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홍 해 리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다시 쌓았다
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감상>
한 마리 자벌레를 본다.
저 자그마한 몸뚱어리로
푸른 산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고 벌판을 만든다.
몸 자체가 길이고 강이고 시간이다.
구부리면 산이 되고
쫙 펴면 길게 뻗쳐 지평선이 된다.
작은 몸 속에 도사린 우주를
새로이 발견한 시인의 눈,
끊임없이 쌓았다 무너뜨리는
시詩의 산을
'자벌레'로 은유했으리라.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저 꾸물꾸물한 움직임은
그 얼마나 순정하고 맑고 눈물겨운가?
無等의 산속 오솔길은
또 얼마나 그윽하고 향기로운 것인가?
그 어딘가 숨어있는 옹달샘은
또 얼마나 새콤달콤할 것인가?
몰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푸른 잎사귀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쬐끄만 자벌레들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으리라.
구불텅 구불텅한 갈 之자로
혹은 상큼하고 느긋한 둥근 산의 모습으로,
호쾌한 날갯짓으로 붕새처럼
구만리 장천을 날아오를
그런 날을 꿈꾸면서......
(나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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