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화사기花史記』1975

<시> 거울 II

洪 海 里 2005. 11. 2. 06:15

 

거울 ·Ⅱ

 

홍해리(洪海里)
 

가을은 그렇게 큰 거울을
하늘 높이 달아 놓고 나를 부른다.
언제 내 가슴에 그렇게 크고
맑은 거울이 비친 적이 있었던가
사랑도 시들해 새들은
머언 숲 속으로 날아가고
양지바른 무덤가에
풀잎도 금빛으로 타는 때면
그대 눈 속에선
물 흐르는 소리만 곱게 들리고
달빛에 취한 한 움큼의 꽃향기
나뭇이파리 하나 흔들쟎으며
나의 가슴만 허물고 있다.
문득 나를 압도하는 가을 하늘이
내가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나를 듣지 못할 때
나의 꿈 속까지 헤매면서
나의 잠을 쫓고 있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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