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경영할 때 시를 알았더라면 / 노정남(대신증권 고문)

洪 海 里 2023. 12. 28. 10:49

경영할 때 시를 알았더라면…

 

노정남│대신증권 고문 

지난 6년여 동안 대신증권 대표를 맡았던 노정남 고문은 CEO 자리를 떠난 후 시와 열애에 빠졌다. 그는 1977년 한일은행에서 금융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1987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부로 옮긴 후 25년여 간 대신증권에 몸담으며 전문 금융 CEO 반열에 올랐다.

1998년 외환위기,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안정적으로 넘기며 성장을 이끌었다. ‘금융주치의 서비스’ ‘빌리브 서비스’ 사업은 고객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노고문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금융가에서 35년 넘게 뛰어온 노 고문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은퇴 후 그는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대표직을 내던지고 바로 시와 사진, 드럼을 배우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시간이 없을 때도 매일 아침 신문에 실린 시는 꼭 읽었다.

머릿속에 시 100수를 넣어 놓고 건배사 대신 시를 낭송하는 풍류가객이었다. 시를 읽고 낭송하는 걸 좋아했지만 써볼 생각은 못했다. 우연히 CEO들과 함께 IGM 최고위 과정의 시 수업을 들으며 시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금붕어의 죽음’이란 시로 장원에 뽑히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 용혜원 시인, 임보 시인, 나태주 시인이 쓴 감성적인 시들을 좋아했다. 어떻게 저 사물 안에 들어가서, 내 생각을 표현할까 고민하다보니 시에 눈뜨게 됐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짧은 한편의 시에 수많은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洪 海 里

 

 

뚝!

홍해리 시인의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는 한 글자 시를 소개하는 그의 얼굴에 시심이 묻어났다. “시인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썼는지, 동백꽃이 떨어질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의 매력 아닌가.”

노 고문은 무엇보다 CEO에게 시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일단 시 쓰기, 사진 찍기 모두 관찰력이 필요하다는 그는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다 보면 바로 그 지점에서 ‘창조’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같은 꽃을 봐도 관심 깊게 들여다봐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시심은 동심이다. 동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시를 쓰기 어렵다. 시는 역지사지를 넘어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가 돼야만 쓸 수 있다. CEO였을 때 시를 배우고 쓸 수 있었다면 훨씬 좋은 경영을 했을 것 같다. 일단 소통이 잘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생긴다. 만약 우리나라 지도층들이 시를 안다면 정치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정치 이슈들을 바라보면서 국가 리더들이 ‘시심’을 회복하길 바랐다.

노 고문은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한 발짝 세상에서 물러나 자연인 노정남만의 즐거움을 기획하고 있었다. “친구들하고 밴드를 해보고 싶다. 60~70대가 돼서 연주도 하고 봉사도 하고 싶은데, 드럼 주자만 없었다. 그래서 퇴직하자마자 드럼 학원에 등록했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후배 CEO들 만날 때마다 시를 쓰든 음악을 하든, 취미 생활을 하라고 권한다. 자신에게도 좋고 CEO가 행복하면 회사에도 이익이다.”

 * https://jmagazine.joins.com 중앙시사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