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스크랩] 제225회 우이시낭송회

洪 海 里 2007. 4. 2. 05:31

 

괘종시계 

-新井邑詞 ∙ 2



겨울 날 저물 무렵

종묘 근처 노점에서 산

괘종시계를 가방에 넣고

돌아오는 밤길은

정읍 저자에서

수탉 한 마리 짊어지고

돌아오는 발길처럼

달빛에 흠뻑 젖었다.

홰치는 수탉의 세찬 아침의

그 떨리는 목청 속을 떠가는 느낌이었다.

져재 너러신고요, 라고 누가 부르는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하늘 알파벳

기럭기럭 기러기 어디로 가나?
산 넘어 벌판 건너 북으로 가지

기역 시옷 지읒자 무슨 글자지?
날개마다 피 어린 희한한 글자

노을 강도 울고 가나 끊어진 다리
우리도 달리고 싶다 녹 슬은 기차

두룩 두룩 두루미* 어디로 가나
아무도 알 수 없는 하늘 가나다라

*두루미 : 십장생도에 나오는 '학'을 순우리말로 두루미라고 함.

겨울나무 2


눈보라 모질수록

알몸으로 항변하는,


부러질망정

휘지 않는,


한 점 부끄럼 없는

딸깍발이의 지조

울타리 


울타리는 

경계와 경계 사이에 설치된 장애물이다


초가집 울타리는 수수깡이 되기도 하고

과수원 울타리는 탱자나무인 수도 있다


돌이나 흙으로 쌓은 담도 있고

철사나 철망으로 막은 철조망도 있다


개나리, 쥐똥나무의 부드러운 나무울타리

불럭이나 시멘트로 높이 차단한 단단한 벽


울타리는 도둑이나 적들을 막는 방어진인데

섬을 가둔 바다를 물의 울타리라 부른 이도 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긴 울타리는 만리장성

그러나 신이 만든 보이지 않는 울타리도 있다


보라, 지상과 천국 사이에 설치된

저 완벽한 허공!

고슴도치 혹은 엔두구 이야기 

  

집 아이가

아프리카 원산이라는

고슴도치 한 마리를 애완용으로 샀다.

어쩌다 십자매처럼 우아한 새 정도는

길러 보았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뾰족한 침을 곧추세우는 이놈은

요새말로 아주 비호감이다.

그래도 정이 들자고

잭 니콜슨이 주연한 어느 영화,

주인공이 기금을 보내 후원하는

아프리카 소년의 이름 엔두구를 호칭으로

붙여 주었다.

이놈에게 저의 먼 조상 땅 무엇에라도

연결시켜 주고 싶었던 것.

그러나 밤송이 같은 등, 가만히 웅크리고 도사려 있는

긴장된 몸으로

바깥을 향한 경계가 안타깝고도 부담스러웠다.

사람만으로도 힘든 세상, 어쩌자고

너까지 이런단 말이냐.

물을 주어도 먹이를 넣어도 곁을 안 주던 이놈이

어느 날 손 냄새를 몇 번 맡더니

옷소매 속으로 기어 들어온다. 몇 번이고 그런다.

그래, 편안한 굴속이 그리웠던 것이다.

먹이보다도 제 어미의 품처럼 따뜻한

체온이 그리웠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잭 니콜슨이 아내를 잃고 난 뒤

저 먼 아프리카에서 온

까만 소년 엔두구가 그려 보낸 그림을 보고 운다.

아내의 관마저 싸구려로 했다가

딸에게 원망을 들은

 그 슈미트영감이 작은 사랑 때문에 운다.

소매 끝을 파고드는 엔두구.

단 하나 가진 하찮은 무기까지 부드럽게 접고

소매 속으로 기어 들어와 쉬는

작은 천사, 작은 엔두구.

