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스크랩] 북한산 시화제와 나의 시 / 황도제

洪 海 里 2006. 8. 18. 10:33

어제 4월 14일(일), 산벗꽃 만발한 북한산 중턱, 복사꽃 피기 시작하는 더기에서 자연을 탐탐하는 우이시 회원들과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무릉도원을 꿈꾸며 만유가 공유할 수 있는 자연을 성스럽게 보존하기 위한 행사를 가졌다.
 "암담한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며 전율을 느끼는 우이동 시인들이 오늘 북한산 자연의 풀 속에 안겨 외치노니 몽매한 인간들이여 네 생명의 젖줄인 자연을 섬겨라. 자연을 보는 네 눈이 아직도 닫혀 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저 산야의 눈부신 꽃들을 보라 신의 뜻, 생명의 외경(畏敬)이 여기 넘치노니 그대가 지은 마천루(摩天樓)의 모래성도 한송이 저 꽃의 신비를 따를 수 없으리라. 꽃은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시(詩)다. 이 시가 막힌 네 가슴을 열지니 돌아와 무릎을 꿇고 자연 앞에 경배(敬拜)하라.  
 <자연과 시의 선언> 중 일부인 이 구절이 박주소찬(薄酒素饌)을 정성으로 천지신명께 올리는 엄숙한 자리에서 우이도원을 도스르려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귀에 댕강댕강 파고 들자 때 맞춰 산바람이 불어 도두밟아 오느라 땀흘린 이마를 시원히 닦아 주기 시작하였다. 지신(地神) 산신(山神) 목신(木神) 화신(花神)천신(天神)이 흡족하였음을 표해주는 손길이었다. 
 중식에 음복을 곁들이자 눈에도 꽃이 피기 시작하였고 그 흥은 태양의 열기처럼 지글거리며 시낭송의 막을 열어 젖히기에 바빴다.

  <산>
하늘 밑
살아 있는
가슴

절창의 
혀를 자르고
숨어버린
묵중한 자리

소리없는 
분노의 적막

 이 시는 1985년 처음으로 상재한 시집<태풍>에 수록한 작품인데  <북한산 시화제> (2002년)에 다시 게재하여 시화제 행사 낭송시에 산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시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바람에 섞이어 희석되는 귀의 의미보다는 함께 생각해 보자는 눈의 의미에 더 비중을 두자는 암시가 전달되어 왔다. 그것이 바로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하는 기회 부여인 것이다.
 우리는 덤부렁듬쑥 같은 이 세상에 내 던져지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겪어야 하는 과정을 비켜갈 수 없는 한계상황 속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본의와는 관계없이  세계내재성 속에 존재하는 미천한 목숨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기투(企投)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기 때문에 보짱으로 살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형상을 지음받은 것에 대한 무의식적 보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헌데 삶은 참으로 지난하다. 심장의 박동을 유지해야만 하는 사내들의 가슴은 
 첫째- 생존을 위하여 본능적으로 더듬었던 어머니의 젖가슴
 둘째- 쾌감을 위하여 손 안에 필요했던 그미(아내)의 젖가슴
 셌째-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의탁하여 영혼을 받아먹을 하나님의 젖가슴
 이 세개의 가슴을 거쳐가면서 찢어지다 못해 까맣게 타들고 마는 것이다.

 왜 사내의 젖가슴은 논외이면서 여인의 젖가슴에 대해서는 끝없는 보상을 요구하는가?
 왜 사내들의 가슴은 이심하다 할 만큼 무시하면서 여인의 가슴에 대하여는 한없는 대가를 요구 하는가?
 왜 사내들의 아픈 가슴은  모른 척 하면서 여인의 가슴에 대해서는 생각을 환기시키는가?
 왜 아픔이 살아 있는 하늘 밑의 사내 가슴에 대해서는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가.

 사내의 가슴에 눈물을 떨궈 본 적이 있는가?
 사내의 가슴에 귀를 대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내의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안은 적이 있는가? 
 사내의 가슴도 여인의 가슴과 같다는 것을 - - - 

 왜 남자의 가슴은 아픔을 담아서는 안 되는가?
 왜 눈물을 담아서는 안 되는가? 
 왜 신음소리를 담아서는 안 되는가?
 왜 남자들 가슴에 무수히 많은 주문을 걸어 박동을 멈추게 하는가?

 사내들은 드디어 울 수밖에 없는데  왜 울지도 못하게 하는가? 
 사내의 울음은 천붕의 전주곡인가, 마음대로 울 수도 없는 이 기막한 남자의 가슴은 드디어 혀가 잘린 입이 되어 산의 모양으로 주저앉았는데, 그래도 자식새끼 키우겠다고 죽지 못하고 누워 있는데. 가뭇없이 사라지고 싶지만 차마 자식들에게 욕되어 그리 할 수 없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어느 날 조용히 가무리고 싶었는데, 자몽스러운 죄 때문에 그리 할 수도 없었는데. 
 이 심정을- - - - 아는가?  알기나 하는가? 알려고 해 본 적이나 있는가?

 우리가 산을 찾아 너나들이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침묵을 강요하는 너의 가슴과 나의 가슴이 서로  따스하게 호환하며 위무하기 때문인 것을.
 사내들이여! 남자들이여! 울고 싶으면 산으로 가라.  그러면 너의 모습이 찾아질 것이다. 그런 다음 목을 놓고 울도록 하라. 그러면 풀과 나무가 자신의 한스러움을 꽃으로 승화시켜 날려 보내듯이 너희들의 근심 걱정 원망 분노도 하늘로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시였지만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담았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 보아주지 않으니. 
 내 손방의 부족함이여.     원원이 모자람이여.

 

 

출처 : 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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