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청별淸別』(1989)

<시> 꽃상여

洪 海 里 2005. 11. 18. 08:58

꽃상여
- 아버님 여의옵고


한 세상 한없이 살지 못하고
살아서 죽은 삶을 사는 척하다
죽어 사는 삶을 꽃 피우랴.
저승나라 새 주소 마련키 위해
이승의 가파른 고개
허위허위 넘어가네
이제 훨훨 넘어가네.
주민등록번호도 갱신하고
우편번호도 써 넣어야지
땅에 묻히는 육신은 정표로 두고
떠나가네 떠나가네.
속엣것 다 남겨 주고
빈 껍질만 가지고 훨훨 가네
어허 넘자 이승 마루
님을 찾아 사랑 찾아
저승나라 찾아가네.

육신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이승의 마지막 잔치상 받고
너훌너훌 춤추며 간다.
구만리 장천
하늘나라
홀홀 단신으로
하얀 수건 흔들며 간다.
살내 젖어 수민 권속
손 흔들어 이별하고
하늘다리 건너서
은하수를 지나서
간다 간다
끝도 없이 한도 없이
알량한 울음소리
다 떨쳐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무명으로
무명으로 간다.
이승에서 못한 사랑
저승에서 꽃 피우랴.

땅을 치는 지어미
뿌리뽑힌 자식들
슬픔과 허망으로 피우는
이승의 끝자리에 피우는
꽃밭일레
꽃밭일레.
아픔도 찰나
두려움도 순간일시
막막한 죽음도 그러하리야
이승 저승 사는 삶을
촛불 밝혀 피워 놓고
꽃 속으로 날아가네
꽃이 되어 날아가네.
(『淸別』동천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