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허수아비

洪 海 里 2024. 4. 21. 04:44

허수아비

 

홍 해 리

 

 

나이 들면

그리움도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면

무서운 것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막상 나이 들고 보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빈 들녘에 홀로 서서

낡은 옷자락만 바람에 흐느낍니다

 

그래도

마음은 가득하니 짜장 부자입니다.

 

- 시집 『정곡론』(2020, 도서출판 움)

 

* 허수아비의 노래
그냥 그렇게 없이 살아도 정이 있었고 떡 한 조각도 서로 나누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는 지난 시절이지만 풍요 속에 가난은 신의 균형일까.
이 넉넉한 물질 세상에 오히려 더 재미없다는 사람들의 윤택한 절규이다.
그리움과 무서움은 마음이 연한 감성의 자리라서 나이 들수록 고목처럼 마르고 거칠어지지만 나이 들어도 그리웁고 무섬타는 여린 마음도 있음이라.
그러나 텅 빈 들녘에 홀로 선 허수아비처럼 낡은 옷자락만 바람에 흐느끼듯 그 나이에 경제는 가진 게 없음이라 이도 균형과 조화의 형태인지 여린 마음과 경제력은 양립하기가 어렵다.
있고 없음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일 것이지만 염치도 없이 뻔뻔한 세상에는 빈 허수아비가 설 자리는 없음일까.
이도 잃어버린 신의 탓이라 할 것이냐.
그래도 시인은 마음만은 그득한 짜장 부자라 탁배기 한 사발 소주 한잔에 마음이 그득해서 세상 부는 몹쓸 바람에도 슬쩍 흔들리고 마는 낡은 옷자락 허수아비가 마냥 좋은 듯하다.
- 노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