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청별淸別』(1989)

<시> 우이동 일지 3 - 어느 날

洪 海 里 2005. 11. 17. 18:05

우이동 일지 ·3

- 어느 날

홍해리(洪海里)
 

꼭두새벽 일어나 조반상 받고
혼자서 밥상머리 수저를 들면
사는 일 눈물겨워 목이 메이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도 나고
어릴 적 떠나 버린 여동생 순이
어린 것들 잠자리 뒤채이면서
동화 속 왕자 공주 미소하는데
그믐달이 해적선처럼 떠 있는
섣달 스무여드레 새벽녘 길
연탄개스 정다운 골목길 따라
뿌연 안개 털어내는 구두발자국
머잖아 이 마을에 눈이 내리면
백운대 인수봉이 한결 높으리
바람소리 더욱 높아 귀를 잃고
구름장 팔을 휘휘 내저으며
비인 가슴으로 노래하리라
한 해가 저무는 해질녘에
세밑의 꿈조각을 엮어 매닮은
칙칙하고 허기진 눈물의 거리
따스한 저녁 연기 그리운 마을
돌아와 하루 일의 먼지를 털며
동치밋국 한 사발로 목을 적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