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평론> 매저키즘적 사랑과 반항 / 수로부인 : 장백일

洪 海 里 2006. 11. 6. 11:26

매저키즘的 사랑과 反抗

- 수로부인

張伯逸(문학평론가 · 국민대 교수)



옛것을 오늘에 비추어 재조명해 보고, 그로부터 새 의미를 발굴하는 작업을 일러 溫故知新 또는 전통의 志向性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옛것이란 바로 역사적인 것으로, 그것은 지나가버린 것, 사라져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 작용하는 것을 뜻한다. 생각하면 역사적인 것은 과거적인 것인 동시에 나의 현재와 관계있다는 것, 지나간 것이 지나가버린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나에게 작용하며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이미 지나가 없으면서 현재를 제약하고 있는 것, 즉 이미 없으면서 있는 것이라는 특이한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현재는 과거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되면서도 주체적인 나의 능동적 활동으로 하여 과거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즉 과거의 필연이 자유로운 계획의 매개로 인해 새로운 행위로 전환되는 계기이다. 그로부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이 예측되어진다. 그래서 현재를 떠나 과거를 생각할 수 없음과 같이 미래 없이 현재를 생각할 수 없음도 그때문이다. 미래는 아직 없으면서 현재 속에서 작용하는 것, 즉 아직도 없으면서 있는 것. 그리하여 현재로 하여금 일정한 규정을 밟게 한다.
우리는 흔히 세월은 지나가 버린 것. 그래서 무의미한 것으로 단정해 버리려 한다. 또한 역사적인 시간이란 그저 밀리고 밀려서 흘러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시간은 이 현실에의 행위를 통해 現成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다. 이에 이미 지나가 없어진 것이 현재와 관련을 가짐은 우리의 기억의 영향이 현재에 미치기 때문이요. 아직도 오지 않는 미래가 현재와 관련을 갖는다 함은, 목적으로서의 상상이라든가 계획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서로 긴장 대립하면서 종합 통일되는 것이요. 그 전환되는 계기가 다름아닌 현재가 아닌가. 그래서 현재야말로 과거와 미래를 대립된 양극으로서 지니고 있는 영원한 절대라 할 것이다. 이를 전제로 할 때 인간은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 즉 역사적 산물인 동시에 오히려 역사를 만들면서 산다는 것에 그 진면목이 있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지나간 역사를 이해시켜 주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옛것이라면 이미 지나간 것이라는 의미를 가졌으나 그 인식의 출발점은 되려 현재에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그것은 미래에 대한 계획, 즉 목적적 견지에서 과거의 선택이 달라지며, 그 보는 바에 따라 의의가 바뀌어질 따름이다. 이는 옛것에 대한 재인식의 기준이 현재에 있다는 것, 아니 오히려 미래에 대한 태도 여하에 달렸음을 뜻한다. 이처럼 역사는 언제나 원근법적(perspective)인 서술이 아닌가. 그로부터 옛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제시되어지기도 한다.
그동안『震檀詩』동인들은 시적 테마로서 우리의 옛것을 재조명한느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런 뜻에서 우리 것에 대한 시적 診斷으로 집약되어진다. 앞서 말한 바 이 작업은 溫故知新으로서의 의미의 재발견이요, 조상의 얼을 오늘의 나의 얼로 되찾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 어찌 의미있는 미래 지향성의 작업이 아닌가.
제9집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공통 테마는 「水路夫人」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필자도 이 한 편의 글에서「水路夫人」의 마음을 꿰뚫고, 그 마음을 오늘에 새로 조명할 수 있는 심리학자이고 싶다. 『震檀詩』동인들의 시를 통해, 그 마음 읽으련다. 그들의 시는 그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대변해 줄 것이다.



