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와 蘭

<蘭칼럼 7> 진정한 蘭人은 누구인가

洪 海 里 2006. 11. 28. 21:50

 


  진정한 蘭人은 누구인가


洪 海 里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한란을 훔쳐다 서울에 가지고 와서 팔아먹으려던 범인이 경찰에 잡힌 일이 있었다. 난이 대중화되면서 경제성을 띄게 되자 꽃도둑이 생기게 된 것이다. 다른 귀금속이나 귀중품이 아닌 아름다운 꽃을 탐내니 그 마음씨도 꽃처럼 아름답지 않을까 모르겠다. 난도 돈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동기를 불어 넣어 준 것은 누구일까. 심심치 않게 난을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우리를 서글프게 하더니 금년 봄에도 이런 싸가지없는 사건은 어김없이 또 터지고 말았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나 애를 업은 할머니도 난을 찾아 굽은 허리를 더욱 구부러지게 헤매고 있다는 남도지방의 난 자생지에서의 일이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춘란 변이종을 캐서 비싼 값을 받고 팔아먹고 나서 며칠 뒤에 다시 그집 온실을 방문했다 한다. 처음 난을 팔러 갔었던 것은 도둑질을 하기 위한 사전답사였단 말인가. 애지중지하며 길러오던 난을 송두리째 뽑아가버린 텅 빈 난실을 발견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그 허망감, 배신감, 막막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하루 아침에 받은 경악감과 충격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으리라.

  그러나 그보다 기분이 나쁘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얘기다. 난을 훔친 자가 그것을 좁은 지방에서는 처분하지 못하고 일부는 집에 모셔놓은 채(?) 서울로 올라와  어느 난상에 팔아버렸다. 그 후 난을 도난당한 장본인이 상경하여 자기 난을 확인하고 사진대조를 하여 장물임이 판명되었다. 즉시 젊은이들은 수사망에 잡혀 구속되었다. 

물론 그 난상도 그 물건이 장물인지는 모르고 구입을 했겠지만 일단 장물임이 밝혀지면 즉시 물건을 돌려주고 적절한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 상식인의 도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들리는 바로는 그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넘겼다고 한다. 그 뻔뻔스럽고 털난 심장과 철면피적인 두 얼굴의 당당함이 우리의 심정을 긁는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일마저도 괴롭고 불쾌하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지 한심스럽다. 도둑이나 장물아비나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남이야 장물아비가 되든 똥물아비가 되든 상관할 바가 아니란 말인가. 어떻게 이러한 강심장들이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장물이면 어떠냐 싸면 그만이지 하며 사가는 인사들도 큰 문제다. 값만 싸면 장물이든 똥물이든 다 마시겠다는 심뽀인지 모르지만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방법이야 어떻든 돈벌고 벼슬하고 명예를 얻으면 그만이란 말인가. 그렇게 상식과 양심을 벗어나 끝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안 될 일이요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다. 돈없고 빽없고 힘없는 일반 백성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가느란 뒷줄 하나만 있어도 그것에 매달려 얼굴을 감추고 남에게 과시하려는 값싸고 냄새나는 교만과 허영과 허욕과 허풍은 추방해야 한다. 구실과 이유야 그럴 듯하게 주워섬길 수 있겠지만 허망한 과시욕과 사치의 병적 풍조에 젖은 졸부들의 못난 사고방식도 개조돼야만 한다.

 자신을 바로 보고 깊이 생각하여 자기를 기르고 이룩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인생의 값진 보람이 아닐런지. 모든 일에 경솔하고 조급해서 안달을 하며 지연과 학연과 혈연에 연연해서야 자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윤리란 윤리는 다 던져버리고 얼굴에 철판을 깔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사람마다 욕심은 크고 마음은 급해 불확실한 내일을 바로보지 못한 채 정법을 피하고 편법에 승하다보니 사람들이 속은 텅텅 비고 겉만 화려한 전시효과만을 노리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일시적인 눈가림과 얇고 빤한 술책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재산과 권력과 쾌락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재산과 권력과 쾌락도 시간이 지나면 끝장이 나게 된다. 우리는 파랑새를 찾고 무지개를 쫓는 그 과정을 아름답게 생각한다. 기다리는 것이다. 난을 기르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해서 난이 빨리 자라 꽃을 피워주지는 않는다. 기다리면서 자기가 할 바를 다할 때 꽃은 피어 향을 발한다. 적어도 난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는 여유 속에 진선미를 생활화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끝을 맺는다.

-『梅蘭山芳』(1986.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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