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평론> 전통의 거리와 창조의식 : 장승 / 채수영

洪 海 里 2006. 11. 6. 11:32

傳統의 距離와 創造意識
ㅡ장승 / 홍해리의 시

蔡洙永(詩人 · 문학평론가)

한국 현대시는 1919년『創造』를 위시하여 『폐허』와 『장미촌』으로부터 시작해서 작금에는 여러 형태의 同人誌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表情들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문학 인구의 다변화 추세에 맞추어 전국적인 현상으로 가히 문학의 평준화 현상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은 무크지의 형태이거나 쎄나클의 형태이거나를 막론하고 바람직한 현상일 뿐 아니라 문학의 수평화 현상을 암시하는 사회학적 현상과도 맞아떨어진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권위중심의 수직사회에서, 특정 사람들의 문학적 享受에서 누구나 쓰고 감상할 수 있다는 수평적 양상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이다.
문학도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고 또 변화 앞에 예언과 정리의 二重性 속에 個性을 가져야 한다면, 詩가 가진 특성은 문학으로서의 가장 克明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의 징검다리에서 고뇌하는 오늘의 詩人은 끝없는 방랑에의 길이 있어야 한다. 詩人은 그가 살고 있는 민족의 삶을 알아야 하고 여기에서 詩人 自身의 個性은 스스로의 意味가 역사 속에 새겨질 수 있는 역할도 나타난다. 이 점에서 시인은 역사적 운명으로 存在하고 미래의 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韓國同人誌史上 숱한 대열이 있었지만 유독 테마詩의 형태로 한국적인 소재를 찾아 詩的 조명을 집중해 온『震檀詩』의 평가는 詩作의 경중과 성공 여부를 따지기 전에 문학적 사건임이 明白하다. 우리 자신의 얼굴과 정신이 무엇인가를 비추어 볼 때 아직까지 그런 시도를 감행해 본 그룹이 없었다는 千廬一失의 문제를 맨 먼저 알아차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詩作 테마의 대상에 대한 확실한 방향의 결정이 없이 주로 작품 속에 나타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느낌이다. 현실에 직접성보다는 문학 속에 주인공이거나의 간접적 인상을 재생하는 서동, 동동, 배비장, 정읍사, 수로부인, 꽃상여 등이 문학작품 속의 인식과 익숙한 대상이었다. 민족의 生活과 밀접한 도깨비, 서낭당, 말뚝이, 장승 등을 비교할 때 직접성과 간접성의 숫자는 앞으로 테마의 향방을 짐작하게 한다. 작품 속에 인상을 테마로 했을 경우 인식 확인의 詩化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면, 직접성의 풍습을 선택하여 詩化한다는 것은 詩人의 明白한 個性化의 기회와 맞닿을 수 있으며 시인과 독자와의 距離가 단축될 수 있다.
왜『震檀詩』는 전통에 관심을 집중하는가? 이런 물음 앞에 해답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 해답은 테마에 있을 뿐이다. 물론 전통이란 말의 뉘앙스에는 시간의 누적된 개념이 들어 있다. 그것은 오늘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느냐 보다는 귀감이 될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느냐의 방법론까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통은 오늘을 더욱 빛날 수 있게 하는 시간개념이지 오늘보다 앞선 의미를 가져서는 안 된다. 생활의 모습들이 시간 속에 누적되어 개념으로 구상화되었을 때 전통의 색깔은 확실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것은 보편과 합리성 속에 오늘과 내일에 활기와 윤기를 주는 데 있는 意味域을 갖기 때문에 詩人이 다루는 전통의 요인은 궁극적으로 自己(우리)확인이고, 自己(우리)를 유기적 存在로 확인하는 방편일 뿐이다. 이 점이『震檀詩』同人이 전통을 천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자연환경에서 나타난 풍토적 영향과 시간성 속에 나타난 역사적 조건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은 결국 집단적 사회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낄 때 사회학적 조건의 민속을 잉태하게 된다. 인간이 사회적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자각할 때 타당성과 명분과 공감이 있기 때문에 민속의 생명력은 지속적이 된다.
우리 先人들은 답답한 일, 액운과 질병이 있을 때는 서낭당, 칠성당, 산신당을 찾아 마음을 위로했었다. 예의 장승도 그런 사회적 환경 속에 형성된 민속이다. 벽사, 裨補의 액막이의 기능과 이정표의 성질을 가진 寺院의 장승, 마을입구의 장승, 길가 노방의 장승들은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눈망울에 우뚝 솟은 주먹코, 더구나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에 우수가 깃들어 있기도 하고 익살스러운 장난기가 깃들어 있는 것도 같고, 무섭게도 보이는 모습은 단순한 나무토막이나 돌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살아서 느낌을 전달해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때, 오랜 옛날의 신비한 비밀을 말하는 것도 같고 또 오늘의 인간에게 꾸짖는 모습 같은 친근과 위엄, 그리고 자애와 사랑의 길로 통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진단시 · 13』은 이런 장승을 주제詩로 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우리
이제 다 죽은 귀신
한 개의 삭아내린 나뭇토막
저승꽃 만발한 돌기둥일 뿐
아무것도 아니네.
ㅡ홍해리 「장승」중에서

