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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맑은 감성과 삶의 원환 - 洪海里論 / 양채영

洪 海 里 2005. 11. 29. 10:37
맑은 감성과 삶의 원환-洪海里論/양채영
-『투망도』와 『화사기』를 중심으로
 

                         맑은 感性과 삶의 圓環-洪海里론/梁彩英
                         ---『投網圖』와 『花史記』를 중심으로

                                                                         梁彩英(시인)
 
 洪海里씨의 첫 시집 『投網圖』에 수록된 詩篇들은 審美的인 것에 가깝도록 <바다>와 <女子> 그리고 <꽃>들이 가지는 신선한 생동감과 빛나는 관능에 많이 관심하고 있음을 본다. 다음에 예거하는 「善花公主」「善德女王」「獻花歌」「春香」「아지랑이」 등의 작품에서나 「投網圖」에서 '갈매기 깃에 펄럭이는/일몰의 바다/관능의 춤을 추는 바다/둥 둥 두둥 둥 둥/푸른 치맛자락 내둘리며/흰 살결 속을 들내지 않고/덩실덩실 原始의 춤을 춘다.' 란 표현에서나 「연꽃 피는 저녁에」「봄바람」 등의 작품이 그것에 값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戀歌의 발상법에 즐겨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신선한 관능의 肉化를 우리의 至高했던 역사 속의 여성으로부터 찾아내고 있다는 사실로, 이것은 멋있고 口味당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오늘의 末稍神經的인 官能美의 범람 속에서는 건전한 우리의 정신문화를 위해서도 관심해 볼만한 일인 것 같다.

   종일 피릴 불어도
   노래 한 가락 살아나지 않는다
   ---중략---
   물거품 말아 올려 구름 띄우고
   바닷가운데 흔들리는 순금 한 말

              ---「善花公主」의 일부

   구름만 데리고 노는
   해안선을 종일 바라보다가
   바닷가운데 갈앉은
   선덕여왕의 금가락지

              ---「善德女王」의 일부

   꽃 꺾어 받자온 하이얀 손
   떨려옴은 당신의 한 말씀 탓
   그대는 진분홍 가슴만 열고

                ---「獻花歌」의 끝연
 
 위의 시들에서 보이는 바 가히 절창에 속하는 그의 결곡한 시어가 짜낸 事象의 신선감과 그것들이 거느린 안정된 정서의 깊이와 빛나는 共感領域은 그의 시의 줄기이며 뿌리이다.
 이와 같은 그의 심미적인 감각적 시어의 조직과 맑은 관능에의 관심은 제2시집 花史記에서도 대부분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시적 안목은 우리 삶의 제반 대소현상을 선의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자기 의식에 정립된 교양적(知的) 含量과 實體驗으로 하여금 변용시켜 이해시키려 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공유하는 삶의 어둡고 밝은 것의 끊임없는 반복과정에서 다시 출발하는 새벽의 결의와 허망히 消盡해 버린 저 日沒로 점철되는 우리들 삶의 圓環을 그의 시는 또한 主潮로 삼고 있다.

   無時로 木船을 타고
   出港하는 나의 意識은
   칠흑 같은 밤바다
   물결 따라 흔들리다가
   滿船의 부푼 기대를 깨고
   歸港하는 때가 많다.
 
   投網은 언제나
   첫새벽이 좋다
   가장 신선한 고기 떼의
   빛나는 옆구리
   그 찬란한 純粹의 비늘
   반짝반짝 재끼는
   아아, 太陽의 눈부신 誘惑

             ---「投網圖」의 일부.

 그의 의식의 投網行爲는 우리 삶의 빛나는 획득을 위해 부단히 계속되어지고 <木船> <칠흑 같은 밤바다> <부푼 기대를 깨고> 같은 구절은 우리 인간의 허약함과 그에 대응되는 거대한 삶의 힘겨움에 대한 자각과 극복의지를 함께 하고 있음을 본다.

   겨울아침의주차장은항구였다.
   난장판된수라장이었다.
   안개덮힌대폿집의한창때였다.
   통통대는목선들의아우성이었다.

            ---「겨울아침의주차장」의 일부

 띄어쓰기를 무시한 것과 함께 삶의 한 현상을 중첩되는 詩句로 조탁하여 독자들이 시에 대한 미진한 사항을 남기지 못하도록 전면 유의하고 있음을 본다.
 그의 이와 같은 표현기법과 크고 긴 호흡량과 속도감은 또 하나의 특징으로서 언젠가는 그가 文明批判詩나 長詩類에 많이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의 시인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보아진다.
 그의 제2시집 『花史記』에선 위에서 예거한 시적 안목이나 主潮를 이루는 主題나 심미적 관심사가 좀더 구체적이고 깊이 심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수(繡)를 놓는 
   아내의 잠은 항상 외롭다
   수틀 속 물오른 꽃대궁마다
   태양이 껴안겨 있다
   손마다 가득 괴는 가슴의 설움
   병처럼 깊어 더욱 외롭다
   고물고물 숨쉬는 고요
   사색의 이마는 꽃보다 고운
   여름의 꿈이 맺혀 있다
   꽃은 죽어 여름을 태우고
   꿈보다 예쁜 불을 지피고 있다.

