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우물을 파면서

洪 海 里 2006. 2. 18. 10:14

우물을 파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면서

산 좋고 물 좋다는 우이동에 살면서

한밤중 졸졸거리는 물소리도 귀해서

가뭄에 물길 찾아 땅을 파면서

깊은 땅 바위 사일 뚫고 뚫으면서

빗방울 같은 땀방울에 젖고 젖으면서

덜덜대는 착암기 소리에 귀를 날리면서

서울 가면 얼굴이 하얘진다는 고향친구를 생각하면서

고향 가면 무슨 얘길 할까 하면서

서울이 좋긴 좋더라는 얘길 해야 하나 하면서

한밤이면 소쩍새 울음으로 흘러가면서

새벽녘이면 뻐꾸기 울음에 귀를 열면서

잊어버린 고향 물맛에 눈을 씻으면서

뿌연 하늘에 날려보낸 초록빛을 그리면서

저 새들은 서울에 살면서도 살아 있나 하면서

새도 사는 서울에 왜 나는 못 사는가 하면서

눈 감고 귀 막으며 땅을 파면서

막걸리 쐬주잔에 땀을 씻으면서

눈썹에 걸리는 고향 하늘을 털어내면서

여기에 발을 묻고 죽은 듯 살아야 한다 하면서

돌아가야 바보 같은 친구가 될 뿐이라면서

이러저러지도 못하고 살아가면서

서울이란 그런 곳이야 체념하면서

나오지 않는 물을 찾아 땅을 파면서

물길 찾아 바위를 뚫으면서 뚫으면서

 

(『元旦記行』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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