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와 蘭

<蘭칼럼 5> 蘭 찾아 無等을 타며

洪 海 里 2006. 11. 28. 19:02
 

蘭 찾아 無等을 타며


洪 海 里



산이 있어 산에 간다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산은 산이나

산이 아니다.

산이야 아래 위로 바람불지만

여기는 평등하게 바람부는 곳


한 해를 거둬들인 들판을 질러

찬 바람 전신으로 맞으면서도

즐거워라 즐거워 외치는 것은

바람이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불기 때문


음산한 계곡을 지나

투명한 날개를 반짝이며 오는 바람

누르고 찍어누르고

처올리는 아픔이 없어서이지

우리가 바람속에 서 있음은


눈이 아래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옆으로 날리던 그날

지난 번 산행은 운이 없었다.

바람소리도 무서웠지만

꽁꽁 얼어붙은 호수의 함정도


여하튼 왼쪽무릎을 다친 지난 겨울

산기슭 골짜기마다

아카시아 찔레덩굴 청미래덩쿨

칡넝쿨 댕댕이의 올가미와 바늘

이마부터 발등까지 긁히고 찔리우고


사철나무 소나무 노간주나무

초록빛 겨울은 산에 사는 난초뿐

꿩밥 아가다리 산콩나물이라 불리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

그 뜻만으로 서는 너를 찾아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슬픔

슬픔은 순수

순수는 눈물

눈물은 보석

보석은 가짜

가짜는 진짜

진짜는 없어!


완전하면 아름다움이 못 돼

흙냄새 바람소리 맑은 햇빛 속

세상이 온통 사랑같지만

어딘가 숨어 있는 어둠의 냄새

날름대며 꿈틀대는 허무의 혓바닥


죽은 시간의 시체더미를 넘어

해 뜨고 닭 우는 동네를 찾아

눈 속으로 바람 속으로

우리는 간다 무등의 골짜기

숨은 희망의 뿌리를 찾아.


  이 시의 제목이「蘭 찾아 無等을 타며」라고 되어 있으나 여기서 추구하는 것은 꼭 난만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란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여기서의 바람 또한 자연의 바람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활엽수의 잎이 다 떨어지고 일년생 풀들이 시들어 지표를 덮고 있는 풀은 춘란뿐인 계절이 되면 난을 하는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자생란에 관심하는 이들은 병이 나기 시작한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오후나 야간열차의 차표를 예매하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어린이처럼 토요일을 꼽게 된다. 보물섬을 찾아서,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희망의 나라를 찾아서 떠나듯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고 보물을 찾는 꿈을 꾸게 된다.

  자생란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지가 불과 십년이 채 안 되는 것이 우리의 난 역사이긴 하지만 요즘의 열기는 자못 뜨거운 것이 사실이다. 자생지의 인위적인 환경의 변화로 고사하고 말 운명에 처한 귀한 난을 찾아 잘 배양하고 연구 개발하여 널리 보급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값지고 자랑스런 일일 것인가. 다만 무지와 과욕이 문제다. 또한 배금주의에 깊이 빠져버린 이들의 사상과 자기 것을 귀한 줄 모르는 사람들의 얕은 정신이 문제이다.

  난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신적인 면에서 봐야 옳은 일일 듯하다. 오랫동안 꾸준히 기다리는 슬기와 인내ㅡ이것이 바로 난을 하는 사람들이면 천착해 봐야 할 점이다. 여기에 적당한 게으름ㅡ다시 말해서 여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ㅡ을 터득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회적인 삶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주위를 보면 한심한 일이 너무나 많아 때로는 난을 기른다는 얘기를 하기가 부끄러울 때가 잦다. 누구에게 좋은 난이 있다하면 염치 불구하고 잎이 떨어진 고구경이라도 한 개 떼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나 산에 채란을 가서도 다른 사람이 희귀한 난을 찾으면 우선 쪼개고 보는 분(?)들! 그러한 행위가 서로에게 손해요 잘못하면 네 것 내 것 다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는 것은 왜일까.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난을 찾고 바르게 기르며 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애란인들이 주변에 많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어떤 애란인들의 모임에서는 열 촉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분주를 하지 않는 것을 묵계로 하고 있어 다른 모임의 본이 되고 있기도 하다.

  희귀한 난을 남보다 한 촉 더 갖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창립 총회를 엊그제 하고 오늘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난을 하는 사람은 이러이러 해야 한다 하면서 행동은 왜 그렇지 못한가?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올바른 난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난은 난일 뿐이다.

  그래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슬픔 / 슬픔은 순수 / 순수는 눈물 / 눈물은 보석 / 보석은 가짜 / 가짜는 진짜 / 진짜는 없어!’하고 읊은 것인가.                         <계속>


-『梅蘭山芳』(1986.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