홍해리의 장승엔 허무가 채색되어 있고, 텅 비어 버린 공허의 슬픔이 남아 있다. 그것은 시대 앞에 무기력해진 공허요, 체념으로서 복합된 역사의 흔적에서 느끼는 아픔의 고백이다. 역사란 말은 슬픔과 기쁜이 織造된 인간의 일이라면 그 속엔 공허와 체념의 숨결이 기쁨보다 더욱 많은 비중일 것이다. 비바람에 씻기며, 시간과 마주선 끈질긴 생명력으로 서 있는 장승은 이미 종교적인 보호기능을 벗어났다. 그것은 우리의 협동전통사상이 서구의 합리주의의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앞세운 서양귀신에 의해 이미 마을로부터 추방당한 꼴이기 때문에 '죽은 귀신'의 유행을 감수해야 한다.
'제 조상 섬기기보다 / 딴 귀신에 홀려 있고'라는 홍해리는 민족주의자의 생각을 詩의 중심에 놓으려 한다. 다시 말해서 장승이라는 대상에서 민족의 현실을 오버랩하는 기법으로 일종의 상황을 보여 주면서 오늘에 처한 귀신들이 열거된다. 돈귀신 권력귀신 땅귀신 권력남용귀신 등 무려 50여 귀신들이 등장한다. 이런 귀신들이 들끓는 세상은 이미 삭막하고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시인의 생각이다. 길을 알려 주는 친절의 미소도, 마을을 지키는 수호의 임무도 이미 낡은 유물이 되었다는 슬픔이 홍해리의 생각이다.
그러나 詩人은 절망의 노래를 구슬피 부르는 자가 아니라는 데 남다르다. 슬픔과 외로움 속에 미래의 일을 예지로 발견해 내는 촉감 때문에 시인은 예언적이다. 허무적인 상황에서 길을 발견해 주는 패턴의 홍해리의 詩가 비극에서 벗어나는 得意를 이룬다. 그것은 허망을 건너 뛰는 막연한 암시가 아니라 설득될 수 있는 함축성 때문에 안도감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표면의 허무와 체념을 포장하고 있는 속알맹이는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장승에서 우리 조상의 미소를 발견해 내기 때문에 '그래도 가슴 따사로이 / 땅끝까지 길을 열고 / 하늘까지 마음주고 / 우리 사랑일지니'처럼 무한의 신뢰와 안도감을 남긴다. 여기서 무료히 서 있는 장승으로부터 살아나는 아니마를 발견하게 된다. 허무와 체념 속에 사랑의 고갱이를 간직한 홍해리의 목청은 역사를 바라 우리의 사랑속에 민족중심을 담으려는 절박한 마음에 적극적 시인의 표정을 감지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로 볼 때 장승을 바라보는 詩人들의 표정은 저마다의 독특한 안목과 個性, 그리고 韓國詩 同人詩 史上 특이한 位相에 또 하나의 意味를 첨가했다. 물론 현대의 장승은 단순한 장식물로 퇴락했고 그 본래적인 의미의 옷이 벗겨진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 민족으니 심상 속에 살아 있음을 『진단시』동인들은 확인하고 있다. 그 표정은 대체로 허무적이다. 이는 장승과 시인의 관계가 육화되지 못한ㅡ距離가 멀리 있다는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역사의 기억에 있는 장승을 현대의 현장으로 끌고 나와 현대인을 깨우치려는 도구로 바라보려는 모습이다. 詩人은 죽어 있는 사물을 살아나게 하는 영감의 노래를 부를 때 황당하게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 노래는 인간영혼을 불러내는 가장 깊은 다이모니온(Daimonion)의 노래를 뜻한다. 詩가 고귀한 것도 여기에 있다. 『震檀詩』가 다룬 장승은 그런 해답을 주고 있다.
(『現代詩의 傳統意識』문학예술. 1991)

 

 

<테마詩> 장승

 

洪 海 里


1. 장승의 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우리
이제 다 죽은 귀신
한 개의 삭아내린 나뭇토막
저승꽃 만발한 돌기둥일 뿐
아무것도 아니네.

