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평론> 전형과 상상력 / 놀부 : 이영걸

洪 海 里 2006. 11. 3. 18:12

典型과 상상력
- 테마시「놀부」

李永傑(시인 · 외대교수)

『震檀詩』12집의 '테마'는 우리 민족의 典型 중의 한 인물 놀부에 관한 것이다. 유교적 가치관과 농경사회의 삶이 반영된 『興夫傳』은 仁厚와 염결의 덕을 긍정하고 利己와 탐욕을 비판하여 흥부와 놀부를 대조적 전형으로 제시했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의 모티프는 '마음만 옳게 먹고, 되는 때를 기다'리는 순박한 서민의 꿈을 대표한다.
『흥부전』의 대조적인 전형의 仁厚와 염결의 덕과 집단적 인간관계를 법식화한 삼강오륜에 근거해 構念된 것이지만, 권선징악적 플롯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구체적 제목을 음미하면 인후와 염결에 따르는 나약과 무능함이 주목되고 탐욕에 얽혀 있는 강렬한 개성과 박력도 주목된다.
'흥부 마음 인후하여 청산유수와 곤륜옥결(崑崙玉潔)이라. 성덕을 본받고 악인을 저어하며, 물욕에 탐이 없고 주색에 무심하니 마음이 이러함에 부귀를 바랄소냐! 『흥부전』의 이런 구절은 인후와 염결의 덕에 대한 定式的 두둔이지만 '가난한 중 웬 자식은 풀마다 낳아서 한 설흔나믄 되니'의 제목은 과장법에 의한 해학미를 겨냥한 것이겠지만, 생활인으로서의 흥부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마음만 옳게 먹고, 되는 때를 기다'리는 자세도 창의와 근면의 가치를 믿는 현대적 기풍에 반대되는 순응주의로 해석될 수도 있다.
『흥부전』의 理念과 設話의 세목 사이에 긴장이 있듯이 유교적 가치관을 부분적으로 계승했으면서도 창의와 근면의 가치를 신봉하는 오늘의 時點에서는 흥부와 놀부의 전형에 대한 반응에 있어서도 긴장이 없을 수 없다. 열 개의 박을 실망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집요히 타는 놀부의 정력과 뚝심은 최종적 망신에도 불구하고 부각되는 미점이 있다.
『흥부전』은 플롯과 인물 간의 긴장을 내포했을 뿐만 아니라 인후와 염결의 덕도 시대적 변화를 견디고 살아남는 가치인 만큼 오늘을 사는 시인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다. 농경사회의 가치관의 전형이 산업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굴절되어 비치는가는 민족적 전형과 상상력의 관계를 점검하는 일이 된다. 진단시 12집에는 여덟 同人의 테마詩와 함께 네 분의 찬조 작품이 실려 있다. 다채로운 視點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공통적 범주로 나뉘어 진다. 놀부와 흥부는 補足的 인물인 만큼 놀부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흥부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저변에 깔리게 마련이다.
原典과 마찬가지로 놀부를 탐욕의 전형으로 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이에 반대하여 노력과 창의와 진취성의 표상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洪海里의 「異說 놀부論」은 지금까지 살핀 同人들의 작품들에 비해 原典의 설화적 맥락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이다. 洪海里에게도 文孝治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움과 飛翔의 모티프가 있다. 전체 문맥을 살피면 그리움은 理想세계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되고 '종달새의 비상'은 세속적 가치를 초극하는 자유의 기상으로 파악된다.

그리운 섬 그대여
비유가 없는 이 시대
풍자가 없는 이나라
바닷 속에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파랑도 같은 그대
그리운 섬이여.

