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기사> 한여름밤에 피우던 쑥 모깃불 향내가 그립다

洪 海 里 2007. 7. 13. 10:38

<시 더듬더듬 읽기>

 

여름철 불청객 모기 다루는 2 가지 방법과 시

 

한여름밤에 피우던 쑥 모깃불 향내가 그립다

 

안병기(smreoquf2) 기자

 

요즘 날이 더워지면서 여름철의 불청객인 모기들이 점점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것들이 피차 존재의 개별성을 지켜주면 좋으련만 자꾸만 사람과 모기의 혼혈을 꿈꾼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꾸만 달려들어 피를 빨아 젖히는 바람에 며칠 전부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어 버렸다.

자, 이 흡혈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손자병법>에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것다. 문제는 내가 누구인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공공의 적'인 모기의 생태에 대해선 숫제 까막눈이라는 점이다.

하여 내 구닥다리 컴퓨터에 부리나케 최적의 검색 솔루션을 구축한 다음 32바이트(bite)의 속도로 검색 모드를 취한 후 보무도 당당하게 백과사전 속으로 진입해서 파리목 모기과에 속하는 모기라는 곤충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모기는 지구상에 약 2500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몇 종 정도의 모기가 살까.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9속 47종이 기록되어 있다. 백과사전에서 이 사실을 읽는 순간 생각보다 모기 종류가 그리 많지 않은 위생적인 나라에 살고 있다는 기쁨이 64배속으로 가슴을 휘돌아 가는 걸 느낀다.

그런데 도대체 이 작은 곤충에 대한 설명이 뭐가 그렇게 복잡한가 말이다. 모기가 비록 다시 멸치처럼 머리와 꼬리 떼어내고 나서 창자 속에 든 똥까지 뺀 다음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거두절미'란 사자성어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암모기의 모성애에서 비롯한 흡혈의 괴로움

모기는 다른 곤충과 마찬가지로 머리·가슴·배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머리에는 대롱 모양으로 생긴 1개의 아랫입술과 한 쌍의 아랫입술수염이 있다. 몸 전체가 비늘로 덮여 있으며 변형된 뒷날개 한 쌍은 곤봉 모양의 평균곤으로 되어 있어 평형감각을 바로잡아 주는가 보다.

모기는 결코 편식을 하거나 식이요법을 하지 않는다. 사람을 비롯하여 동물의 피라면 소, 돼지, 닭, 오리 등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마구 피를 빨아 먹는다. 통계에 따르면 사람한테서 흡입하는 피는 전체의 5% 정도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양이라고 한다. '공공의 적'으로 삼기엔 조금 꺼림칙한 수치라 아니 할 수 없다.

사람보다 소나 돼지가 더 인기 있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모기에겐 한 쌍의 더듬이와 한 쌍의 겹눈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폼으로 달고 있을 뿐이다. '피 사냥'에 나설 때는 후각을 사용하는데 소나 돼지가 사람보다 더러워서 모기의 목표에 훨씬 잘 찍히는 것이다. 소나 돼지보다 인기가 없다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끔찍했을 것인가.

모기에 물릴 확률은 호흡량이 많아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임산부나 땀을 많이 흘리고 잘 씻지 않는 사람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다고 하니 참고삼기 바란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영미(배두나 분)는 유괴에도 좋은 유괴와 나쁜 유괴가 있다고 설레발을 친다. 굳이 나누자면 모기도 피를 빨아먹는 '나쁜 모기(암모기)'와 피를 빨아 먹지 않고 식물 즙, 과일즙이나 이슬 따위를 마시며 고품격의 삶을 살아가는 '착한 모기'(숫모기)로 나눌 수 있다.

암모기도 도 평소에는 숫모기와 마찬가지로 식물, 과일즙이나 이슬을 먹으며 우아하게 산다. 그러나 뱃속에 알을 품고 있을 때는 표변하고 만다. 뱃속의 알이 자라는 데는 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아함이 밥 먹여 주냐"가 아니라 "우아함이 새끼들 먹여 살리느냐"이다.

암모기가 피를 빨아먹는 이유는 뱃속의 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는 고런 이야기다. 인간세상에서만이 아니라 모기들 사이에서도 '아줌마의 힘'이 세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암모기는 6개월을 사는데 사는 동안 50∼60차례에 걸쳐 피 사냥에 나선다고 한다.

새끼를 위해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우아함'을 포기하는 암모기의 모성애가 갸륵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모기, 너 참 모성애가 거룩하구나! 내가 네게 밥 먹여 줄게" 이럴 수는 없는 입장 아닌가.

여름 나기 혹은 모깃불에 대한 추억

자, 이제부터 놀부는 제비 몰러 나가고 난 모기 잡으러 나간다. 나 어렸을 적엔 모기를 잡는 살충제가 없었다. 대신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일찌감치 마당 한 가운데다 모깃불을 피웠다. 지금도 맞는 이야긴지 틀린 이야긴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모깃불을 피우면 모기가 그 연기를 따라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주로 보리를 타작한 후 헛간에 쌓아둔 보릿대를 태웠다. 방안에다 모깃불을 피울 때는 화로 같은데다 쑥을 피우기도 했다. 더러는 길가에서 주워온 소똥을 모아 피우는 경우도 있었다. 암모기의 모성애가 이기느냐 아니면 인간의 단호한 의지가 이기느냐 건곤일척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이시>주간을 맡고 있기도 한 원로 시인인 홍해리 시인의 '모깃불을 피우며'라는 시는 이런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길가 잘 자란 다북쑥을 잘라 모았다
보릿집 불을 피워 쑥으로 덮으면
하늘 가득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앵앵대며 무차별 폭격을 하던
저 무정한 모기 떼가 눈물을 찍는
한여름밤 모깃불 향기로워라
오늘은 허위허위 고개 넘고 물 건너
강원도 홍천 고을 산마을에 와서
매캐한 쑥 타는 냄새에 다시 어려
옥수숫대 넘겨다보는 고향을 가네


