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시집 『독종毒種』

洪 海 里 2024. 9. 30. 16:45
* 홍해리 시인의 시집. 시에 대한 다양한 변주와 실험을 통해 시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공감과 정서의 정의를 재미있게 재정의하고 있다. 재기넘치는 비유와 은유, 시구 속에 담긴 깊은 성찰이 한데 어우러져 시를 읽는 독자에게 시의 진한 참맛을 일깨워준다.

 


2000년 들어 왕성한 시 작업 펼치는
홍해리 시인의 새 시집 『독종』 출간!

   1969년 시집 『투망도投網圖』를 내며 문단에 나온 홍해리 시인의 새 시집 『독종』이 출간되었다. 홍해리 시인은 최근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을 포함하여 15권의 개인 시집과 3권의 시선집을 펴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온 시단의 어른이다.
스스로를 ‘식물성 시인’이라 칭하는 홍해리 시인은 꽃을 주제로 쓴 시만 해도 200편이 넘는다 한다. 그 이유가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 신작로로 또는 산길로 다니면서 길가 밭에 들어가 따 먹은 목화 다래가 얼마이고 찔레순의 튼실한 줄기를 꺾어 껍질을 까고 대궁을 먹은 것이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이고, 또 양지바른 곳에 솟아 있는 삘기, 보리밥나무 열매, 오디, 버찌, 서리 내린 다음에 고욤나무에 올라가 따먹은 고욤열매는 무척 달았다고 한다. 이렇듯 꽃과 열매까지 먹고 자랐으니 자신의 몸속에는 풀이 자라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서 나오는 글, 시가 식물성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한때 나는 난초에 미쳐 살았다
그때 임보 시인은 돌을 안고 놀았다

내가 난을 찾아 산으로 갈 때
그는 돌을 찾아 강으로 갔다

내가 산자락에 엎어져 넝쿨에 긁히고 있었을 때
그는 맑은 물소리로 마음을 씻고 깨끗이 닦았다

난초는 수명이 유한하지만
돌은 무한한 생명을 지닌다

난을 즐기던 나는 눈앞의 것밖에 보지 못했고
그는 돌을 가까이하여 멀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의 시는 찰나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의 작품에는 영원의 향수가 향기롭게 배어 있다

한잔하면 나는 난초 잎처럼 흔들리는데
그는 술자리에서도?바위처럼 끄떡없다

난과 수석이 서로 잘 어울리는?것을 보면
조화란 어떤 것인가, 차이는 또 무엇인가

눈 밝은 가을날 석란화 한 점을 들여다보며
넷이서 마주앉아?매실주 한잔 기울이고 있다.
- 「난蘭과 수석壽石」 전문


   위의 시「난蘭과 수석壽石」에는 무한한 생명을 지니고 영원의 향수가 배어 있는 수석을 좋아한 임보 시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시는 “찰나적인 적이 주류를 이루었고” “눈앞의 것밖에 보지 못했”기에 “넝쿨에 긁히고 있었”지만 “난과 수석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조화란 어떤 것인가, 차이는 또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떠올리며 “눈 밝은 가을날 석란화 한 점을 들여다보며/ 넷이서 마주앉아 매실주 한잔 기울이”는 조화로움을 떠올리는 즐거운 깨달음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21세기 시인들이 지닐 덕목 일깨우는 에세이 「시의 길, 시인의 길」도 실어
홍해리 시인의 이번 시집 『독종』에는 보통 시집들의 맨 뒤에 들어가는 해설이나 지인들이 시집 발간을 축하는 발문跋文이 없는 대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시인의 길에 들어섰으며, 왜 꼭 시인이 되었어야 하는지 등 지나온 시절의 자기 고백적 에세이「시의 길, 시인의 길」을 싣고 있다.

   "왜 시인인가. 시를 쓰는 이는 왜 ‘詩家’가 아니고 ‘詩人’인가?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극작가처럼 ‘家’가 아니고 ‘人’인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시는 말씀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고 진실된 말씀의 ‘경전’이고 시인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이 아니라 ‘시를 낳는 어미’이기 때문이다.
   시는 어떤 것이고 시인은 누구인가. 시는 시시是是한 것이요, 시인은 그렇다고 시인是認하는 사람이어서 시인은 시로써 인류의 정신을 일깨워 나가는 시인是人이어야 한다. 시는 모든 문학의 꽃, 즉 문학의 정수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나무가 피워내는 아름다운 꽃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동물의 맑고 밝은 눈이다. 시는 문학이라는 바다의 반짝이는 등대이다.

   시는 쉽고 짧고 재미있어야 한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하듯 시도 맛이 있어야 한다. 향기가 있어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시는 한번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시는 읽고 난 후에 사색에 젖게 하고 가슴을 시원하게 울려 주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짜릿하게 파문을 일으키든가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시는 진선미의 맑고 고운 맛과 멋이 배어 있어야 한다.

   시는 꽃이어야 한다. 꽃은 색깔과 향기와 꿀과 꽃가루가 있어 벌 나비가 모여든다. 꽃의 형태는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가. 독자가 없는 시는 조화나 시든 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홍해리 시인의 자기 고백의 에세이를 읽노라면 인터넷과 스마트폰, 영상미디어가 지배하는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시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시인은 올곧은 정신을 가지고 쓴 시로 세상을 환하고 따뜻하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시인은 군림해서는 안 된다. 시인은 장사꾼이 아니다. 한마디로 시인의 삶은 참사람의 삶이요, 선비의 삶이어야 한다”는 말에 이르면 정녕 우리 인생에 왜 시가 필요한지, 그 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시를 쓰는 시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 청로淸露동인회 https://cafe.daum.net/pochenmunhak21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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