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변잡기·洪錫珉 기자

<주변잡기> '웰빙 소주' 21도의 사회학

洪 海 里 2005. 11. 11. 08:00

* '웰빙 소주' 21도의 사회학

 

○산업화가 끝나면서 순해져

―산업화가 끝나면서 소주도 순해진다는 건가.

“빙고! 90년대 이후 3차 산업 인구가 크게 늘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 본격화됐다. 이젠 일방적으로 술이 센 사람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주량의 차이를 인정해준다. 웰빙이다, 뭐다 해서 믿을 건 자기 몸밖에 없다는 생각도 퍼지고 있다. 스타일 구기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게 취하는 게 대세다.”

―진짜 그러냐? 기자 주변에는 여전히 ‘마시고 죽자’는 식의 술자리가 많다.

“기자(를 둘러싼) 사회가 유별난 거다.”

―그렇다면 소주의 도수는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떨어진다는 얘긴가.
“‘이건 소주가 아니다’라고 소비자들이 느끼는 경계가 있을 거다.

20도 안팎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주회사는 고객들을 모아 매달 실험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입맛의 변화를 찾아내고 도수를 떨어뜨리는 시점을 정한다는 것이다.

―고객 의견은 어떻게 반영되나.

“다양한 사람들로 표본을 구성하고 평균치를 내 입맛의 변화를 알아낸다. 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당신 같은 ‘헤비 유저’들의 의견이다. 인구통계학적으로는 30대 남성 직장인이다.”

―위스키나 코냑과 달리 소주는 폼이 안 난다. 혼자 앉아서 홀짝거리고 있으면 영락없이 알코올 중독자 취급 받는다. 왜 그런가.

“값이 싸서 그렇다. 소주가 10만원쯤 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한국에선 법적으로 마음대로 소주 가격을 올리지못하게 되어 있다. 소주 회사가 지금까지 버텨온 건 피나는 원가 절감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술이 들어간 탓일까. 그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증류주가 맥주보다 더 싼 나라는 한국뿐이다. 값이 싸다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소주만큼 순수하고 숙취가 없는 술이 있나. 와인이나 막걸리 마시고 취해봐라, 얼마나 괴로운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에서 소주는 영원한 ‘조연’이다. 술 마신 다음날 ‘어제 △△ 소주 마셨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저녁을 먹었고 소주 한 잔 했을 뿐이다. 하지만 소주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각별하다. 가끔 해외 교포라면서 ‘정말 소주가 마시고 싶다’며 울먹이는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땐 보람을 느낀다.”

인터뷰가 길어지면서 빈 병도 늘어갔다. 애초에 가졌던 분노는 동지애 비슷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소주 애호가들은 맥주는 배가 부르고, 독주는 너무 빨리 취한다고 말한다. 소주가 사람 사귀기엔 가장 적당하다는 의미다.

도수가 낮아졌어도 소주는 여전히 소주.시간이 흐를수록 혀도, 두뇌 회전도 점점 무뎌진다. 본 기자, 불콰한 얼굴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과연 소주가 순해지는 게 먼저인가, 주당들이 약해지는 게 먼저인가.”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