                   ---「花史記」의 제5부

 좀더 그의 시는 內向的이고 私的인 점에서 불안하지 않으며 事象에 대한 날카로운 투시와 겸손한 태도로써 선택하고 있는 시어와 적절한 기교는 읽는 이에게 스스로 자기에게 알맞은 보석을 한 개씩 간직하도록 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밝고 단단한 審美意識은 좀더 근원적인 죽음에의 관심을 共有함으로써 더욱 확대된다.

   그것은 영원한 미완의 회화
   나의 눈은 언제나 허전하다
   죽음과도 친한 나의 잠
   나의 꽃밭은 텅 비어 있다.

             ---「花史記」의 끝부분
 
 그는 아름다운 꽃의 허망함을 인식하며 영원한 未完의 繪畵로서의 꽃을 볼 줄 알며 저 아름다움의 밑바닥에 갈린 검은 빛깔의 절망감이나 체념이나 눈물들을 꿰뚫어 봄으로써 쾌적한 生氣를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으로 환치시켜 놓는 일에 공헌하고 있다.
 그의 이와 같은 변용과 근원적(?) 미의식의 심화는 결국 抽象性이란 것에서 벗어나기 힘든 일이나 그는 그것을 잘 극복해 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시적 역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이승의 잠 속에 접어두고
   가벼이 날아가다 보면
   시월 상달 산수유 열매를 적신 
   새벽 이슬도 빠알갛게 물이 들었다.
   ㅡㅡ중략ㅡㅡ
   잠 속에 열려진 대문을 나섰더니
   날새도 발소리 죽인 허허론 모랫벌
   잠깨어 눈을 부비듯
   짧은 추억의 그림자로 문대고 있는
   파도 소리.

                   ---「새벽의 꿈」의 일부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똑똑히 보이는
   내 영혼의 뼈와 살의 무늬들
   전신이 맑아오는 칠흑의 세계
   어디서 새벽녘 두레박소리 들리고
   어둠이 물러가는 그림자 보인다.

                       ---「거울·I」의 전문

 그의 환상이 肉化되어 가는 과정은 좀더 주변적인 체험과 추상성의 超時間的 공간 사이를 적절히 내왕함으로써 허황된 언어유희에서 구제되어 있으며 날카로운 직관력과 대상에 대한 재빠른 전면파악, 세련된 감성에서 얻어진 건강한 시어들은 갓 빚어 낸 果肉처럼 신선한 빛과 향기를 지니고 있어 설득력을 얻는데 성공하고 있다.
 「지난 늦가을」, 「소리·Ⅰ」, 「소리·Ⅱ」, 「다시 가을에 서서」, 「장미」, 「새」, 「자귀나무송」, 「낮잠」, 「늪」 等 일련의 작품들이 그의 맑은 감성에 크게 힘입은 것들이라고 보여진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지마는 그는 모든 사물을 맑은 감성의 궁전 속에 일단 모셔놓는 일로써 어떤 작품이든 투명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되어진다.
 그리하여, 그는 삶에의 고된 地平에서 투명한 감성으로 자기를 성찰하는 일로써 구원받고 구원하고자 한다.

   보내고 난
   비인 자리
   그냥 수직으로 떨어지는
   심장 한 편
   투명한 유리잔
   거기 그대로 비치는
   ㅡㅡ중략ㅡㅡ
   아아,
   보내고 나서
   혼자서
   드는
   한 잔의 
   술.

                ㅡㅡ「노을」의 전후반부

   가을은 그렇게 큰 거울을 
   하늘 높이 달아 놓고 나를 부른다.
   언제 내 가슴에 그렇게 크고
   맑은 거울이 비친 적이 있었던가
   사랑도 시들해 새들은
   머언 숲으로 날아가고

