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문학평론> 토착정신과 인간의지 / 서낭당 : 이태동

洪 海 里 2005. 11. 29. 10:40
土着精神과 人間意志/李泰東
---洪海里論
홍해리(洪海里)
 

         土着精神과 人間意志

                                이태동(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溫故而知新」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것을 외면하고 정신적인 뿌리를 
상실한 채, 물신적인 것만 추구하는 오늘의 우리 현실에는 무엇보다 절실
하게 필요한 말 가운데 하나이다. 누구든지 문화적인 소양을 지닌 사람이
라면, 우리의 전통적인유산의 가치를 다시 찾고 나아가서 현대문명 가운데 
'살아 있는 죽은 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흐트러진 의식에다 
새로운 삶의 불길을 지피기 위해 치열한 시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단시」 동인들은 테마를 미리 정해 놓고 시를 쓰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고, 그들의 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두려워하고 있지만, 그들의 작품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지나찬 기우라는  사실을 충분히 말해 주고 있다. 
시인들은 비록 이른바「테마시」를 쓰고 있지만, 그들의 의식과 시선은 
무수히 다양하고 독특하다.
   이를테면 지극히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감정이 없는 차가운 언어로서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공백상태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는 시인 洪海里는 
「서울 서낭당」이란 탁월한 시에서 우리들의 옛 조상들의 안식처였고 
경건한 믿음의 대상이었던 서낭당이 오늘날 어떻게 변신해서 타락하고 
있는가를 밀도짙은 이미지 등을 통해서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기계문명에 파괴되지 않았던 순박한 옛 사람들은 비록 
공리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서낭당 돌무덤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그것에 의존해서 맑고 평화로운 마음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깨끗하게 살아갔지만, 오늘의 혼탁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타락한 
무리들은 믿음의 대상을 버리고 그것에다 영혼이 없는 빈집을 짓고 
새로운 삶을 파괴하는 기계적인 쾌락만을 단말마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문화 속의 서낭신은 생명과 창조 및 구원을 위한 것이었으나, 
오늘날의 그것은 인간정신을 타락시키거나 타락으로 유혹하는 차가운 
죽음의 불빛이 되고 있는가하면, 정신적인 믿음과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 
쌓아 올렸던 돌멩이들은 '살아 있는 여인들의 시체 위로 던져지는' 손때 
묻은 동전으로 변신했고, 신성한 서낭신이 머물렀던 맑은 여울물과 학 
두루미가 내려앉던 푸른 소나무 숲들은 사라지고 연탄개스의 매연으로 
대지는 오염되고 있다. 또 그 결과 돌더미를 향한 경건한 기도는 모두 
사라지고, 불면증에 허덕이는 도심이나 변두리에는 '오색찬란한 네온의 
띠를 두른 서낭당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영혼을 버리고 오늘만을 
사는 무리들이 그 속에서 인간의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위한 신화적인 
마스크가 아닌 단절과 타락을 위한 마스크를 쓰고 마녀들처럼 죽음을 
재촉하는 춤을 추고 있다고 시인은 증언하고 있다.

     불면증에 허덕이는 도시
     도심이나 변두리
     이별을 밥먹듯 하는
     영동이나 양동
     창신동이나 청량리
     오색찬란한 네온의 띠를 두른
     서낭당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살아 있는 여인들의 시체 위로
     던져지는 돌멩이 돌멩이
     수없이 밀려가는 사람들
     서낭에 가 절만 하는
     강남과 강북
     육교 옆에 지하도 위에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의
     수많은 서낭신
     요란한 불빛만이
     비인 도시를 지키고 있다
     섬처럼 떠 있음으로 존재하는
     육신의 집 서울
     정다운 연탄개스와 매연으로
     내려앉지도 못하는 비둘기 떼
     저마다 얼굴을 가리고
     이름을 지운 채
     울긋불긋 치장하고 춤을 추고 있다
     밤새도록 요란한 조명 아래
     서낭당 둘레를 돌고 돌고
     그 위를 선회하는 깍깍 까마귀 떼
     안개 속에서 울부짖고 있다.

