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운다」 외 3편>
귀가 운다
洪 海 里
귀도 외로우면
속이 비어 울고 싶어지는가
귓속에 바람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는지
밤낮없이 소리춤을 추며 우니
가렵고 간지러워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는 오지 않는다.
-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귀가 지쳤다
洪 海 里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까지
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제 귀가 운다.
-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 시 해설
감각을 받아들이는 눈은 뜰 수도 있고 닫을 수도 있어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귀는 늘 열려 있어서 무의식 상태가 아니면 소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를 줄창 듣기만하는 귀의 수동적 한계성을 말한다. 안 들을 소리를 듣고서 이물질 같아서 귀를 흐르는 물에 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대책 없어서 그럴 만도 하단다.
귀의 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온갖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듣게 되니까 귀도 지친 것이다. 동정을 해 본다. ‘하루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 가혹하여 ‘이제 귀가 운다’ 고 듣는 기능의 귀가 소리의 영역까지 와서 울게 되었다는 시인의 말.
홍해리 시인은 「귀가 지쳤다」는 시에 이어서 「귀가 운다」라는 시를 썼다.
귀도 외로우면/ 속이 비어 울고 싶어지는가//
귓속에 바람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는지//
밤낮없이 소리춤을 추며 우니/ 가렵고 간지러워//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는 오지 않는다
- 홍해리 시인, 「귀가 운다」 전문
시인은 ‘귀’를 소재로 쓴 시를 통하여 현대사회에서 무의미하게 들려오는 소음과 외로움을 보여주었고, 귀가 큰 옛 성인의 고뇌까지도 간파하셨을 것 같다.
- <뉴스 경남> 2024.07.01. 조승래 시인.
내 귀에 임자 없는 귀신이 산다
洪 海 里
내 귀에는 소리싸움을 하는 귀신
귀의 신이 살고 있네
시도 때도 없이
우렁우렁 울어 쌓는 안귀신과 바깥귀신
말과 소리가 뒤엉겨 난장판이네
아프다는 말 하기 싫어서
그대에게 안부를 묻지 못하네
그냥 안밀하게 지낸다고
먼 하늘 바라보며 문안하노니
그대 창 밖에 흰 구름장 흘러가거든
내 기별이려니 여기시게나
그대 소식을 귀담아듣지도 못하고
귀넘어듣는 것도 아닌데
세상은 귀 밖으로 천리만리라네!
<시작 노트>
얼마 전부터 귀가 소란하기 그지없다. 의사는 이것도 나이 들어
얻은 축복이니 즐기면서 살라 하지만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대낮에도 귀가 어둡다. 대명천지에 어둠을 즐겨야 하는 내 귀의
설움이라니! 사실을 말하자면야 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들을 만한 소리도 없다. 시끄러운 세상 귀 닫고 사는 게 오히려
편하지 싶기도 하다!
- 《포켓프레스》 2024. 8. 24.
귀에 지진이 났다
洪 海 里
대낮인데도,
세상이 환한데도
귀가 어둡네
감감하고
깜깜해서
그대 내게 닿지 못하네
내가 내게 말을 하고
내가 내 말을 들어도
내가 나와 천리만리이니
그대 어찌 내게 올 수 있으랴
한밤에도 귀가 환한 날이면
세상에, 세상에나 내게 올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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