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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죽음의 민속적 의미와 미적 변용 / 꽃상여 : 장윤익

洪 海 里 2005. 11. 29. 11:10
죽음의 민속적 의미와 미적 변용/장윤익
-꽃상여/洪海里의 詩
 

                죽음의 민속적 의미와 미적 변용
                -꽃상여/洪海里의 詩

                                                  張允翼(문학평론가. 인천대 교수)


 동인지 『진단시』는 역사적 의미탐구라는 시대인식과 예술의 미학이 등식관계를 이루는 자리에서 시적 형성화의 출발을 시도한다. '震檀'이라는 명칭 자체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시의 창작은 우리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관계지어져야 한다는 동인들의 강렬한 연대감과 주체의식이 이 동인지의 방향과 성격을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
 최근의 8, 9, 10호의 테마시 「말뚝이」「수로부인」「백결」등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 우리 고전세계의 문화적 특성과 현실적인 삶과의 교류를 진지하게 탐구한 공통주제의 시들이다. 따라서 『진단시』의 창작작업은 우리 저변문화의 전통을 역사적 인물이나 민속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동인지들과는 다른 면모의 특성을 보여준다.
 11호의 테마시 「꽃상여」는 인간이면 누구든지 한번씩은 생각하고 음미해 보아야 하는 죽음의 문제와 연결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인 생과 사를 시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것은 다른 어떤 소재들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따라서 죽음과 관련된 전통적인 생사관과 그것의 민족적인 의미는 「꽃상여」라는 테마를 통해서 더욱 구체화되어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등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며, 이 인생유한의 법칙을 깨뜨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은 공포와 불안의 근원이 되며, 사자는 그것과 더불어 말이 없고, 생자는 몸부림쳐 보았자 자기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은 생자들에게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하고, 그 허무를 초극하는 방편으로 죽음을 미화하려고 한다.  
 상여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교통수단이며, 거기에 한번 실린 사람은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한다. 못 다한 한과 이승의 미련 때문에 상여는 사자보다 오히려 생자들의 허무의 절정이다. 화려한 장례와 꽃상여는 이러한 허무를 카타르시스 하는 도피심리의 의식행위의 절차이다.
 영구를 상여로 옮기는 천구로부터 발인제와 路祭를 거쳐 하관과 산신제를 지내는 장례절차는 망인에 대한 그리움과 인생의 허무를 한껏 고조시킨다. 그중 꽃상여를 메고 가는 상두꾼들의 輓歌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더욱 절감하게 한다. 
 이러한 생사의 의미를 함축한 꽃상여의 민속적 요소는 인간의 원초심리인 재생의식과도 관련이 된다. 죽음은 곧 새로운 세계의 재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영원한 삶의 인식은 이미 신화의 세계에서 이룩한 원형의 본능의식이다. 출생, 성장, 성숙, 죽음으로 이어지는 한 인간의 삶은 그 원형적 의미에서 사계의 순환과 동일하며, 이듬해에 다시 봄이 와서 피어나는 꽃은 재생의 축복에서 이루어진 생명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상여를 장식한 하이얀 꽃은 망자에 대하여는 재생의 기원인 동시에 생자에 대해서는 생명의식의 재확인이다.

 洪海里의「꽃상여」는 신규호의 테마시와 일맥 상통한다. 아버지라는 한 개인의 죽음을 두고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모색하고 시화한 점에서 두 시의 내용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洪海里의 시는 현실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문제를 진술과 선소리의 이중적인 표현효과를 살린 점에 그 특성이 있다. 시적 분위기는 두 시가 약간의 일치를 보이고 있으나, 표현기법에 있어서 신규호가 고도의 언어 절제를 통한 선명한 인상을 주는 이미지의 참신성에 주안점을 둔 것이 특징이라면, 洪海里는 산문적 효과와 4·4조의 가락을 병행하여 시적 묘미를 살려내고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한 세상 한없이 살지 못하고
   살아서 죽은 삶을 사는 척하다
   죽어 사는 삶을 꽃 피우랴
   저승나라 새 주소 마련키 위해
   이승의 가파른 고개 
   허위허위 넘어가네
   이제 훨훨 넘어가네
   주민등록 번호도 갱신하고
   우편번호도 써 넣어야지
   땅에 묻히는 육신은 정표로 두고
   떠나가네 떠나가데
   속엣것 다 남겨주고
   빈 껍질만 가지고 훨훨 가네
   어허 넘자 이승 마루
   님을 찾아 사랑 찾아
   저승나라 찾아가네.

