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화사기花史記』1975

<시> 형성기

洪 海 里 2005. 11. 2. 06:43

 

形成期형성기

 

홍해리(洪海里)
 


복숭아밭 허공에
달이 이울면
복숭아 나무 가지마다
수 천의 미친 여자들
신들린 살로
하늘
둥둥
뜨고 있다.

가만히 바라보면
눈이 부셔
부끄러운 살이 눈물짓는다
평화로운 흙에 취한
눈을 감으면
내 피를 다스리는
이승의 꿈은 꽃밭
나비 떼가 가득하다.


뜨물이었네, 우리는, 우리네 살은
뼈가 삭지 않은 쌀알이었네
허구한 날 몸 사리며 앓던 미열도
들추고 들추면 아무 것도 아니네.

우리네 울음은
순금 보리밭 깜부기 울음도 같고
갯벌에 밀린 깨진 조개 울음도 같고
황토고개 목이 쉬어 넘는 아리랑
벌채한 산판에 구비구비 서리고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내닫는 살의 울음 같기도 하네.


시름시름 앓는다
앓고 또 앓는다
흙에 주려 앓고 하늘 주려 앓는다.
한밤 물소리처럼 앓고
칠년대한처럼 앓는다.

피 속을 헤매는 너의 발자국 소리
저녁녘 여자들의 바람기에
바위 틈에 이울었던 달이 돋는다
저녁 숲에서 울고 있다
백년한의 어둠을 말아
밤을 걷우고 있다
숲에서 오는 젖은 바람의 손
꿈을 엷게 바래고 있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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