「水路夫人」의 배경설화는 「三國遺事」에서 보인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자주빛 바위 끝에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려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이다.
ㅡ梁柱東 釋詞

이어 그 다음 사건은 이틀 뒤에 발생한다. 水路란 여인은 천하의 일색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깊은 산, 큰 물을 지날 때 귀신들에게 잡혀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순정공이 江陵에 부임하던 때도 바닷가에서 점심을 들다가 龍에게 붙잡혀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어느 노인의 가르침에 따라 경내 백성들을 모아 막대로 바다를 치면서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그 노래를「海歌」라 했다.

「三國遺事」의 수로부인條에는 두 노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두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수로부인이다. 위 기록에서 읽는 대로 그녀는 아름다운 미녀였기 때문에 여러 차례 神物에 의해 납치당했음을 본다. 그래서 「獻花歌」나「海歌」는 모두 神物에 의해 그녀가 납치 당한 사건을 詩話한 것이 아닌가. 이제 여기에 나온 인물들을 대응시키면 다음과 같다.

순정공·수로부인ㅡ失名老人·牛+字牛는 곧 수로부인이 순정공의 부인이듯, 牛+字牛노인의 아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진다. 노인과 牛+字牛의 정체에 관해 「三國遺事」의 기록은 분명히 않지만 대응관계로서 짐작되어진다. 그런데, 이 노인은 암소를 끌고 다닌다. 그 장면은 마치 순정공이 수로를 데리고 다닌 상황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牛+字牛는 母牛를 말하기도 한다. 老子의 '谷神不死'條에 따르면 '是謂玄牝 玄牝之門是謂天地根'이라 했고, '准南子'의 '墜刑訓餘滴'條에 의하면 '谿谷爲牝'이라 했다. 이를 정리하면 牛+生牛는 天地根이요. 谿谷이 되는 것으로 母牛가 된다. J. E. Cirlot 「A dictionary of Symbolism」에 따르면 암소는 땅과 달에 연관되며, 어머니를 상징하되 출산력의 생성성을 대변해 준다.
더욱 牛+字牛가 암소로 보여진 것은 노래 속에 표현된 '執者乎牛母牛放敎遺'로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노인과 암소는 부부 관계의 상징임을 짐작케 된다. 부부의 은유화이기도 한다. 그러나 「三國遺事」의 '蟲+也福不言'條에서 보여주는 '牛+字牛'는 이와는 달리, 어머니(母)로 보여진다. 이 점에서 양자는 의미의 차이는 보여준다. 그러나, 양자가 여성 상징에 따르는 출산력의 생성성을 갖는다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한편 本歌에서 보여지는 철쭉꽃은 共物의 성격을 띠는 바 「海歌」의 수로부인과 연관시킬 때, 생성력과도 관련지워진다. 그것은 수로부인이 요구한 꽃을 꺾어 바친다는 데서 더욱 구체화 되어진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수로부인의 정신분석학적인 진단이 가능해질 것도 같다. 뭇사내에게 벼랑의 꽃을 서슴없이 꺾어 달라고 요구한 그 여인의 심리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나를 아니 부끄려 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 오리이다'했을 때, 기록의 해석학적인 견해에 따르면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꺾어 온 그 꽃을 노인으로 부터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요부적인 기질이 보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색정도착증의 징후이다. 이는 어떤 대상에 접했을 때 그 자극으로부터 성적 충동이 심하게 병적이리만큼 발동되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는 벼랑의 철쭉꽃을 보았을 때 그 지경에 이른 것이 된다. 즉 이로부터 색정도착증의 원형을 보게도 된다. 이를 학대음란증이라고도 한다. 그 음란증이 만족되었을 때 욕구는 해소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사실은 '海歌'를 설명하는 창작동인의 설화중의 직설법으로 나타난다. 곧 神物에 의해 여러차례 납치당했음도 바로 그 색정의 음란증 때문이 아닌가. 그 점에서 수로부인은 색정이 강한 데서 비롯된 요부형으로 이해되어 진다. 그런 의미에다가 남다른 미모를 갖춘 미녀였음에 더욱 납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을 듯하다.
