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스크랩] 『우리시』 2007. 3월호(제225호)

洪 海 里 2007. 3. 29. 04:04
 

[지난 호에 내가 읽은 시 한 편]


자연과 삶,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서 / 박정래

-이대의의 시「풀의 손」

<풀밭> 동인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그의 시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는 데, 어찌 생각하면 도시에 숨어 있는 자연의 울음, 민초와 같은 잡초들의 모습에 촉각을 기울이는 이대의 시인이 도시 귀퉁이에서 훔쳐온 나무, 꽃, 풀, 잡초 등의 시를 나는 좋아한다.

     풀에도 손이 있는 것을 몰랐다
     자주 지나치면서 무심하게 돌아서고
     하잘것없어 그냥 스쳐 지났던 길가의 풀
     그 풀이 손을 잡을 줄 몰랐다.
     눈 내리고, 얼어붙은 비탈길
     그곳에서 풀의 손을 보았다.
         (중   략)
     결국 비틀거릴 때 나를 잡아 준 것은
     저편 높은 곳의 큰 나무가 아니고
     가까이에 있는 힘없는 풀이었다.
     이제야 풀의 손을 잡을 줄 알았다.


                                -이대의 시인의 「풀의 손」부분


  아마도 어느 산동네 사는 소박한 시민일 것이다. 갑자기 눈이라도 내리고, 추위가 몰아 닥쳐 엉성하게 쓴 눈길이 얼어붙은 그런 날일 게다. 얼어붙은 비탈길을 온몸에 힘을 주며 귀가하는 저녁, 갑자기 미끄러져 엉덩방아라도 찢는데, 그 소시민을 잡아 준 것은 도회지의 잘 꾸며진 공원의 나무, 길가에 우뚝한 가로수, 먼 산을 뒤덮고 있는 선망하는 거목들이 아니라 바로 그 길에 볼품없이 질긴 마른 줄기를 내밀고 있던 풀이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서울 같은 대도시, 시멘트와 주거지로 덮인 산동네, 광화문 네거리나 대학로 같이 사람들로 가득찬 대로 등 어느 곳에나 잔인한 삶과 문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한쪽 켠에 자라고 살아가고 있는 생명이 있다. 자연이 있다. 우리가 평소 비웃고 스쳐 지나가는 또 다른 삶이 있다. 이대의 시인의 자연은 그런 소외된 생명이고 자연이면서, 그처럼 대도시와 삶의 언저리에서 밀려난 민초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어서 늘 생경하면서도 뭔가 찡한 자극을 준다.

  그의 시가 박노해나 박무산, 황지우 같은 노동시인처럼 노동자의 슬픔과 고통, 삶의 지난함과 이 시대의 불공평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도 마치 대도시에 숨어사는 자연들에 대한 노동시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월호에 발표한 매정한 검은 노동의 슬픔을 감추고 사는, 꽃을 피우고 싶은 「단풍나무」도 그렇고, 짐을 영원히 풀지 않을 것처럼 사막을 걷는 낙타의 표정으로 무심하게 큰 덩치로 오고 가는 서민들의 좁은 골목길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풀들의 모습도 그렇다. (2006년 12월호,「골목길엔 꽃이 피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가끔 그려 대는 나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거나 먼 도회지에서 도피해 은둔해 살고 있는 자연인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하다. 내 삶의 모습이 자연에서 잠깐 충전해 도회지로 나가 모두 방전하고 돌아오는 일회용 배터리처럼 사는 것 같아 미안하다. 이대의 시인의 시는 자연과 삶,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서 항상 자연의 희망과 승리를 기원하고, 지칠 줄 모르고 생존해 가고 있는 소외된 생명의 소식을 전해 주어 늘 반갑고 고맙다.


  * 다음은 이대의 시인에게 넘깁니다.

출처 : 우리시(URISI)
글쓴이 : 은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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