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문학평론> 살풀이와 시적인 자유 / 살풀이 : 홍문표

洪 海 里 2005. 11. 29. 10:20
살풀이와 시적인 자유/洪文杓
-「진단시」의 살풀이를 보고
 

       살풀이와 시적인 자유
       -「진단시」의 살풀이를 보고

                         洪文杓(시인/문학평론가)


   살풀이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물건을 해치는 독하고 
모진 귀신의 독기나 악귀의 못된 짓을 떨쳐버리려는 굿판을 
지칭하고 있다. 귀신은 모두 영물이어서 인성을 가지면서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고 영계에 있으면서도 인간의 길흉
화복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고 두려운 대상이
된다.  특히 살(煞)의 원인은 혈연적인 악연(bad blood)으로
시작된다. 전생이거나 이승에서의 혈연적인 악연이 운명적으로
현재의 삶에 작용하여 그것이 흉사나 화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러한 운명의 고리에서 인간은 늘 속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악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소망이며 이러한 소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살풀이굿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살풀이의 전통적 해석이다. 따라서 악귀나 
살의 문제는 민속신앙의 인습적 논리다. 특히 한국에 있어서는
토속신앙인 샤머니즘과 불교가 그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유교
에서도 귀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기에 
보면 인간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가고 백(魄)은 땅으로 간다고 
하였고, 양기의 정령은 혼, 음기의 정령은 백이라 하였다. 죽음이란 
양기가 흩어져 승천하는 것인데 하늘로 승천하면 신이 되지만 
생시의 원한이나 미련을 잊지 못할 때는 사후에 양기가 승천하지
못하고 음귀가 되어 인간 생활에 조화를 부리는 귀신으로 나타난
다고 보았다. 이것은 조선조 성현의 용재총화에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당시 지식인들의 귀신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원시신앙으로
보면 결코 인간의 죽음만이 영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주 자연이 
모두 영기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 애니미즘(animism)이나 심지어는 
동식물 등 생물에서도 영기를 느끼는 토테미즘(totemism)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신관은 결국 유한한 인간, 무지한 인간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성의 확인과 그로 인한 두려움과 놀라움, 그 극복을 위한
논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시적인 현상 이면에 음의 세계가 있고, 그 음기가 작용하여
현실을 지배한다면 이 음기를 다스리는 주술(呪術)이 없고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 고대인들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래서 주술을 전담하는 
주술사, 사제, 무당, 도사가 등장하게 된다. 주술은 귀신을 다스리는 
의식이다. 현세적 삶의 길흉화복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귀신인 만큼,
선신은 공경하고 악신은 몰아내고, 그래서 정신적인 평안과 생활의
풍요를 도모하자는 것이 토속신앙의 근본이다. 귀신을 다스리는 방법은
먼저 귀신을 부르는 초령의 과정이 있다. 다음엔 귀신에게 절하는 청배
(淸拜), 그리고 귀신과의 대화, 즉 신화(神話)가 있겠고, 귀신과 함께
노는 오신(娛神), 마지막으로 귀신을 보내는 송신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굿이니 풀이니 놀이니 하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풀이의 현대적 개념은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된  갈등구조,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또는 어두운 그림자, 프로이트가 말하는
원초적 본능, 삶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절망감, 한계의식, 부정적인 속성 
등 만족스럽지 못한 일체의 불안의식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근원적 
불안의 해소를 위한 초월적 논리를 다양하게 설명하는 것이 정신적인 
자유와 해방을 위한 문화양식들이다. 따라서 악귀가 붙었다는 사고나 
근원적인 불안과 불만의 사고는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공통적 과제를
갖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탐색과 통과의례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적 논리이기도 하다.
 악귀와 화를 벗어나는 방법은 피하는 방법,, 쫓아내는 방법, 달래는
방법, 아니면 복종하는 방법들이 고안될 수 있다. 악귀는 인격성과
영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보다 우위에 있으며 일단 이들 악신의
지배권에 있다고 확인되면 풀이의 특별한 절차가 없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무속의 논리다. 여기에 굿판의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굿의 
핵심은 귀신을 달래서 쫓아내는 특별한 행사다. 여기서 귀신을 달래는 
일이란 함께 취하거나 어우러져서 악연이나 원한이나 한의 매듭을 푸는 
과정을 말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술과 음식과 무당과, 춤과 노래와 주문과, 
모두가 공감하는 격정적인 신명과 입신(ecstasy)의 경지와 이를 통한 
해방감으로 체험하는 놀이, 즉 축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 풀이의 진실이기도
하다.
   여기서 시와 풀이의 공통된 속성의 일면을 발견하게 된다. 시는 근본적으로
정서와 상상을 통한 현실의 초극을 지향한다. 물론 관념주의나 도덕주의를 
앞세우는 지사적 문사들은 정치적 자유와 사상적 자유를 위한 수단으로 시를
사용하겠지만, 진실로 시를 자율적 세계로 파악하려는 예술적 시인들은 
존재의 근원적 부조리에 공감하며 이를 초극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서와 
상상의  통과의례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무속이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악신을 몰아내는 것이고, 시가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메마른 이성의 경직성
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정서적 구원의 몸짓이라면 모두가 기존의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아데는 종교적 시간을 수직의 시간, 신성의 시간이라 하였고, 일상적인
삶의 시간을 수평의 시간이라 하였다. 이 말은 시에 있어서 일상의 시간과 
상상의 시간 구조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성의 인식에서도 그렇다.
종교적 공간은 현실과 영계, 즉 비현실과의 동일시나 공존을 인정한다.
이 점은 시에 있어서 나와 너, 자아와 세계의 공존을 통한 신화적 화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적 카타르시스와 
종교적 엑스타시의 체험은 모두가 기존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벗어남의 
비상한 초극이라는 점에서 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진단시」 동인들이 그 동안 전통적인 소재를 통하여 과거의 현재화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번 19집의 공동 주제를 '살풀이'로 정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민속적 살풀이는 일정한 
문화적 절차가 있다. 그러나 시적 살풀이는 비록 동일한 주제라 할지라도 
시인의 창조적 상상과 해석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 다양성의 시적 창조가 
바로 이번 진단시에 나타난 각자의 살풀이가 될 것이다. 이들 살풀이의 
시적 의미를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살풀이춤
                                