홍해리 시인은 충북 청원 출신이다. 1942년 8월 18일생이니 우리 나이로 치면 66세 되시는 원로 시인이시다. 1969년 첫 시집 <투망도>(선명문화사)를 출간한 이래 다수의 시집을 출간한 바 있으며 '모깃불을 피우며'라는 시는 시집 <투명한 슬픔>(작가정신, 1996)에 실려 있는 시다.

서울 우이동에 사는 시인은 90년대 중반 강원도 홍천 고을 산마을에서 오랜만에 모깃불 피우는 광경을 본다. 보릿대로 모깃불을 피운 다음 불이 사위면 그 위에다 쑥을 덮는 방식인 모양이다. 이 생태적인 모깃불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한여름 밤 모깃불 향기로워라"라고 경탄을 발한다. 그리고 시인은 모깃불 피우는 풍경 속에서 마치 고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무분별한 살충제 남용에 대한 반성

▲ 계족산 자락에서 내려다 본 대전 시내 풍경. 사람의 집이 많은데 비례해서 모기의 집도 늘어날 것이니 저 속엔 얼마나 많은 모기집이 있을 것인가!
ⓒ 안병기

우리 어린 시절엔 그렇게 모기를 퇴치했다. 어디까지나 잔혹한 살충의 방식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모기를 쫓는 방식이었다. 이런 평화적인 방법 앞에 모기가 순순히 물러가겠는가.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면 종아리고 어깨고 모기에 안 물린 곳이 드물었다.

고통과 불편을 느끼던 인간은 마침내 '에프 킬라'로 대변되는 다양한 살충제를 발명한다. 나호열의 시 '모기향을 피우며' 는 모기향으로 모기를 박멸하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음험한 공기가 방 안에 퍼진다
낮은 목소리의 모의가 무차별하게
짜증나는 여름밤의 배후를 친다
피리소리처럼 가늘게
마약처럼 습관적으로
발견되는 인간성
향기로운 모기향은
파리, 모기, 나방들을 한꺼번에
죽이고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처럼 방 안에는
편안한 잠이 보장된다
유유히 쓰레기를 치우는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모기향을 피우는
이 손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살의를 실행하는
이 손


나호열 시인은 충남 서천 출신이다. '모기향을 피우며'라는 시는 1989년에 나온 시집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청맥)에 실려 있다.

1953년생이니 앞서의 홍해리 시인과는 10년 가까이 차이가 지는 셈이다. 그러나 시집이 출간된 연도로 보면 시가 쓰여진 시기는 6, 7년가량 앞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0년대가 이르기 전에 이미 모기를 다루는 방식은 쫓는 방식에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처럼" 대량살상 하는 방식으로 변모해 있다. 왜 그런 잔혹한 살육이 행해지게 되었는가. 일시적 방법에 지나지 않는 모기 쫓기는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연기를 따라갔던 암모기들이 언제 다시 되돌아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성가심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마침내 "편안한 잠이 보장"되는 모기향을 발명해낸다. 모기향이 가진 가장 큰 맹점은 파리, 모기, 나방 등을 차근차근 종류별로 분리한 다음 모기만 선택해서 죽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기향의 분별없음은 필연적으로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살의를 실행하는/ 이 (잔인한) 손"이라고 시인은 반성문을 쓰지만 그 반성문의 효력은 오래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모기를 통해 되돌아본 문명 잔혹사

이상으로 우리는 모기를 다루는 2가지 각기 다른 방식이 서술된 시를 읽었다. 사실 모기는 시의 소재로 다루기엔 거북한 곤충이다.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기피곤충'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모기와 인간이 공존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평화와 공존의 물밑에선 모기의 준동을 막고자 모깃불, 모기장 등등 갖은 방법이 동원되고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모기만이 수면의 적이 아니었다. 몸이나 옷에 붙어사는 기생충의 일종인 '이'와의 전쟁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라는 기생충은 '선택과 집중'이란 뭔가를 아는 녀석들이었다. 주로 인체에서 털이 밀집해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파고들어 미치도록 가렵게 했던 것이다. 그 시절 이와 모기라는 두 종류의 적과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여름밤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공존'이라는 불편한 형식을 견디지 못한 문명은 결국 '에프 킬라'나 모기향 등 대량 살상으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모기를 죽이는 방법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간편하고 수월해졌다. 그러나 이것을 문명이 거둔 개가로 보기엔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것을 두고 문명화 했다고, 진보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모깃불이 모기향으로 바뀐 시간의 흐름 속에는 문명의 잔혹사가 있다. 문명의 발달을 감히 진보라 부를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이런 식의 인간성의 퇴보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캠프 화이어는 알아도 모깃불은 모른다. 때때로 한여름 밤에 피우던 쑥 모깃불 향내가 그립다. '이 죽일 놈의 문명'이 그런 아련한 추억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오마이뉴스 2007.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