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팔베개 - 치매행 · 65

洪 海 里 2023. 10. 8. 06:34

팔베개

- 치매행 · 65

 

洪 海 里

 

아기가 엄마 품에 파고들 듯이

아내가 옆으로 들어와 팔베개를 합니다

그냥 가만히 안고 있으면

따듯한 슬픔의 어깨가 들썩이다 고요해집니다

깊은 한숨 소리 길게 뱉어내고

아내는 금방 곯아떨어지고 맙니다

마른 빨래처럼 구겨진 채 잠이 듭니다

꽃구름 곱게 피어날 일도 없고

무지개 뜰 일도 없습니다

나도 금세 잠 속으로 잠수하고 맙니다

생生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다

가벼워도 무거운 아내의 무게에

슬그머니 저린 팔을 빼내 베개를 고쳐 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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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시인의 말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이가 되는 병이기에 치매(致梅)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홍해리 시인은 아픈 아내를 돌보며 관찰한 기록과 자신의 반성과 미처 못해본 사랑의 고백을 150편의 연작시로 시집 [치매행 致梅行]을 엮어냈다. 가슴 아픈 체험담이 시의 운율을 타고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아름다운 시편들로 탄생했다. 150편 중에 65번째 [팔베개]를 읽어본다.

신혼 부부사이에 혹은 엄마가 아기를 재울 때 팔베개를 많이 한다.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부부의 연륜이 쌓일수록 속정이 깊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팔베개를 하고 자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아이처럼 천진스러워진 아내가 살갑게 시인의 품속으로 들어와 팔베개를 한다.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이지만 가만히 안고 있는 시인은 착잡하기 만하다. "따뜻한 슬픔의 어깨"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시인의 심중이야 짐작은 가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어찌 다 헤아려 볼 수 있을까. 아내가 금방 깊은 잠이 들어 다행이다. 제비붓꽃 같던 아내였는데 "마른 빨래처럼 구겨진 채 잠이 듭니다"라고 묘사하는 시인의 표현력이 놀라울 뿐이다. 시인도 아내 대신 살림을 하면서 마른 빨래가 구겨지면 다리미로 다려도 좀처럼 잘 펴지지 않는다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이제, 시인은 희망이나 좋은 일을 상징하는 '꽃구름'이나 '무지개'를 접어둘 만큼 담담해졌다.

체중이야 덜 나가지만 "가벼워도 무거운 아내의 무게"는 배우자인 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늘이 깨져서도 파랗듯이 "사람도 이와 같아 병들아도 아프게 빛난다."([상처]-치매행 91) 어느 누구, 어떤 말의 위로도 시인의 슬픔을 덜어주기는 힘들 것 같다. 의학계에서 신약을 개발 중이라니 "지금은/ 북풍한설/ 섣달그믐 한밤"([약속]) 지나면 시인의 가정에도 매화꽃이 다시 피어난 듯 훌훌 털고 시인의 "필화(筆花)" 한 송이를 가슴으로 받아 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시인들이 뽑는 좋은 시』(서울:문학아카데미,2016).PP.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