     풀어라 풀어라 살을 풀어라
     반세기 반신불수 버르적거리는
     백두산 천지 한 손에 잡고
     한라산 백록담 딴 손에 올려놓고
     묘향 구월 설악 금강 지리산 가슴에 품어
     북한산 도봉산 손을 잡아라
     온갖 새들 꽃 속에 노래하고
     노루 토끼 다람쥐 겁 없이 뛰어 노는
     비무장지대 우거진 풀밭에 서서
     안주 용천 예당 연백 경기평야
     나주 김해 호남의 너른 들판에 서서
     몸을 던져 풀어라
     백두대간 바윗속 흐르는 물길이듯이
     죽은 듯이 잠자던 푸나무들
     봄이 오면 맥이 뛰어 푸르러지듯
     두만강 낙동강 대동강 청천강
     영산강 압록강 섬진강이 모두
     한강으로 한강이 되게
     살 풀어라 살 풀어라
     혼을 던져 추기고
     맺힌 한을 풀어 풀어
     백두산 상상봉에 북을 놓고
     물보라 푸르게 하늘까지 피우고
     한라산 꼭대기에 북을 놓아
     사슴 떼 덩실덩실 춤을 추도록
     칠천만이 일어나 북을,
     북을 때리면
     두 팔을 서서히 들어올리며
     장단 따라 엇바꿔 떨어뜨릴 때
     흐르다 멈칫 꺾여지고
     팔이 들리면서 온몸이 떠오르네
     치마를 돌려 잡은 손
     앞으로 뻗은 팔에 장단이 실려
     돌다가 머무르고
     다시 돌아 놀아 보고 으쓱으쓱 치올리니
     가득가득 차는구나
     칠천만의 춤사위 천지가 차는구나
     흰 명주수건 긴 자락
     오른팔 왼팔로 옮겨 잡고
     때로는 던져서 떨어뜨리고
     몸을 굽혀 엎드려 들어올리며
     울음으로 떨치고 기쁨으로 사루나니
     울음 속의 정적으로
     고요 속의 떨림으로
     센 살 풀고 끼인 살 풀어
     살아 속박 이냥 풀어 자유천지 그곳으로
     피리 대금 장구 해금 북소리 어우러진
     그 곳,
     푸른 안개 속 문득 무의 춤이 있구나
     백두 한라 두 가슴 풀어
     그 곳도 흥건히 젖어
     땅기운 하늘기운 바람기운으로
     살풀이 살풀이 춤을 추어라
     동해바다 서해바다 남해바다가
     남녘땅 북녘땅  기운을 모아
     통일, 통일하는 춤을 추어라
     비색을 푸는 바람의 손길 따라
     흰 돛단배 신명의 바다로 떠나가고
     제주도 백령도 독도 신미도가 눈썹 위에 뜨는구나
     흰옷 입은 사람들의 꿈으로 엮는
     춤의 춤, 마지막 춤, 살을 풀어 추는 춤,
     떨리는 아름다움
     멈춤 속의 움직임
     눈물 젖은 웃음으로
     살 풀고 액때우고,
     화를 사뤄 한을 풀어
     온몸으로 춤을, 춤을 추어라
     신이 오르고 신명이 나서
     마침내 하나가 되는
     그 날까지 그 날까지 춤을 추어라
     산 하나 강 하나 하늘 하나 땅 하나
     아아, 드디어, 우리도 하나
     살풀이 살풀이 춤을 추네.

