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 벼락치다』2006

다시 보리밭 속으로

洪 海 里 2006. 5. 6. 05:53

다시 보리밭 속으로

洪 海 里


푸른 바람으로 파도를 일으켜 사래 짓는 두둑 두둑의 청보리도

바람 한 끝에서 흔들리고 나서야 단단히 무르익어

한그늘을 짓느니,

질펀한 보리누름에 하늘은 푸르른데 풋풋한 내음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보리밭 이랑에 새벽녘까지 울다 지쳐

가슴 시린 소쩍새가,

솟쩌억 소옷쩍 서쪼옥 서쪽 섯섯쪽 울어 쌓다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겨자씨 만한 그리움도 참아라! 참아라!

할 때면,

붉은 보랏빛으로 기어가고 있는 자운영이 논바닥을

다 덮어 푸르게 푸르게 단내 풍기며 익어가 두렁 삶이

아파 풀어내는 구성진 가락은 한사코 흘러만 가고,

신음으로 지새는 내 가슴속 작은 텃논에 못줄 띄울

때가 됐다! 우는 뻐꾸기 이 산 저 산 옮겨가는 소리에

언제 목을 한번 날려본 적이 있었던가 한풀이 한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하늘과 들로 오르고 달리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쇠비름 개비름처럼 아니면 바랭이 바들바들 허리 접혀

바튼 숨을 슬픔으로 그리는 목숨도 여기 있어,

보리 고랑 어딘가 은밀한 곳엔 노고지리 새끼들이

푸른 하늘 구름장 위에 떠올라 뱃종거리는 제 어미를

남 몰래 기다리고 타는 흙냄새에 젖은 여치도,

풀 그늘 어디선가 울고 있어 보리밭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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