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 가을에는
- 향부자香附子
洪 海 里
사랑이여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한여름 피어오르던 짙은 젊음
이제 마른 풀잎으로 남아
시든 허상뿐
겉불을 질러
겉으로 무성한 허무의 껍질
다 태우고 나면
허망한 잿더미
바람에 풀풀 날리고
다 쓸려가고 나면
남을 것은 이 지상엔 없다
땅 속 깊이 묻혀
불로도 타지 않고,
죽지 않고 박혀 있는
사랑의 뿌리
다시 캐내어
불로 사루고 사루면
까맣게 남는 새까만 알갱이
그것도 사랑은 아니다
다시 씻고 부시고 닦으면
한 줌 금으로 남을까
다 타서 없어진
네 사랑이 향기로울까
사랑이여
이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 시집『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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