                 洪海里의 <살풀이춤> 전문

   洪海里의 살풀이춤은 분단조국의 산과 강, 7천만 동포가 한데
어우러지는 총체적 살풀이의 통일춤이다. 앞서 문효치의 시가 
비무장지대인 월정리의 녹슨 철마, 그 처연한 역사의 구체적 
현장에서 분단 상황의 아픔을 노래한 통일시라면 洪 시인의 살풀이는
보다 대표적인 조국의 강산들을 거명하여 이들의 화해와 일치를 
호소하는 강한 의지와 기원의 시다. 시적 화자의 강한 명령적 어조는
백두산과 한라산, 묘향, 구월, 설악, 금강, 그리고 도봉산까지도 모두가 
손을 잡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손을 잡되 가슴에 품어 진심으로 
뜨거운 사랑으로 잡으라고 한다. 안주, 용천, 예당, 연백, 경기, 나주, 
김해, 호남 평야에 몸을 던지라고 한다. 말로만 주고받을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만강, 낙동강, 대동강, 청천강, 
영산강, 압록강, 섬진강도 모두가 한 강이 되도록 내면적인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소원들을 사설하고 일제히 울리는 북 장단에 
맞춰 춤동작으로 들어간다.

     두 팔을 서서히 들어올리며
     장단 따라 엇바꿔 떨어뜨릴 때
     흐르다 멈칫 꺾여지고
     팔이 들리면서 온몸이 떠오르네
     치마를 돌려 잡은 손
     앞으로 뻗은 팔에 장단이 실려
     돌다가 머무르고
     다시 돌아 놀아보고 으쓱으쓱 치올리니
     가득가득 차는구나
     칠천만의 춤사위 천지가 차는구나

   통일을 실천하는 살풀이춤의 구체적인 춤사위가 리얼하게 제시된 부분
이다. 천지에 가득해지는 어우러짐의 흥취를 공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센 살 풀고 끼인 살 풀어 자유의 세계를 구가하며 마침내 동해, 
서해, 남해, 남녘과 북녘, 제주도, 백령도, 독도, 신미도까지 모두가 신명으로
어우러지는 통일의 그날까지 춤을 추는 통일의 실천을 처절하고 집요하게 
소망하는 살풀이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살풀이의 토속적 논리가 악신의 살기로 상처를 받고 있는 생명들의 
정상적인 회복을 위한 제의적 놀이이고, 시가 일상적인 삶이 이야기하는 
갈등을 상상을 통하여 정서적 감수성으로 복원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존재의 
뒤틀림이나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화하고, 얽혀진 갈등의 어두운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라는 데서 살풀이나 시는 공통적 속성을 지닌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존재의 뒤틀림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크게는 우주적 
뒤틀림, 역사적 뒤틀림, 정치사회 현실의 뒤틀림이 있겠고, 인간적인 차원
에서 볼 때는 운명적 뒤틀림, 심리적 뒤틀림, 정서적 뒤틀림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번 「진단시」 동인들의 작품은 이러한 범주에서 시적인 조명이 시도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단시 19집 『살을 풀어 얼을 풀어』(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