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백궁 속 까만 씨앗을 위하여

洪 海 里 2006. 5. 2. 04:53

白宮 속 까만 씨앗을 위하여

洪 海 里

 


1
작년 여름
죽을둥살둥 죽-을-둥-살-둥
2층 지붕 TV 안테나까지 감고 올라가
하늘등을 달고 종을 울리던
말라버린 나팔꽃 줄기를 본다
아직도 쇠 파이프를 악착같이 움켜쥐고 있다
이미 길은 끊어지고
목숨도 다했지만
죽어서까지도 필사적이다.

2
올라갈수록 이파리도 커지고
줄기도 튼실해지던 너
네가 떨어뜨린 씨앗들이
올해도 마당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길을 찾아가는 것은 길을 내는 일
꽃을 피우는 일은 잠깐
그 아름다운 찰나를 위하여
너는 온몸으로 몸부림을 쳤다
얼마나 힘든 노역이었더냐
너의 몸이 손이었다
일손이었다.

3
몸으로 파이프를 장악하여 너는
왼쪽으로, 위로만 방향 지시를 했지
그것이 무슨 예언이었을까
아래쪽의 비난의 소리를 묵살하고
고통의 달콤한 맛을 즐기려 했을까
父祖의 권위를 지키고 싶었을까.

4
밑에서 뿌리를 잘라 놓아도
몸 안의 남은 피 한 방울까지 짜 올려
마지막 꽃송이를 피우고 나서야
잎은 시들고 줄기는 말라 파이프에 매달렸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힘으로
천리 먼 길 白宮 속 까만 씨앗을 익혀
피의 족보를 쓰는 독기와
서럽던 역사도 있어 너는 아름답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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