   육신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이승의 마지막 잔치상 받고
   너훌너훌 춤추며 간다
   구만리 장천
   하늘나라
   홀홀 단신으로
   하얀 손수건 흔들며 간다
   살내 젖어 스민 권속
   손 흔들어 이별하고
   하늘다리 건너서 
   은하수를 지나서 
   간다 간다
   끝도 없이 한도 없이
   알량한 울음소리
   다 떨쳐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무명으로
   무명으로 간다 
   이승에서 못한 사랑
   저승에서 꽃 피우랴.

   땅을 치는 지어미
   뿌리 뽑힌 자식들
   슬픔과 허망으로 피우는
   이승의 끝자리에 피우는
   꽃밭일레
   꽃밭일레
   아픔도 찰나
   두려움도 순간일시
   막막한 죽음도 그러하리야
   이승 저승 사는 삶을
   촛불 밝혀 피워 놓고
   꽃 속으로 날아가네
   꽃이 되어 날아가네.

              ㅡ「꽃상여」의 전문

 洪海里는 죽음과 꽃을 중요한 의미로 연결한다. 죽음은 꽃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죽어서 사는 삶을 꽃피우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이다. 저승나라는 인생의 새 주소이기 때문에 주민등록 번호도 갱신하고 우편번호도 새로이 써 넣어야만 한다. 저승에도 님이 있으니 님 찾아가는 인생행로의 한 과정이 죽음이다
 사자는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저승에 가서 하려고 하는데 생자들은 슬픔과 허망으로 몸부림친다. 인생의 철리를 모르는 이승의 사생관은 죽음을 두고 허무에 거쳐 있지만 달관의 경지에 이른 사자들에게는 죽음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의미가 된다.
 洪海里의 사생관은 위와 같은 의미로서 「꽃상여」의 중심 내용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전래되어 온 우리 민족의 죽음관이기도 하다. 저승을 보다 아름답게 미화하려는 것은 죽음을 초극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심리이다. 꽃으로 새로이 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소쩍새 울면
   소쩍새 부러웁고
 
   뻐꾹새 울면
   뻐꾹새 부러워라.
   
   진달래 피면
   진달래 되고
   
   철쭉꽃 피면 
   철쭉꽃 되고 파라.

   저것들이 내 속을 알까
   마음을 접네
  
   부끄러워 부끄러워
   마음을 접네.
               ㅡ「꽃 피고 새가 울면」의 전문

 꽃이 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위의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소쩍새 울음과 뻐꾸기의 울음이 꽃이 되고픈 인간의 마음을 재촉하듯이 우주의 넓은 공간 속에서의 인간의 존재는 끝없이 여행하는 한 사람의 나그네에 불과하다. 재생은 곧 새로운 주소의 이행의 뜻이며, 이러한 생사관은 우리의 민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온 무의식의 흐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진단시』11호에 게재된 테마시 꽃상여는 우리 것의 탐구는 물론 죽음의 민족적 의미와 미적 변용을 각자의 개성적 면모에서 밀도있게 시화해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보편성의 문학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진단시』의 우리 것을 찾는 문학사적 사명은 우리 동인지 문단의 새 좌표를 설정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현대시와 전통의식』(문학예술.1991)
                                            『꽃상여 노래』(진단시 11.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