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홍 해 리
나이 들면
그리움도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면
무서운 것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막상 나이 들고 보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빈 들녘에 홀로 서서
낡은 옷자락만 바람에 흐느낍니다
그래도
마음은 가득하니 짜장 부자입니다.
- 시집 『정곡론』(2020, 도서출판 움)
* 허수아비의 노래
그냥 그렇게 없이 살아도 정이 있었고 떡 한 조각도 서로 나누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는 지난 시절이지만 풍요 속에 가난은 신의 균형일까.
이 넉넉한 물질 세상에 오히려 더 재미없다는 사람들의 윤택한 절규이다.
그리움과 무서움은 마음이 연한 감성의 자리라서 나이 들수록 고목처럼 마르고 거칠어지지만 나이 들어도 그리웁고 무섬타는 여린 마음도 있음이라.
그러나 텅 빈 들녘에 홀로 선 허수아비처럼 낡은 옷자락만 바람에 흐느끼듯 그 나이에 경제는 가진 게 없음이라 이도 균형과 조화의 형태인지 여린 마음과 경제력은 양립하기가 어렵다.
있고 없음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일 것이지만 염치도 없이 뻔뻔한 세상에는 빈 허수아비가 설 자리는 없음일까.
이도 잃어버린 신의 탓이라 할 것이냐.
그래도 시인은 마음만은 그득한 짜장 부자라 탁배기 한 사발 소주 한잔에 마음이 그득해서 세상 부는 몹쓸 바람에도 슬쩍 흔들리고 마는 낡은 옷자락 허수아비가 마냥 좋은 듯하다.
- 노민석.
'시론 ·평론·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벌레 <감상> 나병춘(시인) (0) | 2024.09.04 |
---|---|
귀가 지쳤다 / 뉴스 경남 2024.07.01. (0) | 2024.07.02 |
집으로 가는 길 (3) | 2024.03.24 |
얼음폭포 (3) | 2024.01.14 |
매화꽃 피고 지고 (2) | 2024.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