 부인은

사랑하는 지아비의 품에서 한 떨기 매화처럼 까무룩

들었답니다. 홀로 남은 시인은 부인께서 가는 길을

내 지켰답니다.

 

- 임채우 시집 『설문雪門』(2021, 우리詩 도서출판 움)

 

 

 

* 빈센트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나무'(1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