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황금감옥』2008

'봄'표 소주

洪 海 里 2008. 4. 29. 11:50

'봄'표 소주

洪 海 里

 

 


봄이 오셨다
젖빛 옷을 입고 오셨다
온몸에서 젖비린내가 진동한다
젖물이 뚝뚝 듣는다
아기들은 지상에서 가장 맑은 물방울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있다
부산스럽지만 고요하다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몸짓이 앙증맞다
밤새도록
자궁 출렁이는 소리
우주의 뜨거운 양수가 하늘로 솟구쳤다
가슴속 은밀한 골짜기
암자의 돌담을 안고 날아오르는
사미니 한 년
사내도 없이 겁도 없이 봄을 낳으셨다.

봄이 오셨다
아지랑이 타고 오셨다
안개처럼 는개처럼 사라지고 있다
'봄'표 소주병이 뜨거운 날개를 달고
하늘로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금방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처럼 가볍다
연한 물빛 같은 봄이 오셨다
천국처럼 봄날이 오시고
지옥처럼 봄밤이 오셨다
새가 되고 싶은 사내는
제비꽃 음순만한 외로움을 안고
나른나른 아린 눈물에 젖고 있다
비워도 마음은 무심
無心으로 남아
세상은 천국이고 지옥일 수밖에야!


- 시집『황금감옥』(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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