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우리詩》 2025년 1월호 신작 소시집
<시작 노트>
나이 늘고 시 줄고
첫시집 『투망도投網圖』를 낸 지 쉰여섯 해가 된다. 많이 늙었다. 시집도
늙고 나도 늙고 새로 쓰는 시들도 늙어가고 있다. 익지 못하고 그냥 늙고 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팔월 하순부터
십일월 초순까지 내 일생에서 가장 심한 아픔과 고통을 겪는 어둡고 무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발표하는 시편은 지난해 시월 하순에 아픔이 내게 가져다 준 선물이라
더욱 소중하기 그지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도 그만큼 익어가야 할 텐데
쓰는 양도 줄고 질도 떨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가 무엇인가, 시인은 누구인가를 내가 내게 그리고 그대에게
묻는 의미에서 전에 시에 대해 쓴 글 두 편에서 마지막 부분을 <시작 노트>에
올려 다시 한 번 읽어 보고자 한다.
"시인은 감투도 명예도 아니다
상을 타기 위해, 시비를 세우기 위해, 동분하고 서주할 일인가
그 시간과 수고를 시 쓰는 일에 투자하라
그것이 시인에겐 소득이요, 독자에겐 기쁨이다
오로지 올곧은 선비의 양심과 정신이 필요할 따름이다
변두리 시인이면 어떻고 아웃사이더면 어떤가
목숨이 내 것이듯 시도 갈 때는 다 놓고 갈 것이니 누굴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시詩는 시적是的인 것임을 시인詩人으로서 시인是認한다
생전에 상을 받을 일도, 살아서 시비를 세울 일도 없다
상賞으로 상傷을 당할 일도 아니고 시비詩碑로 시비是非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다
시인은 새벽 한 대접의 냉수로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시는 시로서,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하면 된다
그것이 시인이 받을 보상이다."
- 「명창정궤明窓淨几의 詩를 위하여」의 일부, 시집 『비밀』(우리글, 2010)
"이름없는 시인이란 말이 있다
시인은 이름으로 말해선 안 된다
다만 시로 말해야 한다
이름이나 얻으려고 장바닥의 주린 개처럼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기웃대지는 말 일이다
그래서 천박舛駁하거나 천박淺薄한 유명시인이 되면 무얼 하겠는가
속물시인,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꺼귀꺼귀하는 속물이 되지 말 일이다
가슴에 산을 담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스럽게 사는 시인
자연을 즐기며 벗바리 삼아 올곧게 사는 시인
욕심없이 허물없이 멋을 누리는 정신이 느티나무 같은 시인
유명한 시인보다는 혼이 살아 있는 시인, 만나면 반가운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 될 일이다."
-「고운야학孤雲野鶴의 詩를 위하여」의 일부,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2011,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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