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청별淸別』(1989)

<시> 우이동 일지 4 - 산행

洪 海 里 2005. 11. 17. 18:06

우이동 일지 ·4

- 산행

 

산을 오른다
쉬엄쉬엄 오른다
나무 아래
바위 위에 앉아
나무늘보처럼
마음을 늘어뜨린다
마음은 녹아 바람이 되고
몸은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
바보가 된다
문득 새소리에 멍청히 나를 잃어버린다
멍하니 뒤를 돌아다본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물소리에 귀를 적시고
내가 무엇인가
바람소리에 눈을 닦는다
앞을 내다본다
산안개가 온몸을 감싸안는다
다시 내릴 길을 따라
참나무 마른잎의 어눌한 말소리
더듬더듬 들으며
산을 오른다
쉬엄쉬엄 오른다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