다음으로 밝혀져야 할 인물은 노인에 관해서이다.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벼랑을 오른 사람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신화상의 인물로 이해되어진다. 한국의 전래민담이나 전설에서는 신을 老翁에 비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머리가 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가 신이라는 사고를 굳혀준다. 그런데 이 노인을 보살의 화신으로 보고, 一然이 牧牛和尙의 법통을 계승한 점으로 미루어 一然을 牽牛 노인으로 보려는 데서 비롯된 說이기도 하다. 그러나 老翁을 승려로 보려는 이 說이 과연 합당한가에 관해서는 더욱 연구되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여하간 「獻花歌」의 경우에도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친 사실은 심상한 일이 아니며, 이는 「海歌」의 경우처럼 海龍에 의해 그녀가 바다 속으로 납치된 사실과도 일치됨을 본다. 「獻花歌」또한 수로부인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 老翁(神)이 사랑에 따른 생성력을 표상한 노래이다. 그것은 암소가 갖는 생성성의 출산력이 수로부인과도 상통되고, 꽃과 물이 갖는 생성력인 수로부인=牧牛 관계가 더욱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이것들은 모두 출산과 관련있는 신화적인 존재로서 고대 모계사회의 유습에 따라 이룩된 것으로 짐작되어지기도 한다.
이상에서 살핀 바를 요약하면 수로부인은 색정음란증을 병적으로 느끼는 동물적 육욕의 쾌락본능에 집착하는 여인이 아니면 그것의 순수 애정적 행위에의 형상화로 집약되어진다고나 할까. 그 점에서 일단은 애정문제에 따른 애정 표시에의 노래로부터 이해에의 첫 출발을 시도해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 살펴지는 것은 이들 시편들의 시적 형식에 관해서이다. '수로부인'이나 「海歌」나 「獻花歌」등의 시형식은 가장 단순하고도 소박한 것으로 즉흥성에 입각한 점이다. 또 이들 노래에서 즐겨 쓰는 수사법상의 특징은 도치법의 구사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면서 역설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이는 옛 古歌에서 자주 사용되는 형식이기도 하다. 즉 '나를 아니부끄러워 한다면, 꽃을 꺾어 드리겠다'는 가정적 직설적인 서정으로서 마음을 표현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고, 그 표현이 또 하나의 특징을 이룬다 할 것이다.
이러한 '水路夫人'의 설화적 배경과 그로부터 연유된 시적 의미를 오늘의 『震檀詩』동인들은 과연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조명시키고 있는가. 이의 문제는 더욱 우리에게 흥미를 자아낸다. 의미의 재음미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어 洪海理의 시「水路여 水路여」에 이르면 그녀의 성행위는 절정화 되면서 매저키니즘적 광란을 형상화시킨다. '창녀중의 창녀, 천사 창녀'인 그녀는 하늘 끝까지, 바다속까지, 땅 끝까지 온몸에 불이 달아 뭇 사내를 본능적 수컷으로 만들면서 '누구도 못다스리는 / 이 가슴의 바람'은 쾌락본능으로 몸부림친다. 그 음란증의 도착본능을 갈구하며 호소한다.
유독 색정이 강한 '서울水路'는 종로 '뒷골목 / 강남 새거리 / 어둡고 깊은 이 거리마다'에서 '눈멀고 귀먹은 사내들', 바보 사내들을 육욕의 '미로학습'으로 끌어넣되. '살았다 죽었다, 죽었다. 살았다'하는 휘황찬란한 섹스의 환각 속에서 정신 못차리게, 쪽을 못 쓰게 죽여 놓는다. 아이러니 기법으로서 그런 사내들의 자성을 촉구시킨다. 그런측면에서 洪海里의 수로부인은 '천사 창녀'이되,음란적 쾌락으로서 사내를 자각시킨다. 이에 鄭義泓의 수로가 매저키즘적 저항에의 섹스라면, 洪海里의 수로는 매저키즘적 쾌락본능에의 섹스인 셈이다. 그로부터의 현실 자각에의 섹스라는 점에선 같은 공통분모를 이룬다.