                     ---「서울 서낭당」의 전문

   이 서낭당으로 상징되는 이땅의 전통적인 민간신앙의 정신세계를 버린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나라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기상
천외의 천국처럼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권태와 타성 속에 타락해서 해체
되어감을 시인은 몽롱하게 술이 취해 죽음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술
취한 사람들의 나라에 비유하고 있다.

     법이 있어도 없는 나라
     도가 있어도 없는 나라
     시간이 있어도 없는 나라
     타임머신의 나라
     여자들의 끝없는 암흑의 나라
     줄 넘은 유성기판의 나라
     그때그사람그때그사람그때그사람그때그사
     잠 속의 절망의 나라
     여우의 나라 늑대의 나라 돼지의 나라
     안개였다가 비였다가 바람이였다가
     무주공산명월의 나라
     핑크빛 물의 나라
     냉수 대접에 익사한 나라
     보랏빛 연기의 나라
     죽음의 환희와 후회의 나라
     품 속에 든 천하의 나라
     손 안에 든 황제의 나라
     기상천외의 나라
     우리나라술나라
     술나라만세!
     
                 ---「술나라」의 일부

   *끝의 2행 '우리나라술나라/술나라만세!'는 글자가 옆으로 쓰러지고 
    꺼꾸로 뒤집혀진 상태로 되어 있음.

   몽롱하게 술취한 암흑의 공화국에서 시인은 자기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는커녕 차단되어 앞뒤가 전도되는 양상을 발견하고 끝내는 힘없는 
저항까지 한다.

     내가 가!라고 말했을 때
     너는 가느냐?고 물었다.

     다시 가!라고 말했을 때
     너는 가나다의 가?냐고 물었다.

     또다시 가!라고 말했을 때
     너는 수우미양가의 가?냐고 물었다.

     다시 한번 가!라고 말했을 때
     너는 O.K.?냐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가!라고 말했을 때
     너는 틀렸느냐?고 물었다.

     내가 가?냐고 물었을 때
     너는 가!라고 말했다.

                  「가!」의 전문

   「가!」라는 시에는 화자가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상대편은 
'가'라는 음이 지닌 변수와 궤변을 통해 화자를 획일적인 의미에서 몹쓸 사람
으로 조작해서 추방해 버린다.
   이렇게 추방되고 소외된 자는 철새들이 물가를 찾듯이 「저녁나라」의 선술
집을 찾아 피끓는 울분을 토하면서 혁명가의 아지트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세상의 소금은 그 짠맛을 잃고 또 우주의 모든 것을 억눌림 
속에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으로 변햇고 사랑과 조화는 미움과 단절로 퇴화
되어, 인간 도시는 유령의 집처럼 변해 마치 영혼이 떠나버린 시체처럼 공허
하다고 말한다.

     빈 집
     빈 도시

     빈 산
     빈 바다

     빈 몸
     빈 영혼.
       
        ---「바캉스」의 전문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인이 절망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머릿비듬의 파편처럼 더럽고 병든 것을 씻어내고 맑은 의식을 되찾고자 
하는 처절한 욕망을 물과 비누,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자라나는 머리카락 
등과 같은 이미지로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
     가장 완벽한 소우주에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듯
     우수수 우수수 소리가 난다.

     비듬의 조락
     내 살의 뼈
     뼈의 파편
     파편의 날개
     날개의 중랑.

     몇 가닥의 머리칼
     머리칼의 부드러움
     부드러움의 항변
     항변의 절망
     절망의 자유
     자유의 피
     피의 낙하.

     비누로 문지르고 북적북적
     싹싹싹 쓰윽쓰윽
     버글버글 미끈미끈
     스스스 스러지는 비누의 향기
     오색풍선 고무풍선
     영롱한 광채
     샴푸로 다시 문지르고 슬슬슬
     벅벅벅 긁어대고 북적북적
     린스로 헹구고 헤헤헤
     낙엽지는 가을에
     머릴 감는다
     두 눈 꼭꼭 감고 머릴 감는다.

                   ---「머리감기」의 전문

   시인이 자신의 소우주에서 죽음의 낙엽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부활을 위해 
발돋움하려는 의지는 외부세계로 투영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강열하게 시사
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탄생을 위한 여명이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비눗물 
속에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 오고 있을 경험으로 느끼고 새로운 희열과 
용기를 얻고 있다.

                               『現代詩와 傳統意識』(문학예술.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