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 어느 날

洪 海 里 2005. 11. 3. 19:19

 

 

어느 날

 

홍해리(洪海里)
 

어느 날 갑자기
자주빛 라일락 꽃은 터져서
신명이 난다 신명난다
뿌리 주변에 모여 있던 은빛 처녀들
영혼의 비인 잔에 불빛을 담아
땅 위에 뛰어나와 춤추고 있다
지상의 어둠을 모는 바람 사이
금빛 혀가 튀고 있다
무수한 웃음소리를 데불고 오는
섬섬옥수 고운 손마다
꽃잎을 적신 이슬의 반짝임
아픔은 한없이 스스로 저려오고
핏빛 절망도 투명히 밝혀지고
문득 홀로 빛나며 타오르는
마음 한 자락
강물처럼 하늘처럼 환히 열려서
아무도 닿지 못할 천년의 자리
정겨움을 위하여 타고 있는 불
그리움을 위하여 흘러가는 물
깊이 열려 있는 그대여
그래도 나의 눈엔 아픔뿐이니.

- 시집『우리들의 말』(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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