하늘 / 구름 피는 / 향기 / 바닷속에서 / 오색영롱한 / 둥둥 북소리 / 말없는 그대 / 몸으로 / 몸으로만 / 말하니 / 창백한 이마들이 / 모여모여 / 그대 안에 / 안가슴에 / 도사리어 / 천지간 / 온갖 기운 / 불길로 물길로 / 넘실넘실 넘치누나.

바로 이런 쾌락 극치의 세계가 '사랑 하나'로 이루어지는 이상계요, 그것이 그녀의 이념이라면 이는 곳 우리가 바라는,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는 현실이 아닌가. 여기서 수로는 음란적 색정으로의 현실을 부정하고, 그 역설로서 긍정에의 현실을 추구한다. 그것을 洪海里는 은유적 戱畵性에의 미학으로 형상화 시킨다.



이상에서 우리는 수로부인이 갖는 설화적 의미의 현대적 해석을『震檀詩』동인들의 시적 작업(시)으로써 이해하게 되었다. 이른바 수로부인의 현대적 조명으로의 의미 파악이다. 이 작업은 전통의 재평가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더해 준다. 설화는 미족의 생활 감정과 풍습을 노골적으로 암시하며 미래의 지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 그 특징을 갖는다. 이 점에서 수로부인 또한 예외일 수가 없다. 옛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오늘에 살아 작용하는 힘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힘이 내링릐 새로운 가능성을 예측하는 힘일 때 고전의 재평가와 재해석은 나를 새롭게 자각시키는 첩경이 아닌가.
지금까지 살핀 바 수로부인의 현대적 해석에는 크게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부각된 것으로 집약되어진다. 즉 인간적(여성적) 속성으로서의 수로부인과 악마적 속성으로서의 수로부인이 바로 그것이다. 기실 수로는 이 양면성을 동시에 갖기도 한다. 사람에게는 진정한 자아상과 그것이 무의식 속에 은폐된 그림자 현상으로서의 악마상, 이 두 얼굴이 있다. 이 양자는 서로 모순 대립되면서 인간을 형성시켜 가기도 한다.
수로가 인간적인 속성을 드러낼 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자각시켜 주나, 반대로 악마적 그림자의 속성에 치우칠 때 그것은 나를 파괴로 이끈다. 그 악마적 그림자는 파괴에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림자는 나의 악마적 환경와 상황으로부터 소생된다.
옛날이 수로의 인간적 속성을 드러내는 진정한 사랑의 시대로 대변된다면, 현대는 악마적 속성으로 대변되고, 악마적 수로는 현대의 도시문명 속에서 색정의 난무로 하여 질서와 파괴를 특징으로 한다. 현대판 수로부인은 바로 그 주인공이 아닌가. 그녀의 상징성을 통해서 현대의 타락성을 보여준다. 도시의 야음 속에서, 아닌 백주의 색정광란은 바로 현대판 수로부인의 광기에 찬 음란 색정의 도착이 아닌가. 시대의 불의와 부정은 그로부터의 타락이 아닌가.
이제 음란색정으로 방황하는 동서양의 정신세계는 수로부인의 진정한 인간적 사랑을 터득할 일이다. 순수 애정의 승화로부터 인간성 옹호에의 항해를 시작할 일이다. 인간 구제는 바로 그 항해로부터의 구제가 아닌가. 『震檀詩』동인들이 펼친 시작업의 또 하나의 의의는 여기에서도 찾아 진다 할 것이다.
(『現代詩와 傳統意識』문학예술. 1991)



 

<테마詩>

 

水路여 水路여

 

洪 海 里

 

 

하나. 자화상 또는 타화상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까지 오르고

바다 깊은 줄 모르고
바닷속까지

뭍 너른 줄 모르고
따끝까지
온몸에 불이 달아
싸돌던 여인

젊은이
늙은이

낮은 사내
높은 사내

제 서방
남의 서방

사내란 사내는 모두
수컷으로 만든

창녀중의 창녀
천사창녀여!