지리한 장마 끝
하늘 터지며
반짝이는 웃음소리
언뜻 스치는
낯익은 얼굴
금빛 그리움이다.
ㅡ「異說 놀부論」첫째, 둘째 연

'파랑도'. '금빛 그리움'등의 색채의 상징으로 理想界의 幻視를 부각시킨 이 작품은 『興夫傳』의 설화와 해학이 현실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서민의 꿈에 관련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비유'와 '풍자'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유념하는 정신의 긴장에서 생성되며, 둘째 연의 日光의 이미지는 첫째 연의 '파랑도'처럼 순수와 광명의 이상계에 대한 비유이다. 후속되는 비유 '비맞은 호박잎의 물방울'과 '솔밭 푸르른 바람소리' 역시 '기갈의 시대'를 벗어나려는 염원을 표상하는 효과적 이미지이다.
「異說 놀부論」은 原典의 두 전형에 대한 직접적 관심대신 原典의 기본 설화에 암시된 현실 초극의 꿈의 모티프를 원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 여덟 동인의 작품들을 고찰하였다. 전형으로서의 놀부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들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들이 있고, 原典의 기본 플롯의 특정한 면을 골라 활용한 작품들도 있다. 이렇게 세 범주로 나뉘어지는 작품들이지만 自省과 시대의 비판에서 공통점을 지니는 순간들과 함께 상상력의 다채로움도 주목된다. 原典의 플롯에 밀착한 說話의 운용이 있는가 하면 原典의 플롯의 새로운 해석도 발견된다. 전형으로서의 놀부가 민족적 상상속에 차지하는 비중을 헤아리게 하는 테마詩들은 新舊의 대응과 대조를 통해 오늘의 삶을 다각적으로 조명한다.
놀부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시대의 변천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이상의 간극,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치, 분단 현실의 비극성 등의 주제에서도 이어짐을 살펴보았다. 대조적 인물의 현대적 의의와 함께 原典에 내포된 현실 초극의 꿈의 모티프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주목된다.
12집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古典과 故事와 풍속의 현대적 의의를 탐구해온 『震檀詩』동인의 개별적 업적은 테마詩가 각자의 세계에 어떤 폭과 깊이를 부여했는가에 관련해 고찰할 사항이다. 다채로운 테마 하나, 하나를 隨時的으로 취급하되 상상력의 통일성을 감안하면 점층적인 효과를 기대하게 된다. 다채로운 테마의 취급을 통한 歷史意識의 진작과 기법의 세련과 함께 보다 큰 규모의 작품의 포괄성도 예상할 수 있지만 이것은 개별 시인의 志向과 능력에 달린 문제이다. 오늘의 삶을 이해함에 있어서의 민족적 전통의 비중을 크게 일깨워 준 점만으로도 『震檀詩』동인들의 괄목할 성과가 있다.
끝으로, 테마詩와 함께 실은 同人들의 몇몇 작품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洪海里의 「異說 놀부論」에는 理想界에 대한 갈망을 '금빛 그리움'으로 비유했지만 '보길도'를 취재한 「섬에 가면」에서도 동일한 모티프를 다룬다.

아침이면 바다가 섬보다 먼저 잠깨어
안개를 피워 섬을 감싸고
한평생 반딧불처럼 품고 살아간
고운 비밀을 닦아 주느니
그리움은 반짝반짝 빛나는 문법
영혼의 빈 들판을 홀로 헤매이다
살 속에 뼛속에 비밀의 집을 세운다
ㅡ「섬에 가면」부분

孤島의 현장감과 함께 자연을 벗하며 사는 이의 淸淨한 경지에 대한 선망과 친화감이 토로되어 있다.
이러한 구절들은 『震檀詩』동인들의 관심과 기법의 통일성과 지속성을 일별케하며 테마詩의 다채로움에 추가해 이번 사화집의 흥미를 북돋워 준다.
(『현대시와 전통의식』문학예술, 1991)

 

 

<시>

 

異說 놀부論

洪 海 里

 


그리운 섬 그대여
비유가 없는 이 시대
풍자가 없는 이 나라
바닷속에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파랑도 같은 그대
그리운 섬이여.

지리한 장마 끝
하늘 터지며
반짝이는 웃음소리
언뜻 스치는
낯익은 얼굴
금빛 그리움이다.

기갈의 시대
물 만난 털난 미꾸라지
비맞은 호박잎의 물방울
솔밭 푸르른 바람소리다
챔피언을 한 방에 뉜 KO 펀치다
술 깨는 새벽녘의 냉수 한 사발이다.

재벌 총수의 늘어진 불알을 물어뜯는
벼룩이다, 벼룩!
아니면
악어의 눈물이다
어둠 속에서 모이 쪼는 새
그 눈빛이다
허구의 꽃이다.

잘 익은 보리밭의 깜부기
또는 그 위로 솟구치는 종달새의 비상
뒤돌아보면
추억은 금빛 그리움
함박눈으로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