이른 봄날
아슴아슴 눈부시게 타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그리움도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저녁놀 같은
애달픔이나 하염없음도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고 손가락 건 약속도
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사는 세상,

네 마음도 멀고
내 마음도 먼
지금
세상 사람들은 
제 조상 섬기기보다
딴 귀신에 홀려 있고,

---돈귀신 술귀신 권력귀신 땅귀신 담배귀신 정치귀신 중상모략귀신 자해공갈귀신 공포학정귀신 추행방관귀신 테러귀신 훈장탐욕귀신 독재탄압귀신 뇌물아부귀신 흑색선전귀신 증권투기귀신 고스톱귀신 불법탈세귀신 부동산전매귀신 강도살인귀신 인신매매귀신 폭력폭행귀신 허위위증귀신 도피잠적귀신 사기횡령귀신 지랄탄난사귀신 위조조작귀신 각목파이프귀신 유괴살해귀신 가혹고문귀신 음란퇴폐귀신 뺑소니귀신 바가지세일귀신 마약중독귀신 불량품귀신 딴따라귀신 매연오물귀신 가짜귀신 매춘재벌귀신 스포츠귀신 한탕주의귀신 변칙비리귀신 음모귀신 부당노동행위귀신 입시지옥귀신 가정파괴귀신 비방은폐귀신 착취수탈귀신 집단해고귀신 룸살롱귀신 낙하산감투귀신 호스트바귀신 권력남용귀신 로또귀신 파파라치귀신 입시부정행위귀신 불량만두귀신 이 귀신 저 귀신 온갖 잡귀신들이 춤을 추는 마당이라---

우리의 마을 어귀
노리개처럼 서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머니의 미소
그래도 가슴 따사로이
따끝까지 길을 열고
하늘까지 마음 주는
우리는 사랑일지니,

세상사람들아
밝은 눈엔 광명이요
사랑에는애정이요
슬픔에는 비애
기쁘게 보면 환희요
무섭게 보면 공포지만
익살엔 익살일지니,

놀부의 모습 옆
놀부 마누라의 얼굴
흥부의 탈 옆에
흥부 각시
또는 
말뚝이나 초랭이가 우리 아닌가.

등잔눈매처럼 부리부리하나
온달의 눈동자처럼 어수룩한
웃을 듯 울 듯
온 시방세계를 다 담은
나의 왕방울눈
세상 천지를 재어 지키고 밝히며, 

우람하게 솟은 주먹코로
동네 부녀자들의 바람기를 누르고
귀밑까지 찢어진 입술
아랫입술 밖으로 드러난 송곳니로
온갖 악귀를 잡아
마을의 평안
국태민안 이룰지라
국태민안 이룰지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우리
진또배기,
솟대 위에 꿈을 싣고
죽어도 나란히 서서 지키리라
천년을 묵묵히 서서 지키리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2. 장승제

분향 백배 고축 발원드리오니 천상천하 고금동서의 명시대장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은 감응 강신하소서. 
금년은 기사년이옵고, 달로는 정월이요, 날로는 대보름, 일진은 신묘일진 맞이하여 
우리 진단시 동인 각인각성 김규화 문효치 박진환 신규호 유승우 임 보 정의홍 홍해리 
집집마다 성심을 다하여 주과포를 올리오니 반가이 응감, 즐거이 흠향하소서.
입은 덕도 많거니와 금년에 새 덕 빌어댈 제 
우리 동인 남녀 청장 액월 액일 액시, 근심 걱정 우환 질고 운권천청(雲捲天晴) 걷어다가 
원강천리(遠江千里)에 소멸시키시고 소원 성취시키실 제, 
글을 쓰면 명작 소망, 학교 가면 공부 소망, 산에 올라 산신 소망, 들에 내려 농사 소망, 
우순풍조시화연풍(雨順風調時和年豊)시키시고, 
길을 가면 횡재 소망, 시장 가면 장사 소망, 관청 가면 관록 소망, 물가에 가면 용궁 소망, 
바다에 가면 풍어 소망, 부부지간 자손 소망, 자손이 창성 영화 소망, 만사대통시키실 제, 
천황대제봉수명장(天皇大帝封壽命長) 장수장명 발원이요 지왕대제 정복수 부귀공명 축원이라. 
발원발축 소망대로 우리 동인 집집마다 낮이면 불 맑히고 밤이면 불 밝혀서 
수화청명(水火淸明) 점지될 제 명당 뜰에 옥이 돋고 옥당 뜰에 명이 돋아 
달뜬 광명 해뜬 세상에서 쓰고 짓는 글줄마다 명시 명작 이루도록 점지 점지하소서.

*제2부는 여러 곳에서 지내는 장승제의 제문을 종합하여 임의로 개작한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