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편지> 내 안에서 흔들리는 것들

洪 海 里 2006. 6. 24. 03:21

洪海里 시인께,

 

선운사에 갔었습니다.
아는 스님께서 비가 갠 후에
싱싱한 녹차 밭을 찍어달라고 하셔서
카메라 하나 들고 간 선운사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또 고향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이 있음을
갈 때마다 감사하지요.
하긴 저녁에 문수사에서 만난
수많은 반딧불이의 윤무!
그걸 말하기에는 이 자리가 너무 좁은 것 같습니다.



싱싱한 햇살에 녹차잎들이
모두 깃을 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이렇게 아름다운 차밭을 일구신
우룡 스님을 경탄하며
맞이하는 아침 차밭의 풍경이 눈이 부셨습니다.

놀라움은 예상이 깨지는 데서 오는데
한사람의 자연에 대한 애정과
구도적 경작이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일인 줄을 사실 실감 못했던 것이지요.

선운사 석상암과 대웅전 앞
그리고 참당암 뒷뜰에는 오늘도 찻잎이 큽니다.
햇살과 이슬, 그리고 바람을 머금고...

언젠가 누구의 찻잔에 빛과 향이 물려서
가슴을 또 적시겠지요.
찻잔 속에서 우려지는 자연!
차는 바로 그 자연에 취하는 매력 때문에
늘 가까이 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요.



비가 개고 날이 화창한 오전
선운사 경내 보리수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아니, 꽃을 피우며 또 조용히 지우며
그렇게 서 있었지요.

그 나무 아래에 서면
피고 지는 것들이 한자락입니다.
결국 안과 밖이 하나이고
나무는 잎으로 잎은 또 하늘로 모두 하나입니다.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이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보리수나무 꽃봉오리에 맺힌 빗방울!
그 안에 선운사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지요.
천년 고찰의 거대한 우주가
물방울 안에 있다니.........

그러니 피고 지는 것도 한자락
사랑도 미움도 한자락에 있습니다.
혹여, 당신의 눈에 맺힌 눈물이라면
그 안에 거대한 우주가 일렁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침 빛의 부도전은 더 고요합니다.
빛이 주는 안정감은
아침 뜨락에서 더 분명해지고
카메라를 들면 더 실감이 나지요.

빗방울에 매달린 대웅보전을 이끌고
부도전에 이르니
고요함이 또 가득찬 소리만 같습니다.
반야심경의 공즉시색(空卽是色)이듯.......

아침 삼림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과
그 햇살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뭇잎들
그안에도 생존의 치열함은 엄존하지요.

부도전은 바로 그 안에 있습니다.
조용히 조용히.....
그러나 어쩌면 근엄한 기침소리처럼 말입니다.



나오면서 선배가 하는 야생화 화원에 들렸습니다.
선배는 없고 직원이 나와
아주 반갑게 맞습니다.

그리고 나를 이끌고 이꽃 저꽃으로 안내합니다.
누구를 이끌고 꽃으로
안내해 보신 적 있으신지요.
꽃들에게 안부를 하듯 일일이.......

그래서 찍어둔 수련한 송이입니다.
빛이 좋아서
꽃이 더 분명합니다.
누군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아야 하지요.

해맑은 수련 꽃을 바탕화면에 파일로 놓고
아이콘으로 살짝살짝 건들여 봅니다.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수련처럼
흔들리면서 또 움직이다가
두 번을 거듭 건들였더니 꽃이 핍니다.

순간 환해 옵니다.
세상 별일 아닙니다.
이렇게 몇 시간 안에 꽃을 떼어다가
영원히 가둘 수도 있고......
물방울에 사찰을 온통 담을 수도 있고.......

오는 주말
아, 놀토(저는 늘 놀토인데.....)
행복하십시오.

김판용 드림.


* 김판용 님은 우이시회 회원으로 전북교육청에 근무하고 있는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