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세란정사

洪 海 里 2006. 5. 2. 04:51

세란정사洗蘭精舍


洪 海 里

우이동 골짜기
새끼손톱만한 절 한 채 있네
절이 아니라 암자 하나 숨어 있네
난초 이파리나 씻으며 산다는
시를 쓴답시고 초싹이는 땡초
날 맑고 푸른 어느 날
마당에 나는 고추잠자리를 보고
시도 때도 없이 하늘 날고
집도 절도 없어도 내려앉는
자유자재의 길이여
그 무소유의 소유를 보고
시여 날아다오 날아다오 빌고 있네
'자네가 쓰는 시는 시도 아니다
자네가 쓰는 것도 아니다
자네가 어찌 시를 쓰겠는가
시는 어디 있는가
이미 쓰여져 있지 않은가' 하는 소리
첩년의 머리 위에 내리는 이슬비처럼
삽시간 그 사내를 적시고 있네
비에 젖은 그의 영혼의 밥그릇에
숟가락 하나 세워 삽시를 하고
잔 가득 매실주 넘치도록 첨작을 하며
울컥울컥 넘어오는 아픔 되삼키고 있네
눈앞에 널려 있는 詩를 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돌아 홀로 가는 길
어지럽고 숨이 차 헐떡이고 있을 때
벌들의 공중누각을 잎새로 가리고 있는
마당가 오죽 몇 그루 바람소리로 웃고 있네.



 (시집『봄, 벼락치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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