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시> 안개 속에서

洪 海 里 2005. 11. 8. 09:08
안개 속에서
- 수련원에서
홍해리(洪海里)
 

새벽은 안개의 광장이었어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사직공원을 도는 구보시간
나뭇잎은 밤사이 더 많이 떨어져 있고
아직도 우수수 우수수 내리는 소리
인왕산에서 온 바람에 밀려
눈썹달도 사라지고 있었어
매동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여
이슬이 내린 흙을 밟고 뛰어보면
눈 감고 사는 일도 재미 있었어
빈 자리를 가득 메우는 무엇일까
꿈이나 바람이나 물소리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시린 가슴으로
새벽은 안개를 치렁치렁 거느리고
우리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어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고
하나 더하기 하나가 셋이 되고
더하기 더하기 또 더하기
세상 사는 일은 다 그런가 봐
길 가다 보면 뒤에 오던 장님이 안 보이더니
어느덧 저 앞에 달려가고 있었어
생각보다 더 빠른 달리기를 하면서
살아 있음을 감사하면서
장님과 벙어리와 귀머거리의 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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