호박


한 자리에 앉아 한평생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 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 치는 날갯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터리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오랜만에 나의 방에 들렸어


앞문이 잠겨 있어 창문 타고 들었어

어스름 깃든 저녁녘인데 자욱한

먼지가 달빛 같아 보였어


작은 방에 작은 이불 덮고 보니

창 밖에는 별들이 누워있었어

휑하게 패인 일찍이 행복한 눈의

순례자 그늘

언 하늘에 누워있었어


창을 잠그고

불을 끄고 어둔 밤 뒤채이고 있어

나의 창 두드리는 바람

이 차운 바람은 뭐야


함께 눕자고!

저들이 나의 빈방 파수꾼들이었나.

벌레의 집 

 

자작나무 숲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봄볕에 바싹 마른 산새소리

아무 때고 하늘이 내다보여 좋은


별을 빻아 

둥글게 벽을 바른


50년 째

보증금 없는

단독 전세방

아이 초등학교에서

                                 

학교 교정에 가본 지 오래

아이 초등학교에 서니

몸 숨길 곳 없는 허허벌판

숨바꼭질 같다

쓸데없이 커버린 마음 숨길 데 없고

휭 하니 손님이 되어버린 커다란 발자국 소리

어디서도

술래가 보이는 안타까움


모처럼 학교 교정에 서니

조잘대며 흐르는 실개천

조약돌 같은 아이들 맑게 보이고

훌쩍 산 능선 넘어선 낙엽송

여섯 그루

너 그 때 뭐 했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소리치는 

호랑이 같다


어느 노숙자

 

산이든 바다든 아니면 죽음이든

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허나 오늘은 그저 멍하니

때 묻은 마스크로 소통을 가리고

그저 멍하니 홈 밖에 서 있는 사람

부산

여수

목포행

차례차례로 지나가는데도

차례가 오지 않는 노숙자

그저 멍하니

담배꽁초로 멍청한 영토를 비비고서도

그는 그대로 그 자리에 멍하니

무엇이 그에게서 그를 빼앗아 갔나

연말연시도 없이 그저 멍하니

 

괴상한 플래카드

 

D여대 후문 옆 대문짝만 한

글씨가 적힌 플래카드 눈에 띈다.

「열정이 있다면 대한민국에 도전하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열정이 있다면 대한민국에 도전하라!」
그 위에 작은 글씨,

― 열린 우리당 사무직 당직자 채용 공고 ―

<열린 우리당> 다섯 자가 아무래도

납득이 안 된다. 석연치 않다.

<조선 노동당>이라면 몰라도.


<열린 우리당>은 현 노무현 정권을 낳은

대한민국의 여당 아닌가?

대한민국이 어째서 도전의 대상이 되는가?

도전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타도 말살해서 적색 통일을 하자는 것인가?


D여대 후문 옆에

「열정이 있다면 대한민국에 도전하라!」

이런 플래카드가 벌써 석 달째 당당히 걸려 있다.

언론자유가 이토록 철저히 보장되고 있는 걸 보면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이로다.


그런데 왜 하필 D여대 후문인가?

정문 앞에다 내걸지 않고

벼룩의 간만한

양심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다.

기다림 

 

모든 기억이 지워질 만큼

어두워져버린 눈동자에

아직 뜨거운

눈물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그대는 아득히 멀어 있고

나는 오래 침묵하며

구름 속에 숨어 있는

달을 기다린다


가슴 깊숙이에

진주처럼 단단해지는

뜨거운 눈물은

내 사랑을 지키며 가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기억하는 것

 

겨우내 

감춰두었던 가시내 하얀 종아리에

맵싸하게 휘감기는 봄바람을

휘익 

철 이른 얇은 옷감 휘감으며

바람을 넣는 개구쟁이 손길을


담벼락에 막힌 햇빛에서 번져오는

수많은 꽃잎의 색깔

이파리의 실그물


기억한다 

그리고 

기대한다 

봄을 위해 한 일이 없어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주는 봄을

숨막히게 다가왔다

서둘러 가버리는 봄을

 

 

 

 

 

출처 : 꽃섬
글쓴이 : 은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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