                      ㅡㅡ「거울·Ⅱ」의 일부

 일련의 거울에 관계되는 여러 편의 시와 가을의 이미지를 표출한 시편들 간에는 일맥 상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유의해 볼 수 있다.
 보내고 난 빈 자리와 투명한 유리잔과 노을과 혼자 남은 상태, 또한 가을하늘과 거울과의 교차, 그 속에 투여되는 시인 자신의 심리적 영상 등은 모두 거짓없는 자기 성찰과 아픈 자기 해체로써 새로움과 참됨에 대한 갈망에의 꿈에 기인한다고 보아진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것에의 맹목적 함몰보다는 얼마쯤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려는 힘겨움과 삶의 제반 현상에서 허위를 털어버리려는 시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의 맑은 감성과 거울과 가을에 연결되는 꿈과 환상적 거울의 이미지와 견고한 정밀체로서의 거울과 내밀한 결실로서의 角皮들의 조화는 곧 그의 시적 조화인 동시에 삶의 깨달음에 이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노을이 타는 
   바닷속으로

   소를 몰고
   줄지어 들어가는
   
   저녁녘의
   女人들
 
   노을빛이 살에 오른
   바닷여인들.

                        ---「갯벌」의 전문

 노을께 소를 몰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노을빛의 여인들은 하루해를 영글게 하고 고단하나 깊은 단잠 속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에 해가 뜰 무렵 햇살처럼 바닷속을 솟아오를 것임에 틀림없다. 여인네들이 몰고 가는 소는 더욱 노동과 힘의 줄기참이고 노을이 타고 있는 바닷속은 우리 삶의 터전인 저자 거리와 불빛 밝은 한 가정의 集積임이 분명하다면 이 단시 한편이 던져주는 삶의 감동은 저녁답의 갯벌과 노을빛이 가지는 함몰이나 스러짐이 아니라 힘찬 솟아오름의 한 前兆로서의 오히려 그 緊迫性과 생동감에 있을 것이다.
 힘찬 소와 여인네의 살가운 손목과, 휴식에의 갈망, 그것들이 불타듯 받아들이는 상징으로서의 무량의 바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불타는 신화의 연상과 환상에 도달케 한다.
 그의 이와 같은 삶의 한 양상으로서의 반복과 소멸과 생성의 원환은 그의 두 권의 시집, 『투망도』와 『화사기』의 공유된 主潮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되었지만 표제시로서의 「투망도」와 「화사기」는 그 작품의 구성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동일한 발상에서 출발되어진 작품이라 보아지며 그의 시적 제반 요소가 축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시에서도 사회윤리적 입장에 선 시편들이 없지 않으나 시집 『花史記』의 제4부에 수록된 시편들 대부분이 관념적 주제에 승하지 않고 감성으로 처리된 정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그는 어쩌면 어느 후일에 윤리적 측면에 깊이 관여하는 시를 쓰게 될 징후가 없는 건 아니다. 그의 시에 대한 남다른 집착과 의지, 그리고 정열과 몇 편의 長詩에 가까운 시편들이 그 발화점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그는 무엇보다 시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견해를 져버리고 있지 않는 것 같다(논리적 관심의 시가 아름답다는 것과 관계가 없다는 건 아니다).
 아마 그의 시가 좀 신경성인 것은 이것을 너무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 신경성이야말로 한 사람의 시인이 작품 앞에 놓여질 때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될, 바꿔 말하면, 시인의 성실성과 겸손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이와 같은 그의 작시의 태도면에서도 짐작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가 관심하는 많은 것들이 그의 열정적 성격과 그것을 수렴하고 통어하는 지적 견제의 평형이 행복하게 만나는 것에서 더욱 빛나리라 믿는다.

   다시 돌아올 모든
   젖은 발들을 위하여
   푸른 목소리를 위하여
   宿根草는 겨우내내
   아리게 아리게 앓았다.

                     ---「바람의 짓」의 일부

   죽은 땅이 일어서고
   다시 싸움을 돋우는
   북소리
   둥둥둥 깨어나고 있다.

                     ---「아지랑이·Ⅲ」의 일부

   밤이면 수 천 수 만 리 밖
   수 천 수 만의 바다
   바다마다 잠깨인 고기 떼가 일어서고 있었다. 

                                ㅡㅡ「겨울바다」의 일부

 그리고 그의 시의 많은 곳에서 보여지는 바람에 스러지는 풀잎들의 일어섬, 빈 꽃밭의 적막 뒤에 숨어 있는 봄에의 기다림, 어두운 밤이 가지는 새벽에의 의지 등은 생성과 소멸에 값하는 우리들 삶의 반복되는 고리(圓環)로서의 제한과 제한 외의 무한성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시야는 늘 열려 있으려 노력한다.
 지치고 스러지려는 곳에서 삶의 환희와 의지를 부여하려는 이와 같은 그의 부단한 노력과 성취는 그의 맑은 감성에서 비롯된 은혜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시의 모든 것에 미치지 못한 글이 되었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더욱 빛나는 업적과 고양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맺는다.  

                                                               『洪海里 詩選』(탐구신서 275.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