 둘. 독백 또는 비원

나를 꺾어다오
나를 꺾어다오

이 몸뚱어리에 피는
불꽃을 꺾어다오

저 낭떠러지의 철쭉보다도
가마 속의 쇳물보다도

더 붉고
뜨거운

그래서 누구도 못 다스리는
이 가슴의 바람을

미칠 것같은 이 어지럼증
비틀대는 허기를

꺾어다오
꺾어다오
  어다오
    다오
      오
       !



 셋. 서울수로


수로여
서울수로여
하늘까지 뻗쳤던
바닷속까지 미쳤던
그대의 바람 진분홍 바람
종로 뒷골목
강남 새 거리
어둡고 깊은 이 거리마다
번쩍이는 그대의 아미
향내나는 몸뚱어리
눈 멀고 귀 먹은 사내들
바보 바보 또 바보들
살몽둥이 나무몽둥이
쇠몽둥이 들고
정신 못 차리네
쪽을 못 쓰네
죽네 죽네
죽을 뿐이네.



 넷. 사랑 또는 절망


독주로 취하는 이 봄날
아지랑이 속으로
자꾸 피어나는 진달래 철쭉꽃
꽃마다 귀신이 붙어
우리 피의 불길을 틔우느니
온 하늘자락 다 사르고
바닷속까지 마르게 하니
이 마음 몸뚱어리
어이 비치지 않으랴
타지 않으랴
사람이 하는 일
뉘 막을 수 있으랴
하늘 둥둥 훨훨 날 수 밖에야.



다섯. 미로학습



사랑해요사랑해요죽은메아리뿐이예요감각의천사같은낮도깨비들의

탈탈탈들이보여요안보여요죽었다살았다살았다죽었다하는춤사위가

끝없이흐느적이고있어요비맞은가을꽃의막막함이이럴까요죽은시간

을넘어굴러가는빈깡통들도소리조차나지않아요펄럭이는마술사의짧

은속치마에이는바람이골목마다휩쓸어도길이안보여요당신이안보여

요어둠속에숨진부끄러움의잔해만이쓰레기처럼뒹굴고있어요사랑해

요어둠을요어둠은꽃인가요천국인가요사랑은폭력인가요혁명인가요

휘청거리는도시의방황하는거리에서서아무리외쳐보아도메아리뿐이

예요안개가루가한치앞까지가려버리고아무것도아무도보이지않아요

하늘도땅도바다도산도진달래도절벽도안보여요휘황찬란한불빛이골

목마다쏟아지고있어도어둠은여전히어둠일뿐이예요봄이올까요그러

면새가울까요안개속에서어둠속에서허수아비들이새를안고있어요깨

지도않은알이예요아니예요모르겠어요아무것도모르겠어요아무것도

안보여요안보여요.



  여섯. 불길 물길

그대 올랐던 
하늘
구름 피는
향기

바닷속에는
오색영롱한
북소리
둥둥 북소리

말없는 그대
몸으로
몸으로만
말하니

창백한 이마들이
모여 모여
그대 안에
안가슴에 도사리어

천지간
온갖 기운
불길로 물길로
넘실넘실 넘치누나.



  일곱. 포기 연습


사랑 하나면 
세상도 버리기 위하여

젖지 않은 옆구리
허전함과 외로움을 위하여

모래밭에 맨발로
학춤을 추기 위하여

영원의 눈짓으로
금빛 파도를 잠재우기 위하여

천번 만번
죽음과 입맞추기 위하여

세상이 천이라도
사랑을 버리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