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청별淸別』(1989)

<시> 장승

洪 海 里 2005. 11. 18. 08:56

장승


洪 海 里




1. 장승의 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우리
이제 다 죽은 귀신
한 개의 삭아내린 나뭇토막
저승꽃 만발한 돌기둥일 뿐
아무것도 아니네.

이른 봄날
아슴아슴 눈부시게 타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그리움도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저녁놀 같은
애달픔이나 하염없음도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고 손가락 건 약속도
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사는 세상,

네 마음도 멀고
내 마음도 먼
지금
세상 사람들은 
제 조상 섬기기보다
딴 귀신에 홀려 있고,

---돈귀신 술귀신 권력귀신 땅귀신 담배귀신 정치귀신 중상모략귀신 자해공갈귀신 공포학정귀신 추행방관귀신 테러귀신 훈장탐욕귀신 독재탄압귀신 뇌물아부귀신 흑색선전귀신 증권투기귀신 고스톱귀신 불법탈세귀신 부동산전매귀신 강도살인귀신 인신매매귀신 폭력폭행귀신 허위위증귀신 도피잠적귀신 사기횡령귀신 지랄탄난사귀신 위조조작귀신 각목파이프귀신 유괴살해귀신 가혹고문귀신 음란퇴폐귀신 뺑소니귀신 바가지세일귀신 마약중독귀신 불량품귀신 딴따라귀신 매연오물귀신 가짜귀신 매춘재벌귀신 스포츠귀신 한탕주의귀신 변칙비리귀신 음모귀신 부당노동행위귀신 입시지옥귀신 가정파괴귀신 비방은폐귀신 착취수탈귀신 집단해고귀신 룸살롱귀신 낙하산감투귀신 호스트바귀신 권력남용귀신 로또귀신 파파라치귀신 입시부정행위귀신 불량만두귀신 이 귀신 저 귀신 온갖 잡귀신들이 춤을 추는 마당이라---

우리의 마을 어귀
노리개처럼 서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의 미소
그래도 가슴 따사로이
따끝까지 길을 열고
하늘까지 마음 주는
우리는 사랑일지니,

세상사람들아
밝은 눈엔 광명이요
사랑에는애정이요
슬픔에는 비애
기쁘게 보면 환희요
무섭게 보면 공포지만
익살엔 익살일지니,

놀부의 모습 옆
놀부 마누라의 얼굴
흥부의 탈 옆에
흥부 각시
또는 
말뚝이나 초랭이가 우리 아닌가.

등잔눈매처럼 부리부리하나
온달의 눈동자처럼 어수룩한
웃을 듯 울 듯
온 시방세계를 다 담은
나의 왕방울눈
세상 천지를 재어 지키고 밝히며, 

우람하게 솟은 주먹코로
동네 부녀자들의 바람기를 누르고
귀밑까지 찢어진 입술
아랫입술 밖으로 드러난 송곳니로
온갖 악귀를 잡아
마을의 평안
국태민안 이룰지라
국태민안 이룰지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우리
진또배기,
솟대 위에 꿈을 싣고
죽어도 나란히 서서 지키리라
천년을 묵묵히 서서 지키리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2. 장승제

분향 백배 고축 발원드리오니 천상천하 고금동서의 명시대장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은 감응 강신하소서. 
금년은 기사년이옵고, 달로는 정월이요, 날로는 대보름, 일진은 신묘일진 맞이하여 
우리《진단시》동인 각인각성 김규화 문효치 박진환 신규호 유승우 임 보 정의홍 홍해리 
집집마다 성심을 다하여 주과포를 올리오니 반가이 응감, 즐거이 흠향하소서.
입은 덕도 많거니와 금년에 새 덕 빌어댈 제 
우리 동인 남녀 청장 액월 액일 액시, 근심 걱정 우환 질고 운권천청(雲捲天晴) 걷어다가 
원강천리(遠江千里)에 소멸시키시고 소원 성취시키실 제, 
글을 쓰면 명작 소망, 학교 가면 공부 소망, 산에 올라 산신 소망, 들에 내려 농사 소망, 
우순풍조시화연풍(雨順風調時和年豊)시키시고, 
길을 가면 횡재 소망, 시장 가면 장사 소망, 관청 가면 관록 소망, 물가에 가면 용궁 소망, 
바다에 가면 풍어 소망, 부부지간 자손 소망, 자손이 창성 영화 소망, 만사대통시키실 제, 
천황대제봉수명장(天皇大帝封壽命長) 장수장명 발원이요 지왕대제 정복수 부귀공명 축원이라. 
발원발축 소망대로 우리 동인 집집마다 낮이면 불 맑히고 밤이면 불 밝혀서 
수화청명(水火淸明) 점지될 제 명당 뜰에 옥이 돋고 옥당 뜰에 명이 돋아 
달뜬 광명 해뜬 세상에서 쓰고 짓는 글줄마다 명시 명작 이루도록 점지 점지하소서.

*제2부는 여러 곳에서 지내는 장승제의 제문을 종합하여 임의로 개작한 것임을 밝힌다.
- 시집『淸別』(동천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